'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58) 전 경찰청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발언의 출처를 밝힘에 따라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전주혜)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조 전 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에 대해 얘기를 해 준 인물이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이라고 지목했다.

임 전 이사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당선에 기여한 인물로 MB정권 출범 이후 국정원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해 지난달 사퇴했다. 1997년 대선 당시 안기부 102실장이었던 그는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자행된 북풍공작 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

 
조 전 청장은 "임 이사장은 국가정보기관 사무관 특채 때 첫 출입처가 검찰이었기 때문에 발언을 해 줄 당시 법무장관, 검찰총장, 수사기획관과 가까운 사이였다"며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임 이사장이 한 얘기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강연하기 일주일인가 열흘 전 쯤 임 이사장과 서울의 모 호텔 일식당에서 만나 2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며 "(차명계좌 관련 내용에 대해) 지나치듯 얘기해 줬는데 강연 도중 그 얘기가 떠올라 말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0년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이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했던 당시 대검 중수부 최고 책임자로부터 '이상한 돈 흐름이 발견됐었다'는 내용을 들었고, 대검 중수부 금융자금수사팀장을 지냈던 법무사 이모씨로부터 같은해 12월 구체적인 얘길 들었다"며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나머지 발언의 출처 2명을 잇따라 공개했다.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강연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돼 지난해 9월 검찰에 기소된 이후 지난 2월 1심 판결을 받을 때까지도 발언의 출처를 함구해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법정구속됐다 풀려난 조 전 청장은 계속 발언의 출처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항소심에서도 불리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판단, 출처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조 전 청장이 발언의 출처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어왔던 터라 검찰 역시 다소 놀라는 분위기였다. 검찰 측은 "강연 전에 얘기를 해 준 사람이 임 이사장이 맞느냐",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임 이사장이었느냐" 등을 재차 확인했다.

반면 재판부는 "큰 용기를 내서 제보자를 밝힌 것은 다행"이라며 임 전 이사장을 바로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 여부와 함께 조 전 청장이 임 전 이사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허위로 인식했는지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언의 출처로 지목된 임 전 이사장은 "그런 내용의 얘기를 한 적도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도 "임경묵씨를 알지 못하고 조현오씨가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 차명계좌가 확실히 없다고 얘기 했었다"며 "조씨가 법정에서 한 말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서울경찰청장 재직 당시 일선 기동대장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2009년 노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날 10만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 "권양숙 여사가 특검을 막기위해 민주당에 부탁했다"는 내용 등의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조 전 청장이 소위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면서 의혹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새로운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않는 한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유죄로 인정,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후 조 전 청장은 법정구속된지 8일만에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보석 허가로 석방됐다.

다음 공판은 5월14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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