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설계 상담을 한다. 변호사처럼 10만원의 상담료를 받는다. 흔히 건축사무실 문턱이 높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 차라리 상담료를 내고 편하게 1시간 동안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편이 건축주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건축가를 찾아오게 할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다.

사진작가인 김동현씨가 아내와 함께 상담하러 왔다. 부부는 나와 기자 친구가 땅콩집을 지으며 함께 쓴 〈두 남자의 집짓기〉라는 책을 읽고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부부는 평소 아이들이 다 떠난 후 시골에 둘만 살 작은 집을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돈으로 단독주택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편이 나중에 나이 들어 근사한 주택에서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글에 동감해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두 아들의 아빠였다. 11세, 8세 장난꾸러기들 때문에 집을 짓고 싶어했다. 현재 서울 아파트에 거주하며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부부는, 한 동은 사진 스튜디오, 나머지 한 동은 가족이 사는 집으로 구성된 사무실과 집이 같이 있는 땅콩집을 의뢰했다. 조건은 땅을 사고 남은 돈 2억원에 맞춰 집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부부는 그냥 편안한 집, 모자라면 내가 살면서 고치면 되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원했다. 즉, 우리에게 가치 있는 집이란 공간의 넓이가 아니라 편안함의 넓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집에 가서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나에게 가치 있는 집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집이 뭘까? 너무 어렵나? 단독주택에서 뭐가 있어야 가치가 있을까?”

“우선 주방이 이런 거 말고 럭셔리한 거 있잖아. 5000만원짜리 주방 정도면 가치 있지.”

“그래? 또 다른 건?”

“화장실을 잘 꾸미면 집이 럭셔리해 보이지. 가구도 단가가 나가는 거 놓으면 집안 분위기가 다르지. 평당 800만원 정도면 집이 럭셔리하지.”

“그럼 우리 예쁜 딸은 럭셔리한 집에서 뭐가 제일 중요해?”

“아빠! 럭셔리가 뭐야?”

“럭셔리란 비싼 거, 그러니깐 집에서 제일 중요한 거.”

“아~ 앞마당. 마당이 없으면 좋은 집이 아니지.”

“다른 건 또 없어?”

“옆집 재모 오빠가 있어야 해.”

“그건 왜? 비싼 집이랑 옆집 재모 오빠랑 무슨 상관이지?”

“옆집이 없으면 재미없잖아. 난 재모 오빠가 좋아. 사탕도 사주고, 껌도 사주고.”

우리는 어느새 알게 모르게 물건의 값어치를 모양과 돈으로 판단하고 있다. 비싼 마감재와 가구와 큰 집이 어른들 럭셔리의 기준이다.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주방에서 엄마랑 쿠키를 구워먹는 그 순간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싼 고급재로 치장된 서재보다 자기 전에 자기 침대에서 30분간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아이들은 럭셔리한 집에는 마당이 있고 이웃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네 사랑방이 돼가는 집

‘그래 아주 편안한 집을 짓자. 모자라면 살면서 직접 몸으로 해결하라고 하자. 집이 직장이고 직장이 집이니 네 식구가 매일 조금씩 하면 된다.’ 설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공사도 일정에 맞춰서 두 달 만에 완성되었다. 건물을 뺀 나머지 담·조경·창고는 살면서 봄이 오면 수리하기로 하고 추운 2월에 입주했다. 5월에 가보니 조경과 담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위한 축구 골대도 보인다. 물론 담에 그려진 그림 골대이지만 축구하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골대 옆에는 텃밭도 있어 벌써 상추가 자라고 있었다. 담 옆에 쪽문이 하나 있는데 메모가 적혀 있다. “지나가다 생각나시면 벨을 누르세요. 커피는 무료입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집이 편하다 못해 동네 사랑방이되었다. 벨을 누르니 주인이 문을 열고 나오며 인사를 한다. 남이 보면 집보다 집주인이 더 편하게 생겼다고 할 것이다.

“사는 게 어때요?” 사는 집은 (서울 아닌) 용인이지만 작업실과 집이 따로 있다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비용이 절반으로 준 덕에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과 아내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나이 들어 무릎이 아파도 아파트에서 못 살 것 같아요. 불편해도 그냥 이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려고요. 하하하.”

커피를 마시는 거실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온 동네로 퍼진다. 웃음 바이러스가 이웃으로 동네로 마을로 퍼진다. 이 집의 편안함이, 아니 달콤함이 온 동네를 따뜻하게 만든다.

기자명 이현욱 (이현욱좋은집연구소 소장·광장건축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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