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에 홍익 초·중·고교 이전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지난해 5월. 학교법인 홍익학원은 학교를 짓고 남겨둔 대지에 대한 개발행위 허가 신청서를 마포구청에 제출했다. 총면적 4026㎡(약 1217평)에 이르는 임야와 대지를 일반주거지역으로 형질변경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성미산이 어떤 산인가? 마포구 유일의 자연숲이자 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부문 산림청장상을 받은 보존 대상지이며, 지역 주민의 쉼터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상징이다. 그런 성미산에 2010년 홍익학원이 학교 이전을 추진하면서 산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주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2011년 학교 이전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성미산이 훼손되었을 뿐 아니라 학교 이전을 놓고 찬반으로 나뉘었던 지역 주민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홍익학원이 성미산에 외국인 기숙사를 짓겠다고 나서자 이번에는 주민들도 달라졌다. 성미산대책위뿐 아니라 주민자치위원회까지도 한 목소리로 기숙사 신축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2012년 5월 홍익학원으로부터 개발행위 허가 신청서를 접수한 마포구청은 두 달 뒤인 7월 “민원 해소 방안을 마련해 건축 심의를 받는 조건”으로 ‘조건부 가결’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형질변경은 주민들 모르게 조용히 이루어졌고, 홍익학원 측은 기숙사 설계에 들어갔다. 기숙사 설계가 마무리되자 올 2월21일 마포구청은 건축위원회를 열었다. 건축위원회는 홍익학원 측이 제시한 민원 해소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붙여 ‘조건부 동의’ 결정을 내렸다.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 ‘조건’에 또 ‘조건’을 달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조건’(민원 해소 방안 마련)이 충족되지 않은 채 허가 절차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거다. 이러다가는 최종 건축허가를 내주면서도 마포구청은 ‘조건’을 달지 모를 일이다.

도시계획은 철학의 문제건만…

이런 개발 허가를 주도하고 있는 구청 도시계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는 어떤 곳인가. 일단, 위원회와 관련된 정보는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는다. 구청 홈페이지에 위원들의 명단과 회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의원의 자료 요구에 대해서도 구청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심지어 도시계획위원회의 조건부 허가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하니까 ‘개발행위 허가서’ 한 장을 보내왔다.

도시계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 위원 명단을 보니 공무원들과 구의원 1명을 제외하고는 건축사 대표, 엔지니어링 대표, 기술공사 대표, 대학 교수 등 이른바 도시계획, 건축 전문가들 일색이다.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위원 명단에 부동산 대표까지 올라와 있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그러나 도시계획이나 건축은 1~2년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도시와 공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 도시계획위원회에 문화예술가, 장애인, 여성학자, 시민단체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있는 분들을 위원으로 위촉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회는 ‘도시계획·건축 심의과정의 부패 유발요인 차단 방안’을 국토해양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이번 상임위에 ‘도시계획 조례 전면 개정안’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위원들의 연임을 1회로 제한하고, 이해관계인의 설명과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다. 기존 조례보다는 진전된 내용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공개 모집과 외부 추천 방식을 병행해 위원을 위촉하도록 하고, 위원들의 명단과 소속, 직업을 구청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회의록 녹취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추가해 수정안을 발의했다. 상임위에서 공무원들과 격렬한 토론 끝에 결국 수정안이 통과됐다. 도시계획은 개발업자들이 그리는 청사진이 아니라 우리네 삶을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기자명 오진아 (서울 마포구의원·진보정의당)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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