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 창고 같은데!” 필자를 놀라게 한 이 한마디는 건축주들이 집의 모습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최근 경기도 이천의 아미리 주택(사무실에서는 아미리 주택이라 부른다)을 의뢰한 건축주와 미팅을 했다. 준비한 스터디용 건축 모형을 본 건축주의 외마디가 “창고잖아요~”였다. 건축주의 당혹감에 필자는 어찌할 줄 몰랐다.

“창고 같은가요?”

“…….”

“지붕 형태와 재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우선 재료가 검은색 벽돌이라서(벽돌 재료의 색깔은 건축주가 정했다). 그럼 벽돌 재료의 색깔을 바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건축주의 묵언, 필자의 장황한 설명. 어찌됐든 필자는 수습을 해야 했다. 지난번 회의에서 요구한 사항과 메일로 전달된 추가적인 내용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설명했다.

아미리 주택의 건축주는 50대였다. 건축주는 더 나이 들기 전에 평소 동경해오던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나중에 매매도 쉽게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건축비는 1억8000만원가량이고, 대략 112㎡(약 34평)의 3층짜리 주택을 짓고 싶어 했다.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단독주택 하면 으레 떠올리는 추운 집과 더운 집은 싫고, 비는 안 새야 하고,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게으르다며 외벽 재료는 청소를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요구했다. 

건축물 재료의 특성이 이미지 정해

지금까지 그리 많지 않은 주택을 설계해봤지만 이 주택은 그간의 프로젝트와 달리 비교적 예산이 확보된 경우였다. 건축주가 직접 필자를 선택해 연락해왔기에 좀 욕심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진행한 설계인데, ‘창고 같다’는 말은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는 우리 눈에 익숙한 것들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은 잊고 그저 그렇게 알고 살아간다. 창고는 자연조건에 순응하고 빨리 지어야 하며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경제적인 건물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경제적인 건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창고가 자연스럽게 취했던 외관이 창고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워낙 많은 창고 건물이 삼각형 지붕 형태를 자주 취하다보니 아예 유형이 돼버린 것이다. 지붕 재료를 금속으로 하고 삼각형으로 만들면 창고라고 생각되는 현실은 무척이나 슬프다.

지금 필자는 창고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궁리하고 여러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어찌 외관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3초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70% 이상 판단하듯 건축물이 갖는 외부 모습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그 첫인상은 몸동작, 입고 있는 옷의 색깔, 실루엣 등 많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축소된 모형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 지어졌을 상황을 상상해가며 재료는 무엇으로 할지, 재료의 특성에 따른 패턴을 고민하고 그것이 어떻게 건물 전체의 이미지를 변화시킬지 고심하는 게 건축가의 몫이다.

건축주의 모든 생활습관 반영

멀리서 보면 그냥 옛집 같고 어찌 보면 창고 같지만 자세히 보면 예전에 살았던 기억들이 오롯이 떠오르는 그런 집을 필자는 만들고 싶다. 이런 내 생각에 건축주도 동의했다. 건축주는 그리 크지 않은 집이지만 집에서의 생활습관을 비교적 상세히 이야기해주면서 예전에 살았던 집의 기억을 꺼냈다.

“저는 주로 거실에서 생활합니다. 방은 잠 잘 때만…” “추운 건 너무 싫어서 거실이 방이었으면 합니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니 바람이 잘 통하도록 창의 위치를 고려해주시고요” “딸아이가 다락과 같은 공간을 좋아하니 다락을 만들어주시고 다락에서 거실로 내려오는 미끄럼틀도 해주세요. 물론 계단도 필요합니다” “현관은 앉아서 신을 갈아 신을 수 있도록 높이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툇마루처럼 해주세요” “남편 방에는 운동기구와 컴퓨터 책상이 있어야 해요”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붙박이 가구가 있는데 재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빨래는 어디서 널어야 하나요?” “전에 살던 수유리 집이 참 시원했거든요”….

나는 건축주의 이 모든 의견이 반영되도록 작업하고 있다. 어찌 보면 건축가는 참 행복한 직업이다. 다른 이의 행복한 기억, 꿈꾸는 삶을 만들어주니 말이다.

개나리가 필 무렵에는 공사를 할 수 있게 도면 작업이 끝나야 한다. 지어지는 과정과 건축주가 그 집에서 살아갈 모습을 상상해가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평면에 삶을 담아낼 집을 짓는다.

기자명 정기정 (유오에스건축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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