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에는 텔레비전에서 인도영화 〈세 얼간이〉를 방영했다. 인도에서는 〈아바타〉와 맞대결해 압승을 거뒀을 정도로 즐겁고 신나고 감동적인 영화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본 이 영화는 어딘지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영화였다. ‘인도영화’ 하면 딱 떠오르는 그것, 춤과 노래가 전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내가 본 인도영화 중 가장 재미있었던 〈옴 샨티 옴〉이 개봉됐다. 하지만 영화 상영시간이 몇 년 전 영화제에서 봤을 때보다 짧았다. 다행히 노래와 춤 장면은 꽤 많이 살아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일부는 삭제됐다. 삭제된 노래들이 하필 그 영화를 아는 인도영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건 여전히 아쉬웠다.

발리우드라는 이름은 봄베이와 할리우드를 조합한 말이다. 영국 사람들이 뭄바이를 봄베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맨 앞에 B가 들어가게 됐는데, 실제 해당 업계 종사자들은 ‘힌디 영화권’이라고 부르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발리우드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미국 영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전혀 다른 미학으로 즐거움을 추구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웃음과 눈물과 춤(!)을 이끌어낸다.

 
그 정점은 영화 중간에 들어가는 노래와 춤이다. 바로 이 장면들 때문에 한국에서는 인도영화가 종종 뮤지컬 영화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이 노래들이 인도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팝(pop)’ 그 자체다. 다른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중음악과 뮤직비디오가 소비되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인도영화는 영화 중간에 별 상관도 없는 뮤지컬이 들어가 있는 B급 영화가 아니라, 영화 안에 그 문화에서 가장 핫한 앨범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인도 대중문화의 결정체다. 이런 영화들을 ‘마살라(인도 향신료) 무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인도영화들이 한국에 건너올 때면 언제나 이 뮤직비디오 부분이 애물이 된다. 가끔은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실종사유는 이런 식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영화 전체에 흐르는 마살라 무비에 대한 자기 패러디에서 보듯 〈옴 샨티 옴〉 자체가 이 문제에 대단히 민감한 영화였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우리 영화가 이래저래 웃기게 보이는 거 우리도 알아. 그런데 그게 어떤 식으로 웃긴 건지 제대로 한번 보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그 통렬한 자기 패러디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한국적 정서’의 반응은 이랬던 모양이다. ‘엇, 이거 뭔가 괴상하잖아. 없애야지.’ 싹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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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난 그림
인도영화가 비주류 문화라 믿고 싶은 걸까

한류는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있지만 인도영화는 비주류 문화라고 믿고 싶은 걸까? 세상이라는 건 디자인이 참 희한하다. 문을 잠그고 가만히 틀어박혀 있으면 정말로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니까. 하지만 밖으로 나가서 많은 것을 보면 볼수록, 어쩌면 진짜로 중심에 접근해 갈수록, 역설적이게도 그렇지 않다는 확신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인도영화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다르고 종종 우리 정서에 맞지 않지만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그 문화는, 미안하지만 한국문화의 하위문화가 아니다. 그게 괴상한 건지 훌륭한 건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이질적인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문을 열고 세상 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 이질적인 거니까.

기자명 배명훈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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