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에서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이가 있을까. 이정 박헌영.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그는 감옥에서 ‘미친 행세’를 했다. 자신의 똥을 먹기까지 했다. 결국 정신병자로 풀려났고, 곧바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부인 주세죽과 함께 소련으로 탈출했다. 당시 이 사실은 크게 보도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수 김정구의 형 김용환이 노랫말을 지은 노래가 ‘두만강 푸른 물에’로 시작하는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는 말도 있다.    이후 박헌영과 그 가족의 삶은 험난했다. 동행했다가 홀로 소련에 남은 주세죽은 스탈린 치하에서 ‘사회적 위험분자’라는 이유로 카자흐스탄에 유배당했다. 박헌영 또한 일제에 체포돼 투옥당했다. 해방을 맞이했으나 6·25전쟁 이후 그의 이름은 남과 북에서 ‘금기’처럼 되었다. 그 누구보다 항일 독립운동을 세게 했으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지다시피 했다. 해방 이후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손석춘 교수(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는 오래전부터 그의 삶에 관심을 두었다. 소설화하기도 했다. 그가 전하는 에피소드는 ‘지워진 이름 박헌영’을 잘 보여준다. 손 교수는 2002년에 방북한 바 있다. 그때 안내를 담당하던 김일성대학 철학과 출신 청년에게 박헌영에 대해 물었다. ‘누구인지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 “어떤 사람이냐고 되묻더라. 얼굴 표정을 보니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박헌영 혈육인 ‘승려 원경’과의 대화  
책 표지에는 ‘남과 북이 함께 풀어야 할 역사’라고 적었다. 김정은 체제와 남한의 일부 진보 세력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북한에서 현대사는 다 김일성 부자가 주인공인 것처럼 서술을 하는 게 문제이고, 그래서 지금 이 체제가 계속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남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박헌영을 모르는 젊은 세대도 많고, NL(민족해방파)계 운동권에서는 여전히 미제의 간첩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역사를 달리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쓴 책이 〈박헌영 트라우마〉다.   애초 제목을 ‘박헌영의 진실’이라고 붙이려 했다. 하지만 원고를 정리하면서 제목을 바꿨다. 어떤 경험을 통해 쌓인 내적 상처가 트라우마라고 할 때 박헌영이라는 이름은 남과 북에 동시에 ‘트라우마’로 남았고, 통일로 가는 길에 박헌영은 반드시 거쳐야 할 인물이라는 생각을 해서다(박헌영 못지않게 비극적 삶을 살았던 주세죽은 2007년 뒤늦게 독립운동 경력을 인정받았고,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이 책은 박헌영의 혈육인 ‘승려 원경’과의 대화를 통해 박헌영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교유해온 사이다. 원경은 “주변에서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 죄인이라고 하니 저는 아들이라고 말해서도 안 되고 그 이름을 떠올려도 안 되었다”라고 말한다.    저자 손석춘 교수는 22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한국기자상, 안종필자유언론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이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을 창립해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의 대안을 찾는 작업을 해왔다. ‘진보 대통합’에 관심을 두어왔는데 진보 대통합이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쓴소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최근 관심을 두는 키워드는 ‘진보의 재구성’이다. 따지자면 이 책은 손석춘의 ‘진보의 재구성’ 2탄 격. 지난해 8월 1탄 격인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를 펴냈고, 이번이 그 두 번째 편이다. 요즘은 ‘진보의 재구성’ 세 번째 편을 궁리하고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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