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보수와 진보의 소장파 경제학자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와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여러 모로 닮았다. 일단 둘은 당수다. 곽승준은 쿨한 보수와 까칠한 진보의 연합당인 ‘쿨까당’ 당수이고, 선대인은 세금 도둑을 잡자는 ‘세금혁명당’ 당수다. 물론 두 정당 모두 현실 정치의 정당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당수라는 사실은 둘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까지 섭렵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학자로서는 드물게 둘은 직접 정책 수립에 관여한 경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기획 수석과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곽 교수처럼, 선 소장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정책전문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MB 정부 시절 둘은 서로 다른 처지에서, 창(선대인)과 방패(곽승준)로 경제정책을 공격하고 방어했다.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 다르다. 곽 교수가 국정을 기획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주로 ‘유토피아’를 디자인했다면, 기자 출신인 선 소장은 한국 경제의 문제를 지적하며 ‘디스토피아’를 경고했다. 둘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분석했다.
 

고재열(고):두 분이 다 당수다. 쿨까당과 세금혁명당 당수(웃음). 당 소개를 먼저 해달라.

선대인(선):세금혁명당은 대한민국의 조세와 재정을 개혁해 나라 살림의 근본 틀을 바꾸고 삶의 질을 끌어올리자는 기치로 벌써 2년 전에 출범한 당이다. 

곽승준(곽):대의민주주의에서는 정당이 아주 중요한데 국민들이 지나치게 탈정당화하는 게 안타까워 정치 리얼리티쇼 〈쿨까당〉(tvN)을 진행하고 있다. ‘쿨까당’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쿨한 보수와 까칠한 진보, 하이브리드(융합) 당’이라는 의미다. 섞으면 강해진다. 한편으로는 ‘쿨하게 까는 당’이라는 의미도 있다. 4월6일 전당대회도 한다(웃음). 새누리당 대표로 남경필 의원도 오고 민주당 대표로 김영환 의원도 온다.

:세금혁명당 대표는 왜 안 부르나?(웃음)

:두 분이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비된다. 곽 교수가 유토피아적 시선이라면, 선 소장은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것 같다.

:기득권 언론에서 내게 비관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다. 지금 한국 사회가 그리 살기 좋은 상황이 아니잖은가. 왜 젊은 사람부터 50~60대까지 일자리며 노후며 늘 걱정을 해야 하나? 이런 현실을 잉태한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그 문제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석한 다음에나 이를 극복할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내 시각이다. 디스토피아적인 게 절대 아니다.

:나도 유토피아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굉장한 위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선 소장보다 더 비관적으로 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살아남은 최고의 체제이긴 하지만 절대로 완벽한 체제는 아니다. 이익 극대화를 자본주의라고 얘기하는 나라는 이제 한국밖에 없다. 이 테제로 가면 무너질 수 있다.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꼭 혁명이 일어난다. 대공황이 왔을 때 케인스 경제학이 나와서 정부가 다 개입했잖은가. 그런 나라는 자본주의를 지켰고 나머지는 혁명이 일어났다. 한국 국민은 다이내믹하다. 5년 전만 해도 반기업 정서가 경제 발목을 잡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기업 독과점 구조가 한국 경제의 큰 문제라는 걸 대부분 동의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빨리 진화해야 한다고 본다.

1970년대 방식으로 새 시대 구현?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얘기해보자. 일단 경제팀 포석에 대해 평가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정권 교체’ 프레임을 피하기 위해 ‘시대 교체’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그것이 미래가 아닌 과거로의 교체라는 느낌을 준다. 이미 인사검증에서 드러났지만 도덕성 수준은 1970~1980년대 부패한 경제, 정경유착 시대로 후퇴했다. 저런 사람들로 새 시대를 어떻게 구현하나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인사 실패의 근본 원인은 시대흐름을 못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 실패만 보더라도 이 정부가 실패할 거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든다. 이명박 정부도 비슷한 지점에서 실패했다.

