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16만명인 선거구 하나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촉각이 곤두섰다. 지난 2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해 4월24일 보궐선거가 치러질 서울 노원병 이야기다. 이번 보궐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치러지는 첫 선거로 ‘허니문 선거’가 되리라 예상됐다.

그러나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노원병 출마를 선언하면서 선거의 문법이 달라졌다. 안 전 교수의 등장으로 곤혹스러워진 민주당과, 전략 공천을 검토 중인 새누리당은 아직 공천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그러는 사이 대략 대진표가 짜였다. 안 전 교수와 노 공동대표의 아내인 김지선씨, 그리고 새누리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허준영씨와 민주당 노원병 지역위원장 이동섭씨가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시사IN〉은 이들이 잇따라 출마를 선언한 3월12~14일 노원병 지역구를 찾았다. 세 번의 총선을 치르는 동안 대체로 야권표가 더 높게 나오기는 했지만, 여야가 번갈아 깃발을 꽂았다(아래 표 참조). 노원구에 차고지를 둔 한 택시기사는 “외부에서는 야권 성향이 강한 곳으로 분류하지만, 노원병이 야권에 꼭 ‘좋은 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도 쉬운 지역구가 아니라는 의미다.

안 전 교수는 노원병을 ‘중산층 대표 지역’이라고 명명했지만, 직접 둘러본 이 지역은 오히려 ‘워너비 중산층’의 도시라 명명해도 좋을 지역이었다. 노회찬 공동대표의 분석도 비슷했다. “안 전 교수는 중산층 지역이라고 하던데, 우리랑 개념이 다른 것 같다. 여기는 중산층이 되고 싶어 하는 서민들이 사는 곳이다.”

노원은 목동·강남과 더불어 ‘교육 특구’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찍어낸 듯 비슷한 모양으로 줄선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 동네를 이루고 있다.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노원병은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구는 아니지만, 주변 학원가 영향으로 30~40대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소형 크기 아파트가 많고 서울에서 드물게 1억원 미만으로 구할 수 있는 전세도 있어, 신혼부부가 정착하기 좋은 지역이라고 했다. 

안 전 교수가 3월11일 귀국하자마자 짐을 푼 상계1동 ㄴ아파트의 경우, 이 지역에서 드물게 평수가 큰 편이다. ㄴ아파트 근처 부동산에 따르면 안 전 교수는 123m²(37평), 3억원 선에서 전세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분양으로 비어 있던 곳이다.

이곳은 서울의 ‘끝’이기도 하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지하철 4호선 종점이기도 한 당고개역 부근의 노후 주택가인 상계3·4동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1988)의 주 무대이기도 했던 이곳은, 88서울올림픽을 이유로 ‘환경미화’를 당해야 했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한때 무허가촌이었던 곳은 합법적인 주택가로 바뀌었지만, 주민들은 언젠가는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안 전 교수가 3월13일 예비후보 등록 후 제일 먼저 찾은 곳 역시 이 지역이었다. 그는 “이곳은 뉴타운 문제도 있고, 쇠락한 상가들이 많아 제일 먼저 찾아보고 싶었다”라며 신고식을 했다.

안 전 교수가 당고개역 인근 상가를 돌며 주민들과 눈을 맞추는 동안, 상계5구역 뉴타운 취소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은 ‘뉴타운 해제’를 요구하는 전단을 들고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듣던 안 전 교수는 주민이 건넨 전단을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보다 더 멋있다. 키만 조금 더 컸으면 좋았겠다” “같은 동네 주민이 되셨네, 반갑다” “취재진 다 물리고 소주 한잔 하고 가소.” 안 전 교수는 여전히 ‘스타’였다. 주민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사인을 요청하거나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역주민’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군중에 둘러싸인 안 전 교수를 바라보던 노 아무개씨(58·여)는 “뿌리 없는 나무는 흔들거려서 못쓴다”라며 혀를 차고 돌아섰다.

투표율·단일화 등 관전 포인트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의 최대 강점은 ‘노회찬 인맥’과 ‘풀뿌리 조직’이다. 김 후보가 3월13일 방문한 북부노점상연합회는 김 후보에 대한 조직적 지지를 회의 안건으로 올리기도 했다. 노원병 지역에서 노점을 하는 김 아무개씨(41·남)는 “굴러온 돌(안철수)이 박힌 돌(김지선)을 빼낼까봐 걱정이다”라며 김 후보를 염려해주기도 했다.

 

 

 

 

 

김 후보가 자원봉사를 해왔던 복지관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 하면 도와드릴 수 있을까 고민이다”라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김 후보는 “단체 활동을 할 때도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후보가 되니 잘난 척도 좀 해야 하고 힘들다(웃음)”라고 말했다. 노 공동대표는 부인 옆을 지키며 유세 일정을 함께 소화했다.

김 후보는 마들주민회 운영위원, 함께걸음 의료생협 이사를 지내며 노회찬 공동대표와 함께 지난 수년간 마을을 알뜰히 살펴왔다. 그러나 ‘사모’ ‘부인’ ‘여사’가 아닌, ‘후보’로 유권자에게 각인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김 후보의 출마에 대해 의원직을 상실한 남편의 명예회복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는 주민들에게 “나도 ‘노회찬 부인’으로 나가는 것은 반대했다. 당에서 경쟁력을 따져 결정한 것이고, 당원이자 노원 주민의 한 사람으로 출마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한 달.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투표율. 재·보궐 선거의 경우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보통은 야권이 불리하다고 점친다. 안 전 교수 역시 이 점을 염려한다. 두 번째는 안 전 교수의 대항마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홍정욱 전 의원,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이 불출마를 공언한 가운데 새누리당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다. 그리고 마지막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야권 단일화. 이동섭 민주당 노원병 지역위원장은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안 전 교수 측은 “단일화는 없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은 상태다. 그러나 제18대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 야권 단일화 없이는 야권이 이기기는 힘겨울 전망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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