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거실 대신 ‘가족실’을
  • 장영철 (와이즈건축 대표)
  • 호수 289
  • 승인 2013.04.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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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각자 방에 흩어져 있거나 거실에서 TV만 보는 아파트 생활을 두고 ‘함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운중동 ‘ㅁㄱ주택’에는 계단 가족실을 만들었다.
젊은 부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찾아왔다. 남편과 아내는 전문직 종사자, 큰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는 취학 전이었다. 그동안 아파트에 살다가 아이들과 노부모와 함께 주택에 살고 싶어 성남시 판교 운중동에 땅을 산 후 건축가를 알아보고 다닌다고 했다.

처음 건축 의뢰인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내심 좋은 건축 작품의 그림을 기대했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설계를 진행하는지 설명했다. “가설계는 하지 않고, 개념설계를 먼저 진행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기본설계, 실시설계, 감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비용을 설명했다. 그런데 건축주 아내가 물었다. “그런 거 말고요. 와이즈건축은 어떤 건축을 추구하시나요?” 아! 멍했다. 스스로 뒤돌아보았다. ‘이런, 언제부터 우리는 건축 의뢰인이 우리가 어떤 건축을 하고 싶어 하는지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일상의 건축을 추구합니다”라고 얼른 대답했다.


집의 일상은 무엇일까? 어떤 일상을 그리며 건축주는 이 집을 짓고자 했을까. 건축 의뢰인 젊은 부부는, 그들의 아이와 노부모가 함께 모여 살기 위해 아파트를 떠나 이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집의 일상은 ‘함께 모여 살기’다.

집이란 함께 모여 살기 위해 짓는 것, 그게 당연한 말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아파트 한 칸에서 거주하는 우리 식구들을 바라보자.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누워(앉지도 않고 꼭 누워 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놓지 않고, 어머니는 안방에서 몇 시간째 전화를 붙잡고 있고, 아들딸은 각자의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십 년을 같이 살아왔어도 이런 삶의 방식 안에서, 우리가 가족으로서 함께 모여 산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을 건축 의뢰인의 가족과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나간 것이 운중동의 ‘ㅁㄱ 주택’이다.

주인들의 성격을 닮은 집

건축 의뢰인의 가족 구성원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그 삶의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것이다. 함께 모여 사는 방식도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뢰인 부부는 각각 직장생활을 독립적으로 유지하고 있고, 취미도 다르다. 할아버지는 초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반면, 할머니는 저녁 늦게 주무신다. 큰아이는 곧 사춘기를 맞이할 나이이고, 작은아이는 작은 놀이 공간이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공간은 확장되어야 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을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다면, 각자 요구사항에 맞게 필요에 따라서 각각의 방을 하나씩 만들어 주면 그게 가장 명쾌한 방법이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각자의 방을 따로 갖게 되면 그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함께 모여 있지만 서로 따로 사는’ 아파트의 삶과 매한가지다. 독립적인 방 도면을 나열하면 아파트 평면이 된다.


다른 방법이 있다. 식구들이 함께 모여 있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식구들이 개인 공간에 있다가 필요하면 편히 나와 있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하자면 가족실이다. 이 공간은 외부 사람을 접대하고, 텔레비전이 중심이 되는 거실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 집에는 거실이 없고, 가족실이 집의 중심이다. 이 가족실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옆면의 벽에는 많은 책을 수납할 수 있는 높은 책장이 있고 텔레비전이 없다. 아이들은 이 계단을 스탠드 삼아, 책상 삼아 자세를 바꾸어 가며 공부하고 논다. 큰아이는 보기에 편안한 자세로 숙제를 하고(공부방의 책상이 아닌 장소에서 공부를 하면 얼마나 효율적인가!), 작은아이는 공간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놀고, 할아버지가 초저녁에 주무실 동안 할머니는 그 공간에 나와 손자들을 보고, 그렇게 모여 있던 식구들이 야근에 지친 엄마 아빠를 반겨주는 그런 공간이 이 집의 중심 공간이다. 이 가족실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큰 계단실이기도 하다. 식구들은 이 계단 가족실을 매개 삼아 수시로 모여 산다.

대지는 판교 운중천 근처에 있는 사방이 트인 곳이다. 사방이 트여 주위가 개방적이니, 오히려 집은 내향적으로 ㅁ자 중정형 집이 되었고, 필요한 만큼 띠창 형식을 빌려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이 공간구성 방식이 묘하게 집 주인과 닮았다. 집의 상층부는 ㅁ자 형태로 공중에 떠 있는 중정이 있다. 중정은 일반적으로 내향적인 공간이다. 남편 성격이 그러하다. 떠 있는 중정에 봄이면 꽃으로, 여름이면 이파리들로 가득 차는 나무가 있다. 집안의 아래위층 곳곳에서 이 중정을 바라볼 수 있으니, 중정이 집을 숨 쉬게 하는 빈 공간이다. 1층은 ㄱ자 형태로 외부 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아내는 활달하고 외향적이다. ㅁ자와 ㄱ자가 겹쳐 화려할 것 같지만, 조형적으로 과하지 않고 조용한 집이다. 집 주인들이 그러하다. 처음부터 닮게 만들자고 작정한 것이 아닌데, 만들고 보니 그렇게 서로 닮아 있어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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