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바쁜 직업인 건축가 엄마 아빠를 둔 아이가, 태어나서 3개월 후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매일같이 같은 곳을 드나들어 이력이 붙었을 네다섯 살 무렵까지도 어린이집 문에서 엄마 아빠와 헤어지기가 힘들어 울며 헤어지곤 했다. 반대로 엄마가 미안한 마음을 안고 저녁에 다시 데리러 갔을 때는 아침의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던 이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린이집에서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모든 방과 바깥의 놀이터를 돌며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문밖을 나서고도 그 주변에서 한참 참견과 놀이를 한 후에 비로소 집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어린이집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그곳을 들어가고 나오는 문 하나의 ‘얇은 경계’가 늘 낯설거나 아쉬워서였다. 그래서 아침마다 ‘어린이집의 들고남이 저 문 하나가 아니라 좀 깊은 공간이고 재미있는 것들로 조금씩 채워져 있어서 엄마 아빠와 놀다가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혼자 온갖 디자인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어린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억 속에 가장 서성이고 망설이게 되는 곳은 문 앞이고, 담벼락 밖이지 않았는가. 아파트를 비롯한 일반적인 우리 도시의 집들은 경계가 ‘얇고’ 그곳을 통과할 때 갑작스러운 변화를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부와 내부가 벽 한 장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문을 열고 나서기보다 문을 닫고 안에 머물게 되며, 외부에 있었던, 그래서 걸터앉아 볕을 쪼이며 바람을 느낄 수 있었던 발코니는 내부 면적이 넓은 게 제일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그나마 매끈한 유리벽 안으로 사라져갔다. 승강기 내부나 계단실이 있다고 해도 그곳은 머묾이 허용된 여유 있는 경계가 아니라 누구에도 속하지 않은, 빨리 지나가버리고 싶은 여전히 얇은 경계일 뿐이다.

초여름 빗소리 들으며 책읽기

도시도 마찬가지다. 우리 도시에서 가장 부족한 곳이 편하게 걸터앉아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커피전문점이나 카페에 들어서지 않으면, 자동차로 채워져 있는 경계 아닌 경계만 존재한다. 그런 곳에 ‘머묾’은 존재하지 않고 ‘통과’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원래 우리의 경계들은 그렇게 ‘얇지’ 않았다. 한옥의 경우 미세하게 따지면 창호지 한 장으로 안과 밖을 구분했지만 툇마루를 두고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대청에 앉아 집안 돌아가는 것과 바깥의 상황과 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기둥과 지붕이 늘어선 회랑을 따라 걸으며 경계 자체를 더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여러 채가 집합으로 구성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내부 공간을 따라 걷다보면  어디가 경계고 어디가 안과 밖인지가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경험 자체가 중요해진다. 즉, 방 하나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두툼한 경계’인 셈이다. 그리고 그 경계는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최근에 일상을 소박하게 담고 싶은 집을 짓는 사람들처럼 ‘안성 모아집’의 건축주 또한 예산 부족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집(25평 안팎)을 원했다. 어쩌면 아파트만큼이나 아담한 공간을 선호했고 실제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퍼진, 마음에 드는 아파트 평면을 조심스럽게 내밀기도 했다. 그러나 실마리는 집 내부보다는 집 외부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부와 외부 사이 ‘경계’에 있었다. 집은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그 경계를 넓고 두툼하게 만들었고, 그곳에 지붕이 덮인 데크를 두어 가족들의 이야기가 생겨나고 편하게 걸터앉아 자연을 느끼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계획했다. 결과적으로 실제 규모보다 집이 커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로 인해 부모 세대와 어린 자녀가 있는 아들 부부 세대의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채를 분리하면서도 그 분리된 경계로 인해서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을 보고 물건을 들고 들어오면서 문 옆 쪽 마루에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오는 초여름 굳이 문을 닫아걸고 집안에 있기보다 데크 위 의자에 걸터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도 있게 했다.

아이의 방에 돌출된 창을 두어 창턱에 걸터앉아 책을 볼 수도 있고, 마당에서 텃밭을 손보다가 다 두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집 창문 아래에 걸터앉을 수 있게 작은 마루를 내었다. 거실의 창문 아래도 걸터앉을 수 있는 낮은 책장이 있어 창밖의 가족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단열을 위해 집 벽을 두툼하게 해야 한다!’ 가 아니라 ‘소통을 위해 집 경계를 두툼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건축가의 상상력과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한 ‘두툼하면서도 점진적인 경계’는 땅이 넓은 곳에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도시 내의 아주 작은 땅에 지을 때도, 시골에 농막 같은 작은 집을 짓게 될 때도 마찬가지로 필요하고 가능하다. 솜씨 있는 건축가의 실력이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건축가가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하면 할수록 크기와 상관없이 생각지도 못한 ‘두툼한 경계’가 생겨난다.

요즘 모듈러 주택이 조명을 받고 있는데 이런 작은 주택에서도 두툼한 경계는 가능하다. 비용을 줄이고 시공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이용해 아주 작은 집을 만드는데, 이 주택에도 작지만 경계가 계획되어 있다.

보통 ‘집’이라 하면 어떤 마감재를 고르고, 어떤 주방가구를 넣고, 어떤 벽지를 선택하는지를 먼저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자기 가족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두툼한 경계’에 대해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집을 짓는 즐거움이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기자명 지정우·권경은 (유.경 건축 공동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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