:경제문제에서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사인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정권을 잡았어도 내부 사람들 사이에 생각이 많이 다르다. 어떤 이는 수출 지향적으로 해서 낙수효과를 보자고 하고, 나처럼 반대하는 쪽도 있고. 그러면 치열한 노선 투쟁이 벌어진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런데 이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기업 프렌들리가 나왔다가, 산업 생태계라는 말이 나왔다가, 그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이를 포용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부가 그런 치열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짜였는지는 의문이다. 또 하나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게 창조경제다. 그런데 누구한테 물어봐도 정확하게 대답을 못한다. 창조경제 어젠다를 얘기할 수 있는 전도사가 나와야 하는데 전도사도 안 보인다. 시장은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메시지가 뭔지를 모르면 시장 주체들에게 혼란이 생긴다. 

:내가 이해하는 창조경제가 박 대통령이 이해하는 창조경제랑 다른 것 같다.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더가 세계 각국의 잘나가는 도시, 즉 볼로냐,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을 분석하면서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가 탤런트, 즉 재능이고 둘째가 테크놀로지, 그리고 셋째가 톨레랑스, 즉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방식은 그 자체로 창조경제와 정반대다. 예를 들어 관료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데, 이익집단화한 관료를 통해 창조경제를 구현하겠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또 다양성을 높이려면 관용이 있어야 하는데 인사 방식이 불통이고, 일방이고, 전횡이고, 밀봉인데, 이게 어떻게 창조경제랑 맞아떨어지나.

:다양성과 하이브리드는 창조의 핵심이다. 절대로 정부가 페이스북·트위터·아이폰 못 만든다(웃음). 정부가 하면 다 규제하게 되니. 창의성·다양성과 정부는 굉장히 먼 개념이다. 

:인물 포진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할지 감이 오나? 

:조원동 경제수석은 17대 인수위 때 기획조정분과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다. 당시 인수위에서 나오는 모든 정책을 종합했는데, 최고의 관료로 꼽히는 인물이다. 서류 작업이 굉장히 뛰어나다. 글씨는 못 쓰는데 활자로 만들어 놓으면 엄청 아름다운 보고서가 나온다(웃음). 경제팀에서 그나마 어젠다를 잡을 사람은 조원동 수석이라고 본다.

정책 비전에 입 딱 다문 공직자들

:전관예우를 받고 사기업에 있던 사람이 다시 공직에 임명되는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사람이 많을 거 같지만 사실 대상자가 별로 없다. 그리고 인사검증을 잘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우리가 2013년 잣대로, 1970~1980대에 한 일을 판단하기는 좀 곤란하다고 본다. 그때는 지금과 굉장히 다른 나라였거든. 제일 중요한 게 그 사람의 철학이나 능력, 정책 비전인데, 이를 검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일주일 정도는 정책노선으로 청문회를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공직자의 도덕성 수준은 조금씩 전진해야 한다. 해외 계좌, 역외 탈세는 악질들이 하는 수법이다. 군수업체 로비스트 노릇을 사실상 했던 사람이 어떻게 장관 후보자가 될 수 있는지….

:아까 정책 전도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정부 장관들은 철학이나 비전을 검증하고 싶어도 다들 입을 딱 다물고 있다.

:정책 노선을 두고 내부에서 치열한 투쟁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들도 이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런데 그게 안 보이니 경제 주체들이 혼동하게 되는 거다. 

:관료를 불신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관료 의존형 정부를 구성했다. 어떻게 해석하나?

:둘의 리더십이 다르다. 박 대통령은 정치에 탁월한 통찰력이 있다. 이 대통령은 비즈니스와 먹을거리 외교에 타고난 게 있고. 살아온 과정이 달라서 그렇다. 관료와의 관계에서 정치는 늘 갑이지만, 비즈니스는 을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고 노무현·DJ도 그렇고 처음에 교수를 데리고 와서 관료와 싸움을 시켰다. 청와대를 대학으로 표기할 정도로 핵심 수석을 보면 교수가 많았다. 그다음에 정치인을 쓰고, 맨 마지막에 결국 관료로 간다. (박 대통령은) 거꾸로인 것 같다(웃음). 관료는 무지 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규제권 가진 사람들이어서다. 교수들이 백전백패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웃음).

