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아들었을 때 기분이 딱 그랬다. 입학을 축하하기도 전에 ‘준비 안 된’ 학부모로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입학을 앞둔 엄마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3월 한 달은 적응기간이라 학교가 일찍 끝난대. 엄마가 교문 앞에서 애를 기다렸다가 데려와야 한대.” “그럼 일하는 엄마들은 어떻게 해?” “몰라, 아무튼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내 아이만 혼자 오게 할 순 없잖아.”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하는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포함해서 가장 힘든 시기로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를 꼽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장 어려운 때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저녁 퇴근시간까지 돌봐주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오후 1시 전에 학교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돌봄 공백이 가장 크다. 방과후 돌봄 서비스 실태조사에서도 홑벌이 가정에서는 특기적성 교육을 선호하는 반면 맞벌이 가정에서는 안전한 보호, 급식, 숙제 지도 등 일상적인 돌봄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도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초·중·고교의 사교육 참여율이 평균 69.4%로 나타났는데, 초등학교 사교육 참여율(80.9%)이 중학교(70.6%)를 앞질렀다. 초등학생 10명 중 8명은 사교육을 받는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의 경제활동 상태별로 사교육비 규모를 살펴보니 맞벌이 가정에서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일하는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학생의 경우 학원을 보내는 이유가 성적보다는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쪽이 더 크다. 

공적 기관의 인프라 절대 부족

학원이 아닌 다른 대안은 없을까? 물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관장하는 학교 돌봄교실이 있고,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으며,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같은 곳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 있다.

서울 마포의 경우 학교 돌봄교실,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독서실, 동주민센터 방과후 교실 등 공적 영역의 돌봄기관이 수용할 수 있는 정원은 1039명으로 전체 초등학생 1만8000명의 5.7%에 그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4%의 아이는 다 어디에 가 있을까? 학원이라도 다닐 처지라면 좀 낫다고 해야 하나. 지난해 10월 경기도 파주 남매 화재사건 때도, 11월 마포의 한 주택에서 일어난 화재사건 때도 집에는 방과후에 남겨진 아이들만이 있었다. 이렇게 방과후에 보호자 없이 ‘나홀로 집에’ 있는 아이들이 전국 초등학생 320만명 가운데 3분의 1인 100만명에 이른다(여성가족부 2011년 실태조사).

최근 서울시 교육청은 오후 9시까지 운영하던 학교 돌봄교실을 올해부터 한 시간 연장해 오후 10시까지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학교 돌봄교실을 확대해야 한다는 쪽이지만(학교당 한 학급이 아니라 수요에 따라 2~3개 학급으로 늘려야 한다) 지역사회 내 다른 돌봄 서비스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없는 단순한 시간 연장은 해답이 아니라고 본다. 아이들 처지에서 생각해보라. 이제 막 1학년에 들어간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12시간 이상을 보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거운 방과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동네에 있다. 동네에는 작은 도서관도 있고, 복지관도 있고, 청소년 쉼터도 있고, 체육관도 있고, 공동체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있다. 공적 돌봄기관들과 이런 기관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종합적인 서비스 지원 체계를 만든다면 돌봄 공백은 지금보다는 훨씬 줄어들 수 있다. 각 지자체와 교육(지원)청이 중심이 되어 ‘방과후 서비스 지원협의체’라도 만들자. 더 이상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아이들 입학과 새 학년 개학이 코앞이다.

기자명 오진아 (서울 마포구의원·진보정의당)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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