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민영보험 확대, 영리병원 도입 등이 추진될 경우 건강불평등은 지속적으로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아이의 평균수명은 46세로, 유럽에서 태어난 아이의 79세보다 33년이 짧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강북구는 가장 부유한 강남구에 비해 1년에 378명이 초과 사망한다. 강남구에 비하면 강북구에서 매년 보잉 747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건강 수준의 차이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을 다섯 등급으로 나눌 때 소득이 가장 낮은 20%의 사망률은 가장 높은 20%의 2.3배에 달한다. 육체 노동자는 비육체 노동자에 비해 3.5배 높고, 초등학교 졸업 학력을 가진 사람은 대학교 졸업자보다 1.7배,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사망률이 3배 높다. 우리나라의 사회계층별 사망률 격차는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건강불평등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의 불공정성이다. ‘우연히’ 아프리카에 태어나고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에서 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찍 죽는 건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욱이 이런 불평등이 사회의 개입에 의해 ‘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비정규직, 정규직 사망률의 3배

건강불평등은 왜 생기는가? 소득·교육 수준·직업 격차가 여러 차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먼저 사회경제적 격차는 의료 서비스 이용의 격차를 초래한다. 무상에 가까운 의료체계를 가진 유럽과 달리 환자가 높은 진료비를 부담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격차가 건강불평등에 큰 영향을 준다.

흡연·음주·운동 부족 같은 건강에 해로운 행태는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에서 훨씬 흔하다. 덴마크의 경우 흡연·음주·운동 부족·비만이 전체 사망 불평등의 50%를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도 흡연이 심혈관질환 사망 불평등에 40% 정도 기여한다.

사회심리적 요인도 건강불평등에 영향을 끼친다. 낮은 사회 계층의 정신건강 상태는 상위 계층에 비해서 좋지 않고, 사회적 지지도 덜 받는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인체의 호르몬 또는 면역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술이나 담배 등에 쉽게 빠지게 된다. 어릴 때(또는 태아)의 나쁜 사회경제적 요인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건강불평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암의 하나인 위암이 낮은 사회 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사회생활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고, 경제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건강불평등의 해소(또는 축소)를 주요 과제의 하나로 삼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건강불평등에 대한 대응은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강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데서 시작해서 종합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미국인 건강은 개도국 수준이다. 이를 고발한 영화 〈식코〉의 한 장면.
영국에서는 1980년 건강불평등의 원인과 정도를 조사한 기념비적인 〈블랙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많은 연구와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1998년에 발표된 〈애치슨 보고서〉는 건강불평등의 실상과 정책 방향을 제안했고 노동당 정부는 이 제안의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애치슨 보고서의 핵심은 ‘건강불평등을 줄이자’는 것과 그 해결책으로 모든 정부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안된 11개의 정책의제도 단순히 의료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고 소득·교육·고용·주거와 환경·영양 및 농업정책·성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건강불평등 정책의 개발과 시행에서 앞선 네덜란드나 스웨덴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건강불평등 문제 해결을 국제사회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한 위원회’(위원장·영국 마이클 마못 교수)를 설치했으며 2008년에 첫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런 흐름에 견주어볼 때 건강불평등에 대한 한국 수준은 걸음마 단계이다. 건강불평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국민과 정책당국의 인식 수준도 아주 낮은 상태이다. 많은 국민이 건강불평등을 과거부터 있어온 ‘자연 현상’처럼 취급하여, 사회정의에 반하고 따라서 개선되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민건강 수준 향상을 위한 종합계획인 〈국민건강증진계획 2010〉에 ‘사회계층별 사망률과 건강행태의 격차를 25% 줄이는 것’이 주요 정책 목표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으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은 전혀 제시된 바가 없다. IMF 경제위기 이후에 소득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비정규직의 증가로 직업 안정성이 훼손당하고 있다. 흡연·비만·운동 부족 등 불건강한 행태의 사회 격차도 지속적으로 심화된다. 건강보험의 높은 본인부담금이 접근성의 격차를 초래하고 있으며 민영보험 확대, 영리병원 도입 등이 추진될 경우 건강불평등은 지속적으로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자명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