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원, 미군 범죄자 중 3%만 실형 선고
  • 김은지 기자
  • 호수 288
  • 승인 2013.03.29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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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범죄가 잇따른다. 경찰의 심문을 무시하고 무한질주를 한 미군부터 여성에게 음란물을 보여주며 추행한 미군까지.
수갑을 찼던 손목의 울긋불긋한 상처는 아물었다. 8개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강제로 넘어뜨려 다리에 생긴 흉은 여전하다. 당시 전치 3~4주 진단을 받았지만 상처는 오래 남았다. 상처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기억이다. 악기를 팔던 가게에서 졸지에 수갑을 찼던 일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정신신경과 전문의도 두 번이나 찾았다.

지난해 7월, 미군이 채운 수갑을 차고 제압당했던 양 아무개씨(36·경기도 평택시 신장동)는 여전히 그때 상황을 떠올리면 괴롭다. 가해자인 미군한테 사과를 받았거나 사법기관이 미군을 엄하게 처벌했다면 그나마 억울함이 풀릴 것도 같은데 둘 다 제대로 안 되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그를 대상으로 피해자 조사를 한 뒤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3월8일 피의자 미군 7명 전원이 검찰의 동의하에 출국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허탈했다. 7개월째 검찰이 수사 중이라며 기소조차 하지 않은 사건이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었다. 양씨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쩔 수 없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혹시나 하고 사건을 담당하는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에 전화를 했다.

평택지청 관계자는 여전히 사건을 진행 중이라면서도 양씨에게 출국한 미군이 몇 명인지, 언제 나갔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말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는 평택지청 관계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양씨는 ‘주한미군이 아니었다면 수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출국을 허용했을까?’라고 되뇌었다. 

양씨 사건처럼 주한미군 범죄 수사는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초동수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범행 현장에서 잡지 못해 부대로 돌아가면 체포할 수 없다. 3월2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시민에게 비비탄을 쏘고 도주하다 경찰을 차로 친 미군 3명도 현장에서 놓쳤다. 뒤쫓던 서울 이태원지구대 소속 임성묵 순경을 따돌린 이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주한미군 혹은 그들의 자녀·군무원 등이 저지른 범죄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에 따라 처리하게 되어 있다. 소파 규정상 주한미군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신병 처리와 재판 관할권이다. 피의자 인도·구금·재판 등을 다루는 현행 소파 22조 5항은 ‘합중국 군 당국이 요청하면 대한민국 당국은 호의적 고려를 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소파 개정론자는 이를 독소조항이라 지적한다. 평택 미군 수갑 사건으로 소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지난해 5월 한국과 미국은 소파를 ‘개선’했다(43쪽 표 참조).

한국 방위에 힘쓴다는 등의 이유로 감형

수사를 마치더라도 모든 사건이 다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것도 아니다. 소파 규정에 따라 공무집행 중 범죄와 주한미군 간 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는 한국이 1차 재판 관할권을 가진다. 하지만 ‘대한민국 당국은 합중국 군 당국의 요청이 있으면 재판권 행사를 포기한다(SOFA 합의 의사록 22조 3항)’라는 부속 조항이 있다. 이런 요청 때문에, 지난 10년간 한국의 1차 재판권 행사율은 평균 22% 수준에 그쳤다(<시사IN> 제214호 참조).

게다가 재판까지 가게 된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형량도 대부분 벌금형이었다. 주한미군 홈페이지(www.usfk.mil)에 게재된 판결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주미본)의 자료를 종합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치 ‘한국 법원 주한미군 범죄자 선고’를 분석했다(42쪽 표 참조). 이 기간 전체 피의자 513명 가운데 434명(84%)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벌금액은 많게는 1000만원(음주운전 및 뺑소니 1명)부터 적게는 20만원(주거침입 1명)이었다.

실형은 3%(17명)에 불과했다. 2011년 11월 의정부지방법원은 주한미군 ㄱ이병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경기도 동두천에 사는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었다. 당시 선고는 1992년 윤금이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은 케네스 마클 일병 이후 가장 무거운 형이었다. 같은 해 4월 노부부를 때리고 성폭행하려 했던 주한미군 ㅇ이병에 대해서도 의정부지방법원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두 사건은 모두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며 여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박정경수 주미본 사무국장은 “2011년 징역 10년·7년이 나온 사건은 이례적이다. 워낙 여론의 관심이 높았고 성범죄를 단속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영향이 크다. 보통 미군 범죄에 대한 양형은 높지 않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범죄가 아닌 강도 및 절도와 같은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실형률이 낮았다. 강도 혐의자(강도상해·특수강도·준강도 포함) 11명 중 4명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마약과 관련한 범죄에서도 전체 31명 중 실제 감옥에 들어간 경우는 3명이었다. 대부분은 집행유예(19명)였다. 무죄도 4명이었다.

지난 5년간 전체 피의자 513명 중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55명(10%)이었고, 무죄는 7명(1%)이었다. 무죄 선고에는 방화, 음주운전, 사기, 마약관리법 위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박정경수 주미본 사무국장은 “미군 범죄 관련 한국 재판에 들어가면 재판부가 여러 가지 감형 사유를 들어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 방위에 힘을 쓰고, 나이가 어리고, 한국에서 범죄가 처음이라는 등의 이유다. 이런 분위기부터 소파 전반의 규정이 미군 범죄 억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주한미군 범죄는 2006년 242건에서 2011년 341건으로 계속 느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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