:사실 국정을 책임 있게 끌고 가려면 대통령을 만든 정치세력의 비전과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들이 주요 장관직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관료는 그런 정치적 책임을 지는 존재가 아니다. 박 대통령도 결국 보고 배운 대로 하고 있는 거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 퍼스트레이디 역할 비슷하게 하면서 본 대로.

:당시에는 국가 주도가 가능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르지 않은가?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면 모든 게 다 바뀌었다. 제왕적 대통령이 맞느냐, 레임덕 대통령이 맞느냐고 하면 난 레임덕 대통령이 맞는다고 본다. 사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여당 의석이 170명이 넘는 여대야소 정국에, 대통령의 의지가 아무리 확고해도 결국 세종시를 못 막았다. 대통령 임기는 사실상 2년6개월이다. 처음 1년은 어리바리 보내고, 마지막 1년 반은 미래 권력으로 가고, 일할 수 있는 건 2년 반 정도다. 대통령이 당선되어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국회는 미래 권력으로 간다. 정치적으로는 거의 사형선고다. 박 대통령도 지난 5년이 제일 센 시기였다. 미래 권력이었으니까(웃음). 과거에는 대통령 통치술이 세 가지였다. 하나는 통치자금, 대통령이 의회의 가장 큰 로비스트였고, 두 번째는 정보기관 독점, 그리고 세 번째는 인사권인데, 요즘은 세 번째밖에 못 누린다. 그나마 청문회에 깨지기 시작하면서 이것도 약해졌다.

:두 분 다 선거 캠프 경험이 있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가 부딪치는 것을 직접 경험했을 것 같은데….

:선거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경제는 효율성과 최적화이고 정치는 다수결이다. 선거는 포퓰리즘이라, 정치가 경제 논리보다 앞선다. 정책노선 투쟁도 정치에서 밀리면 다 밀리고.

:정치부 기자 경험 때문인지 나도 정치를 중요하게 보는데, 경제 논리로 만들 수 없는 변화를 일거에 만들어내는 게 정치다. 예를 들어 경제민주화라는 의제가 고작 1~2년 만에 확 불이 붙었잖나. 

:경제 문제를 정치로 연결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키맨이 여당과 야당에 있다. 이한구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대표적인데, 둘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거나 경제철학은 비슷하지 않나? 난 그렇게 느껴지는데. 이한구 의원은 국가 균형예산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가부채가 300조원일 때 본인은 1000조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래서 균형예산으로 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이한구 의원이 토건 예산을 엄격하게 다루는 걸 보며 좀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런데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라 그런지 기업의 편에서 많이 생각하는 거 같다. 특히 노동문제에 관해서. 내가 김진표 의원을 비판하고 낙선운동까지 했던 이유는 개인이 미워서라기보다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경쟁하려면 제대로 된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김진표 의원이 새누리당에 있으면 괜찮다. 거기 맞는 사람이니까. 문제는 새누리당과 경제정책에서 큰 차별성이 없는 사람이 민주당 경제정책의 키맨 구실을 상당 부분 했다는 거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기가 없는데도 민주당이 선거에서 진 이유는 새누리당과 차별화되는 비전과 전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 소장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웃음).

:정권 교체기에는 전 정부의 과가 많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과가 많이 보일 것 같다(웃음).

:이명박 정부가 잘한 것을 꼽아본다면?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로 승부를 봤고,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 타파로 인기를 끌었다. 이명박 정부는 먹을거리, 성장 동력, 이런 부분에서 공이 있다고 본다.

기자명 진행 고재열, 정리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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