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총선에서 압승하고 얼마 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수도권은 영남 못지않은 한나라당의 지역 기반이 될 것이다. 아파트 소유자는 보수당을 찍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산 소유자의 ‘아파트 정치’에 기대어 ‘수도권 보수당’의 탄생을 논한 자신만만한 예언. 그러나 이 말은 곧이어 수도권에 불어닥친 반MB 물결에 휩쓸려 실패한 예언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수도권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기자는 정 의원의 이 예언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5년이 지나, 정치의 한복판에 아파트가 돌아왔다. 반MB라는 물결이 걷히자 수면에 깔린 아파트 정치가 다시 드러났다. 징후는 대선 때부터 있었다.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는 수도권에서 100만 표 승리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서울에서 20만 표를 벌었고, 인천과 경기도를 합쳐 14만 표를 잃었다. 수도권에서 ‘본전치기’에 그쳐 사실상 참패했다.
 

 


4·1 부동산 대책, 야권에 직격탄

이는 지난 대선을 설명하는 기본 틀이었던 ‘세대 전선’만으로는 설명이 곤란하다. 수도권은 세대 선거에서 야권이 유리한 지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시사IN〉은 지리정보시스템(GIS) 분석 전문기업 GIS United(GU)와 함께 수도권에서 아파트 선거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아래 〈그림〉이다.

〈그림〉은 야권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서울 동북지역 3개 구(강북구·도봉구·노원구)의 선거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대선 때 이 지역에는 투표소가 297개 있었는데, 이 중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투표소는 겨우 47개였다.

하지만 그 47곳의 위치가 의미심장했다. 〈시사IN〉과 GU는 3개 구 지도에 아파트 기준시가와 자가 소유 비율을 초록색과 푸른색 등고선으로 표시했다. 초록색에서 푸른색으로 배경색이 짙어질수록, 기준시가 4억원이 넘고 자가 소유인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다. 그 바탕 위에, 박근혜 후보 승리 지역 47곳을 붉은색 원으로 표시했다. 붉은 원의 크기가 클수록 박 후보가 크게 이긴 곳이다. 문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이가 3% 이내였던 박빙 투표구는 작은 노란색 원으로 표시했다. 모두 51곳이다.

야권 강세 지역인 동북 3구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투표소 47곳은 거의 모두 짙은 푸른색 지역에 인접해 있다. 푸른색이 짙은 곳에 박빙 지역(노란색 원)도 역시 많았다. 분석을 총괄한 GU 송규봉 대표는 “정교한 결과를 내려면 더 자세한 선관위 데이터가 필요하겠지만, 이번 분석만으로도 아파트 소유와 보수당 지지 사이에 주목할 만한 상관관계가 눈에 띈다”라고 총평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4·1 부동산 대책은 아파트 정치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여권이 꽃놀이패를 쥐었고, 야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부동산 정책 발표 이후 3주 동안 민주당은 거의 내전 상태였다. 민주당의 공식 주거정책은 지난해 대선 공약에서 강조한 ‘주거복지론’이다. 주택을 가진 실거주자와 세입자를 ‘주거복지’로 한데 묶어 정책 중심에 놓겠다는 기조다. 이 기조에서 부동산 가격은 ‘하향 안정화’가 최선이라고 본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밀집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부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4월11일 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주최한 부동산정책 토론회를 보면 이런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료집에 실린 글에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 거래 활성화와 시장 부양에 초점을 맞춰, 서민 생활고를 가중시킬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번 대책이 부동산 경기 부양과 경제성장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당 사령탑과 원내 사령탑의 비판 지점이 정반대다.

논쟁은 원내대표단과 정책위원회 사이의 내전으로 옮아붙었다. 대체로 원내대표가 정부 대책에 호의적이었고 정책위원장이 버티는 구도였다고 한다.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변재일 정책위의장이 “집값은 지금보다 더 내려야 한다”라고 발언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당시 의원들의 반응도 복잡 미묘했다. “동의는 하는데, ‘집값 내린다’는 표현은 제발 공개적으로 하지 말자, 그 정도 정서였던 것 같다.” 현장에 있던 한 의원의 설명이다.

