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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커밍아웃 13년 비극에서 희극으로

눈물의 커밍아웃을 했던 홍석천이 최근 방송에 복귀했다. 동성애를 개그의 소재로 삼아도 될 만큼 국민 정서가 달라졌다. 동성애가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도 늘어났다. 그러나 화면 밖 동성애자 차별은 달라진 게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3년 04월 17일 수요일 제2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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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새해, 드라마 <슬픈 유혹>에서 동성애 연기를 펼쳤던 배우 주진모가 그해 주목받는 신인으로 꼽혔다. 소설가 정도상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푸른 방>을 발표했다. 이즈음 국내 여성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끼리끼리’와 ‘친구사이’가 홈페이지를 열었다.

미국 버몬트 주에서는 미국 최초의 여자 동성애 부부가 탄생했다. 그해 9월26일, 방송인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기자회견 직후, 예능 프로그램 녹화 3시간 전 패널 섭외 취소를 통보받았고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에서도 하차했다. ‘우리 정서’와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13년이 지났다. 미국 최초의 동성애 부부는 5년 만에 파경을 맞았지만 현재 미국 연방법원은 동성결혼금지법과 결혼보호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공화당마저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분위기라 늦어도 5~10년 내 합법화될 거라는 추측이 나온다. 모두 먼 나라 미국의 이야기다.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이국땅의 결혼합법화 논란에 별 감흥이 없는 눈치다.

성 소수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요원한 마당에, 동성 결혼 합법화는 다른 세계의 일이다. 다만 비슷한 시기, 13년 전 유명인으로는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해 ‘사회적 대가’를 톡톡히 치렀던 홍석천씨가 지상파로 ‘눈에 띄는’ 복귀를 했다. 한국에서 게이의 대명사로 살아가야 하는 고단함을 눈물로 토로하는 대신 동성애 정체성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10년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장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미디어에서는 확실히 동성애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영상매체에선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대중도 과거에 비해 별 상관없다는 사람이 많다. 거기까지만 해도 좋겠다.” 지난 13년 ‘우리 정서’는 어디까지 왔을까. 적어도 미디어에서 동성애는 그리 비장하지만은 않다.

   
ⓒSBS 화면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씨. 방송 뒤 시청자 게시판에 그의 용기를 칭찬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간 드라마나 영화의 단역이나 예능 프로그램 패널로 이따금 방송에 등장하던 홍석천씨가 지상파에 출연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알린 건 올해 초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였다. 그는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십분 발휘해 아이돌 출신 MC 규현을 끊임없이 자극하다가 돌연 레스토랑을 낸 이태원(서울 용산구)의 구청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애초 MC 이경규씨가 섭외에 반대했다는 <힐링캠프>에 출연한 건 그 직후. 시청자 게시판은 그의 용기를 칭찬하는 글로 채워졌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는 동성애 연기를 선보이며 ‘전립선, 조지 부시’ 등 성적 표현을 에둘러 말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동성애자를 대표하는 동시에, 그들이 뛰어넘어야 하는 존재가 됐다. 서울 마포구 성소수자의 지지 모임인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마레연)의 오김 활동가는 “홍석천씨는 운동 진영에선 대표 인물이다. 퀴어축제마다 와서 발언하는 등 동성애 인권활동에 관심도 많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동성애자가 많은 상황에서 TV 속 그로 인해 고정된 이미지만 보이는 건 아쉽다. 인식이 더 많이 넓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개인의 캐릭터와 입담에 기대는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동성애 소재의 작품이 꾸준히 늘었다. 초반에는 <연인들의 점심식사>(2002년)나 <그를 만나고 싶다>(2002년)와 같은 단막극이 전부였다. 이후 남장 여자의 사랑을 그린 <커피프린스 1호점>(2007년)이나 게이로 오해받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개인의 취향>(2010년) 등 미니시리즈에서 동성애 코드가 등장했다. 홍지아 경희대 교수는 이런 유사 동성애 코드에 대해 “동성으로 오인한 인물들이 결과적으로 이성임을 확인하고 해피엔딩으로 맺어지는 ‘낭만적 서사’를 통해 이성애적 사랑 지상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 동성애 개그에 행정지도


2010년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지상파에서 방영된 가족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동성애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가족의 맏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다 가족과 갈등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그렸다. 당시 ‘참교육 어머니 전국 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은 한 일간지에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따위 원색적인 광고를 싣기도 했다.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가족 안에서나 가능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지만 ‘김수현표’ 드라마를 신뢰해온 중·장년층에게 동성애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인생은 아름다워>(위)는 가족 드라마 최초로 동성애 문제를 내세웠다.

영화계는 좀 더 직접적이다. <왕의 남자><쌍화점>같이 간접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품은 영화 말고도 전면으로 드러낸 퀴어 영화가 있다.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2006년)는 기업 부사장의 아들과 해고 노동자로 재회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수위 높은 성애 장면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국내 퀴어영화 중에서도 흥행작으로 꼽힌다.

이송희일 감독은 지난해에도 게이 로맨스 3부작 <백야>와 중편 <남쪽으로 간다> <지난여름 갑자기>를 발표하며 동성애자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다뤘다. 역시 지난해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의 위장결혼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만든 김조광수 감독은 <후회하지 않아>에 제작자로 참여할 때 전면적인 커밍아웃을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다소 ‘쿨’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코미디 빅리그>에서 보여준 홍석천씨의 동성애 개그에 대해 행정지도 ‘권고’를 내렸다. 트랜스젠더 토크쇼를 표방한 <XY그녀>는 방송 1회 만에 폐지됐다.

브라운관을 벗어난 현실은 더욱 ‘현실적’이다. 마레연은 지난 11월부터 마포구청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마포구청이 마레연에서 제작한 현수막을 걸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 소수자입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과장됐다는 게 구청 측의 주장이다. 1인 시위와 집회, 인권위 진정을 통해 계속 싸워나가는 중이지만 달라진 게 없다. 동성애에 대한 이해는 넓어졌지만 아직은 화면 속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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