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너무 커 보이는 것 같아요.” 상량식을 하는 날, 집 모양이 어떠냐는 물음에 집주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장에서 프리컷으로 목재 글루램(자른 나무를 여러 겹 접착해 만든 집성재) 기둥과 보를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을 했다. 첫 삽을 뜬 지 딱 아흐레 만에 상량식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집주인은 골격이 갖추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천천히 집 모양에 익숙해지는 보통 집주인과는 다른 경험에 내심 당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건축주는 마음속에 품었던 집을 처음 만나는 순간,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면서도 안도와 흡족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시사IN 백승기상량식을 마친 ‘한 칸 집’ 내부. 기둥과 보를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을 했다.
건축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디자인이라며, ‘없어 보이는 데’ 주안점을 둔 디자인을 어떻게 하면 ‘더 없어 보일까’라며 건축주에게 의견을 물었다. 건축주도 아이디어를 보탰다. 궁합이 잘 맞는 건축가와 건축주다. 한쪽에선 작아 보이는 집을 원하고, 한쪽은 없어 보이는 디자인을 추구한다니.    건축가는 검박한 선비의 사랑채를 디자인해달라는 집주인의 주문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없어 보이는 디자인으로 오히려 우주를 품은 거대한 집을 완성해냈다. 기둥 16개, 9칸으로 구성된 이 집의 아무것도 아닌 공간 속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길게 뻗은 지붕선 아래로 먼 풍경이 불러들여져 오히려 시선은 저 세상 끝에 닿아 있다. 시선을 멀리 뻗게 하는 이 집은 검박한 형태를 갖추었으되 기운이 장대하다. 유쾌한 집짓기의 첫 번째 실험인 ‘한 칸 집’이다. 건축가 김개천(국민대 교수)과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관 이내옥씨가 건축주로 만나 빚어낸 깊은 풍경이다.   ‘없어 보이는’ 디자인 추구한 집   “도면과 모형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데요.” 시공사 선정과 동시에 계약서에 도장 찍고, 휑하니 장기 해외출장을 떠났다가 두 달 만에 돌아온 속 편한 집주인 앞에는 어느새 의젓하게 집 모양을 갖춘 ‘사이 마당집’이 있었다. 건축주 김경호씨는 장기 해외출장이 잦은 방송사 카메라 촬영감독이자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오지 출장을 다녀와 까맣게 탄 얼굴로 나타난 건축주는 연방 싱글벙글이다. 이 집 공간 구성의 가장 핵심인 본채와 부부 침실이 있는 별채 사이를 벌려 만든 마당이, 집을 풍부하게 했다. “바로 이 자리예요. 산책 갔다가 이 길로 걸어오면서 집을 보게 되는데, 이 정도 위치에서 보는 모양이 아주 멋져요. 감리를 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 자리에 서서 꼭 한번씩 보고 가요.” 따뜻한 가슴과 명석한 판단력, 실험적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젊은 건축가 김창균씨(유타건축사사무소)의 말이다.   그동안 스무 채 남짓한 집들이 ‘유쾌한 집짓기’라는 꼬리표를 달고 탄생했다. 어떤 집은 이제 막 준공을 앞두고 땅의 기운을 받아 꿈틀거리고 있고, 어떤 집은 종이 위에, 어떤 집은 아직 건축가와 건축주의 머릿속에 아주 작은 생각으로만 존재하기도 한다.  
ⓒ시사IN 백승기 건축 중인 ‘사이 마당집’ 앞. 왼쪽부터 디자이너 김주원씨, 건축주 김경호씨, 건축가 김창균씨.
집터 앞 우물가 층층나무를 설계의 중심에 둔 ‘층층나무집’은 아마 가장 먼저 준공하는 유쾌한 집이 될 것이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두 획으로 완성한 씩씩한 기상의 집인데, 평생을 노동운동으로 보낸 집주인 부부의 새 출발과 썩 잘 어울린다. 건축가 부부 임형남·노은주씨(가온건축)가 층층나무집과 늘 함께여서 한결 든든하다. ‘존경과 행복의 집’을 지어달라는 주문을 들이민 ‘존·행·집’의 건축주는 신혼부부인데, 상담을 하는 날 우리는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나 한참을 흐뭇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마련하고, 아내는 긴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마련했다는 그 가난한 부부 이야기와 어울리는 부부였다. 집을 짓다보면 건축주들은 항상 예산의 10%가량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 부부도 그랬다. 인테리어 스타일링 단계에서 본래 하고 싶었던 조금 더 좋은 부엌, 마음에 두었던 원목 마루 바닥재, 혹은 높은 서가 등 ‘작은 사치’를 부리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 그러자 하나씩 비상금을 털어 내놓기 시작했다. “이건 당신이 좋아하는 부엌과 마루를 해주려고 따로 마련했던 비상금이에요.” IT 컨설턴트로 집을 짓고 나서 재택근무를 하려던 남편의 말이다. 그러자 미소가 아름다운 아내가 “아, 서가 비용으로 나도 따로 마련해두었던 게 있는데. 당신 사무실이 꿈이 담긴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수줍게 말했다. 이런 건축주를 앞에 두고, 어떻게 집짓기를 방 세 개, 욕실 두 개짜리를 짓는 건설 행위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집은 오롯이 ‘삶의 물리체’다.   리빙큐브, 유쾌한 집짓기의 꿈은 계속된다   건축주와 상담을 하다보면 세대 간 특징이 드러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 후, 펜션이거나 카페이거나 공방이거나 작업실이거나 주택에 부가적인 기능이 추가된 노후 대비 주택을 바랐다. 반면 젊은 30대 건축주 부부들은 아이들이 놀 만한 집을 만드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 “집을 놀이터로 만들어주세요”라는 요구도 다반사였다. 이런 주문을 받으면 건축가들은 신난다. 이렇게 살아 숨쉬는 일상의 소소함과 만날 때, 건축가들은 신나면서 오히려 더 진지해졌다. 더구나 예산이 넉넉한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었다. 넘어야 할 산이 겹겹이었다. 우리네 삶처럼. 집짓기는 그런 사소한, 동시에 중요한 도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사이 마당집’ 모형. 본채와 별채 사이의 마당이 집을 풍부하게 한다.
‘유쾌한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건축가들과 함께 우리의 소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한결같이 ‘보통 사람들을 위한 좋은 집’을 만드는 데 건축가가 기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건축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그동안 유쾌한 집짓기를 통해 참 많은 사연을 만났다. 어떤 사연은 인연이 되었고, 어떤 사연은 생각의 빌미를 주었으며, 또 어떤 사연은 우리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이 모든 것이 좋은 집을 통한 좋은 삶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닿아 있었다.   건축가 24명이 결합한 ‘유쾌한 집짓기’의 다음 발걸음은, 우리와 인연이 맺어지지 못했던 사연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건 순전히 우리 시각이었다. 마음속에 꿈의 씨앗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꿈에 대해 우리가 해답을 주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건축가가 제안하는 소형 주택, 리빙큐브’의 출발점이 되었다. 건축가들은 이제 작지만 단단한 집, 경제적이면서도 멋진 집을 모토로 건축가 개개인의 개성이 담긴 소형 모듈 주택을 준비하고 있다. 혼자 꾸면 꿈으로 그치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한 건축가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 ‘유쾌한 집짓기’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기자명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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