아파트 소유자의 보수당 지지 성향

노선에 상관없이, ‘집값을 내린다’는 표현은 민주당에서 금기 취급을 받는다. 원내대표단은 정부 부동산 정책에 ‘발목 잡는 이미지’로 비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자칫 잘못해서 ‘집값 내리는 정당’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안 된다는 요구가 현장에서부터 거세게 올라왔다. 문재인 캠프에서 핵심으로 일했던 한 인사도 “대선 캠프의 부동산 정책은 대내적으로는 ‘하향 안정화’, 대외적으로는 그냥 ‘안정화’ 기조로 갔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역시 ‘내린다’는 표현은 뺐다.

4월16일 민주당은 정부 대책에 큰 수정 없이 합의해주었다. 진보 성향의 몇몇 언론과 평론가들은 이를 민주당 내 ‘진보 블록’과 ‘토건족’의 대결에서 토건족이 승리한 것으로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비판이 아니다.

민주당 당론은 여전히 ‘경기 부양’보다는 ‘주거복지’ 쪽이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대세라는 의견도 내부 공감대는 넓다. 그런데도 이번 합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작다. ‘숨은 토건족’이 많아서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진보색이 강한 최재천 의원은 외부 전문가와 함께하는 한 공부모임에서 “선거를 앞둔 처지에서는 아파트 정치가 간단치 않은 문제다. 당의 진보 노선을 지키면서도 아파트 소유자들을 만족시키는 길을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최 의원은 “그날 외부 전문가들에게 많이 혼났다”라고 말했다.

특히 ‘동네 선거’의 특성이 강한 지방선거에서 아파트 정치의 위력은 극대화한다. 진보 성향의 ‘외부 조언자’들은 세입자 위주의 정책을 주문하지만, 막상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정치인이 선택하기 쉽지 않은 옵션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소유한 유권자 1만명과 세 들어 사는 유권자 1만명이 대립한다 해도, 정치인들은 아파트 소유자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소유자 위주’ 정책 나오게 되는 이유

첫째, 결집도가 다르다. 아파트 소유자들은 네트워크가 촘촘하고 정보의 확산 속도가 빠르며 동질성이 높다. 이들은 입주자회, 부녀회,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다. 대체로 자녀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학부모회도 ‘유사 아파트 커뮤니티’가 되기도 한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요즘 선거는 아파트가 가장 중요하다. 한때 조직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호남향우회보다도 세다. 선거 때면 후보 눈에는 부녀회장 한 명이 5000표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세입자가 그 정도 조직력과 네트워크를 갖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많은 아파트에서 세입자가 입주자 대표가 되는 길은 제도적·실질적으로 막혀 있다. 어느 세입자가 지역 정치인에게 민원을 제기한다 해도, 정치인이 받는 표의 압력은 아파트 소유자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둘째, 지역 밀착성과 참여의 강도가 다르다. 아파트 실소유자는 그 지역에서 자녀 교육을 마치는 경향이 있다. 지역 정치인에게는 두고두고 표가 되는 유권자다. 지역에 뿌리를 내릴 유권자는 지역정치에 요구하는 것도 많아진다. 이해관계를 반영시키는 데 적극적이 된다.

반면 세 들어 사는 유권자는 평균 거주기간이 3.1년에 불과하다. 한 번 내지 두 번 계약이 끝나면 이주하는 유권자다. 정치인 처지에서도 ‘1회성 유권자’이고, 유권자 처지에서도 지역정치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 그 때문에 자가 소유자보다 세입자의 투표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셋째, 이해관계의 응집력이 다르다. 아파트 소유자들의 집값 상승에 대한 이해관계는 대단히 강력하다. 거대한 자산이 아파트에 묶여 있는 소유자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이 점에서는 투기 수요자와 실수요자의 차이도 크지 않다. 중앙대 신진욱 교수(사회학)는 “한국은 소득의 주요 원천인 근로소득, 공공복지, 자산소득 중에 근로소득과 공공복지가 대단히 취약하다. 실수요자도 아파트와 같은 자산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세입자는 전·월세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아파트 소유자들만큼 똘똘 뭉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최악의 경우 외곽으로의 이주라는 ‘다른 해결책’도 있다.

