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면 무인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한 뒤 스낵코너에서 팝콘과 음료수를 구입한다. 폽! 파팝! 푸풉! 팝! 하면서 기계 안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팝콘은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팝콘처럼 고소한 아이디어가 튄다. 한번 달궈진 두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분출한다. 멀리서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던 팝콘이 가까이 보면 각자 고유한 모양을 가지고 있듯이, 다양하고 개성 만점인 집을 짓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팝! 폽! 푸풉! 튄다.


2011년 가을께부터 땅콩집 열풍이 문훈발전소에도 들이닥쳤다. 태풍처럼 몰아친 주택설계 의뢰는 건축가에게 LTE급의 ‘빠름, 빠름, 빠름’을 요구했다. 너무나도 다양한 건축주들의 요구가 쇄도했다. 다들 집에 대한 다른 꿈을 쏟아냈다. 때로는 남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착각하기도 했고, 때로는 놀랄 정도로 정확한 꿈을 표현해내는가 하면, 부부가 서로 다른 꿈을 꾸어 샴쌍둥이처럼 머리가 두 개인 집을 구상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하여튼 너무나 흥분된 경험이었다. 건축 의뢰인이 10가구가 되는 순간 손사래를 쳤다. 올해는 더 이상 집을 설계할 수 없다고. 아무리 응답 속도가 팝콘 분출 속도처럼 빠르다고 자부해도,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한계와 절제가 필요했다.

요 몇 년 사이 아파트에 거주하던 많은 이가 주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주택설계 시장에도 대중화 바람이 거셌다. 모든 문화가 소수를 위한 것에서 모두를 위한 방식으로 진화하듯이, 집에 대한 다양한 꿈이 건축가, 건축설계, 혹은 건축 디자인이라는 단어로 소비되고, 이해되고, 소통되기 시작했다. 보수적이고 답답하고 격식에 갇힌 듯한 클래식 음악에서 시작해 팝뮤직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했듯이, 가장 보수적이고 느린 건축문화 산업에도 드디어 작은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름하여 팝 하우스의 탄생이다.

팝 하우스 현상 중에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대중문화는 대량생산 체계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구입할 때는 다양해 보이지만 이미 설계가 결정된 집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건축가에게 의뢰한 집짓기는 정반대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시작한다. 건축 의뢰인과 건축가가 소통하며 집을 만들어낸다.


마치 맞춤양복을 입던 시절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에 꼭 맞는 집에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중화 바람이 불면서 비용 또한 비교적 저렴하게도 가능해졌다.

주택 열풍 이전의 설계 시장에서 건축 사무실 문턱은 높았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건축가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가격도  비쌌다. 건축가도 조형이나 공간 배치 등에서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만큼 집을 ‘소통’의 결과물보다는 ‘작품’으로 여겼다. 약간은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귀중하고, 소중하고, 이름값 하는 그 무엇을 소유하기에 참을 수 있는 그런 대상으로 여겼다.

세련되고 독특하면서도 저렴한 집들 등장

세상이 바뀌었다. 마치 유니클로·자라·포에버21처럼 저가이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을 갖춘 의류 브랜드가 호황인 것처럼, 지금의 건축설계 시장은 저렴하지만 디자인이 가미된 세련된 집들이 탄생하는 쪽으로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동시에 많은 건축주들이 꿈꾸던 상투적인 ‘저 푸른 초원 위의 집’에서부터,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패닉 룸’이 가미된 집까지 모든 종류의 집이 그야말로 팝! 폽! 푸풉! 튀고 있다.

그렇다! 불가능한 집이란 없다. 건축 의뢰인이 꿈꾸고, 건축가가 더불어 꿈꾸면서 동시에 유연하다면, 이 세상에 불가능한 집은 없다. 단, 그런 집이 과연 될 수 있을까라는 의심만 버리면 된다. 그러면 마치 마술처럼 꿈의 집을 가질 수 있다. 꿈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재미있는 ‘일’과 ‘것’을 좋아한다. 우리의 모든 것을 집중하는 순간은 보통 재미난 놀이에 빠질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안식처인 집도 재미있을 수 있다. 미끄럼틀도 달고, 계단 도서관도 만들고, 영화관도 만들고, 숨겨진 방도 구축할 수 있다.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 전시장도 만들 수 있고, 회오리 계단도 만들 수 있다. 우주선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조각품 같은 집일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억압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꿈보다 더 다양한 집에서 거주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동심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무척 새롭고 신선한 집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상상하며 꿈꾼다. 그러나 대부분 거기서 멈춘다. 더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몇몇은 그 꿈을 이룬다. 그들은 그들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 그들의 꿈과 조우한다. 디즈니월드의 창시자인 월트 디즈니,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 일반인 우주여행 회사 버진 갤럭틱을 설립한 리처드 브랜슨처럼.

집을 짓는 행위도 꿈 혹은 판타지의 실현이다. 우리 모두 충분히 그것을 누릴 만한 상상력이 있고 권리도 있다. 그러니 제발 건축 의뢰인이여, 건축가여, 꿈을 꾸자! 그리고 꼭 이루자!

기자명 문훈 (건축가·문훈발전소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