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참모들에 둘러싸인 이명박 후보(맨 오른쪽)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대세론 훈풍에 순항하던 이명박호에 빨간 불이 켜졌다. 기대했던 부시 미국 대통령 면담은 결국 불발되었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4강 외교도 삐걱거리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후쿠다 일본 총리와의 면담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우외환이다. 당 정책위의장인 이한구 의원은 이 후보의 공약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당 의원들에게 팩스로 보냈다. 계속 추진하기로 한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해서도 여전히 폐기하라는 주장이 나온다.

경선 기간에 거센 검증의 파고를 헤쳐온 이명박호가 왜 이리 지리멸렬한 모습일까? 이 후보 참모들이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유력한 경쟁자 없이 보낸 지난 50여 일 동안 좌표를 잃은 모습이다. 군기가 빠진 탓일까?

'최근 혼선은 이명박식 성과주의가 나은 폐단'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최근의 혼선을 이명박식 성과주의의 폐단, 즉 ‘시장의 실패’라고 꼬집는다. 성과 내기에만 너무 급급해한 나머지 잘 조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선이 끝난 뒤 이 후보는 기업 마인드를 도입해 캠프를 대선준비팀과 후보비서실 체제로 축소 개편하고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일사분란해야 할 선거조직이 체계를 잃으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선대위가 구성되기 전까지 한시적 조직체계라고 했지만 대선준비팀과 후보비서실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상 숙청으로 받아들였다. 경선에서 이겼지만 선거인단 투표에 패배한 것 때문에 전반적으로 공을 보상하는 ‘논공행상’ 대신 책임을 묻는 ‘논과행벌’이 이뤄졌다. 일종의 네거티브 시스템이 작용한 셈인데, 그 책임은 주로 의원들에게 떨어졌다. 이 후보의 ‘의원 박대’에 의원들은 불만이 많았다. 자리나 역할은 주지 않으면서 지역구의 지지도를 높이라며 실적만 강조하는 것이 마뜩지 않았던 것이다.

‘충신보다 능신을 쓴다’

‘실적이 없으면 자리도 없다’

‘두루 듣되, 결정은 혼자 한다’

‘거북이처럼 결정하되 토끼처럼 실천한다’

‘이명박 외에 주류는 없다’

지금까지 파악된 이명박 후보의 용인술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충신보다 능신을 쓴다’ ‘실적이 없으면 자리도 없다’ ‘두루 듣되, 결정은 혼자 한다’ ‘거북이처럼 결정하되 토끼처럼 실천한다’ ‘이명박 외에 주류는 없다’가 그것이다.

‘충신보다 능신을 쓴다.’ 이 후보가 사람을 쓰는 기준은 충성도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후보가 경선에서 이기면서 한나라당은 ‘비주류 혁명’을 이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동안 한나라당 주류를 차지했던 세력이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실세 트로이카로 꼽히는 정두언, 박형준, 주호영 의원도 비주류 등용의 대표 사례다. 광주 출신의 정두언 의원, 좌파 성향 교수였던 박형준 의원, 영남 출신이지만 경북고도 아니고 서울대 법대도 아니고 검사 출신도 아닌, 주호영(능인고―영남대 법대, 판사) 의원 모두 한나라당 기준으로는 비주류 의원이었지만 ‘이명박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뉴시스주호영의원은 이명박 후보의 핵심 참모로 꼽힌다.
‘실적이 없으면 자리도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인사 원칙이다.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자리를 맡기되 냉정한 평가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조직을 바꿔가는 과정에서 실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계속 전진 배치하고 있다. 언론인 출신들로 공보 라인을 물갈이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후보가 실적과 무관하게 내치지 않는 쪽도 있다. 바로 재무회계 분야이다. 재무회계를 담당하는 김백준씨는 여전히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다.

‘두루 듣되, 결정은 혼자 한다.’ 이명박 캠프가 2002년 이회창 캠프와 크게 다른 점은 뚜렷한 ‘왕당파’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회창 후보 시절에는 ‘왕당파’가 만들어진 후 이들이 ‘인의 장막’을 치고 접근을 막아 원성을 샀다. 그러나 이 후보는 네트워크형으로 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정보가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거북이처럼 결정하되 토끼처럼 실천한다’는 것은 당 관계자들이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이 후보에게 새롭게 발견한 점이다. 의외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선준비팀 구성이 늦어졌던 것도, 선대위 구성이 늦어지는 것도 숙고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명박 외에 주류는 없다.’ 언론에서는 이재오 최고위원이 2인자로 꼽히지만 캠프 관계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이 후보가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 스타일로 해석하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이 최고위원을 견제하기 위해 박희태 의원에게 역할을 부여한 점, 김형오 전 원내대표를 일류국가비전위원장으로 임명해 정책을 총괄하게 한 점을 그 예로 꼽는다.

뚜렷한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뚜렷한 2인자가 없기 때문에 내부의 세력 대결도 치열하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이명박 후보 주변에는 세 개의 세력이 각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함께했던 안국포럼 출신 안국팀, 이재오 최고위원을 따르는 이재오계, 박형준 의원 등 소장파 의원과 이들의 참모로 구성된 세력(당에서는 이들을 ‘부산파’로 부른다)이 바로 그 세 덩어리다.

ⓒ연합뉴스정두언·박형준(사진 왼쪽부터 이명박 후보의 핵심 참모로 꼽힌다.
이들 중 실세는 어디일까? 당 관계자들이 보는 실세 구분법은 간단하다. 직함은 그럴듯하지만 역할이 없는 자리, 후보로부터 멀어진 자리를 차지한 쪽은 밀린 것이고 실질적 역할이 있는 자리, 후보로부터 가까운 자리를 차지한 쪽은 밀어낸 것으로 본다. 이방호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는 등 이재오 최고위원과 가까운 인물이 당직을 많이 맡았지만, 전반적으로 캠프의 중심에서는 멀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그런 맥락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현재 이명박 캠프는 안국팀과 소장파가 양분하고 있다고 본다. 안국팀은 특보단(이춘식·조해진 등)과 비서실 보좌역(박영준·권택기·강승규 등)을 맡아서 여전히 후보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소장파는 수요모임 출신(박형준·정병국)과 푸른모임 출신(정두언·임태희·주호영),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태희 의원이 후보비서실장을, 정두언 의원이 대선준비팀장을 맡는 등 푸른 모임 출신들이 양대 조직을 총괄하고 있고, 박형준 의원이 대변인을, 정병국 의원이 홍보기획본부장을 맡는 등 수요모임 출신도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수요모임은 실무진들도 대선준비팀에 두루 포진했는데 사무국장 출신인 윤석대씨와 남경필 의원 보좌관 출신인 경윤호씨가 조직팀에 속해 있다.

뉴라이트 등 외부 세력 영입에 적극적

이 후보는 캠프에 계속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있다. 당 외곽에 있던 뉴라이트 세력을 여의도연구소로 끌어들였다.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을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에 임명한 데 이어,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내정했다. 심지어 친박계 인물도 발탁하고 있다. 박근혜 캠프에서 공보 업무를 맡았던 특보 두 명이 공보 특보단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 후보의 용인술은 기존 정치, 특히 한나라당식 정치와 많이 달라 일종의 정치 실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양상은 앞서 거론한 것처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선대위 체제를 꾸리는 이 후보가 단점을 보완하고 당을 아우를 만한 틀을 제시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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