넷째, 5년 전과 달리 부동산 시장은 상승 기대감보다 폭락 공포가 지배하는 시장이 되었다. 5년 전의 아파트 정치가 ‘강남을 보고 배아파하는 한탕주의’에 가까웠다면, 2013년판 아파트 정치는 ‘평생 모은 자산을 지키려는 사투’로 성격이 바뀌었다. 은퇴를 코앞에 둔 50대는 평생 모은 자산을 아파트 한 채에 ‘몰빵’한 세대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평생 노동의 결실이 신기루가 된다. 노후 대책도 없다시피 하다. 이것은 욕망의 정치라기보다는 벼랑 끝 정치다. 그래서 더 끈끈하고 절박하다. 지역 정치인이 받는 압력도 5년 전보다 커졌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 소유자들은 지역정치에 적극 개입해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힘이 강력하다. 부동산 정책에 특히 민감하고, 투표율이 높아진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민주당의 내전을 ‘토건족’과 ‘진보 블록’ 구도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확신형 토건족’이 아니라 해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세입자 대책보다 부동산부양론에 집중하는 것이 개별 정치인에게는 당선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않고 지역구 정치인을 ‘토건족’으로 낙인찍는 비판은 당사자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정치인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정치세력의 ‘합리적 선택’이 다를 때, 어떻게 정치세력이 지역 정치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큰 방향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라면, 주거복지라는 당 차원의 중장기 노선이 지역 정치인의 단기 이해관계(부동산 부양)를 어떻게 통제해낼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민주당의 큰 문제는 지역 현장의 시급한 목소리와 당의 중장기 노선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안 대응과 중장기 노선은 작동하는 시간축이 다른데, 중장기 노선이 제대로 서지 않으니 현장의 단기 이해관계에 중앙당이 휘둘린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이 된다는 중앙대 신진욱 교수의 진단이다. 무슨 뜻일까.

2010년 지방선거와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야당에게 아파트 이슈는 여당에게 무상급식 이슈와 같다. 유권자의 관심이 큰 이슈여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적극 참여한다고 해서 선거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상급식이나 아파트부양론은 ‘상대의 의제’다. 이 전선이 펼쳐지는 순간 외통수다.

이 때문에 이런 외통수에 걸려들 때에는 단기 해법과 중장기 해법이 다르다. 전략통들이 추천하는 단기 해법은 ‘관리 전략’이다. 해당 유권자층에서 이길 생각은 하지 않더라도, 응징 투표를 하도록 결집할 빌미는 주지 않는 전략이다.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20대 전략이 정확히 그랬다. 새누리당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결집에 바람 빼기’였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아파트 소유 유권자 관리전략’으로 접어든 모양새다(박원순 재선 여부도 아파트에 달렸다? 기사 참조).

중장기 해법은 ‘전선의 재구성’이다. 현재의 ‘아파트 소유자 대 세입자’ 전선이 펼쳐지는 순간 그 자체로 외통수라면, 전선 자체를 달리 그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민주당 당론인 ‘주거복지’는 기존 ‘소유자 대 세입자’ 전선을 ‘실거주자 대 투기꾼’ 구도로 돌려보겠다는 기획이다. 정론이기는 하지만 이는 담론 차원의 구상일 뿐 ‘무상급식’과 같은 선명한 정책 의제를 주거복지 영역에서 발굴하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투표장 밖에 파편으로 흩어져 있는 세입자들을 지지 블록으로 묶어낼 경로와 의제를 찾는 것도 과제다.

‘실거주자 대 투기꾼’ 구도 만들 수 있나

전선을 재구성하려면 흔들림 없는 전략, 바닥 조직을 다지는 다년간의 노력, 선명하고 피부에 와 닿는 정책 의제가 모두 필요하다. 하나같이 민주당에 취약하다고 꼽히는 기능이다. 신진욱 교수는 “우리처럼 민간임대 시장 비중이 높은 국가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독일·일본·스위스인데, 그중 독일이 가장 참고할 만하다. 민주당이 이런 사례를 연구해서 중장기 비전을 세우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아파트 정치에 휘둘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이 중장기 비전을 보여줄 때에만, 현장 정치인들도 부동산부양론의 깃발을 흔들고 싶은 유혹을 접고 ‘관리 전략’ 정도로 인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선이 재구성될 것이라는 비전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는 현장의 요구가 당의 노선을 흔들어버린다. 2008년 총선 당시 뉴타운 열풍에 휩쓸린 민주당이 정확히 이런 모습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는 1년이나 남았지만, 민주당은 또 한번 시험대에 섰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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