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미 하겠다고 약속하고 현장까지 간 터라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일을 맡았다. 인테리어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건축주는 주택 리모델링을 다시 맡겼다. 그렇게 해서 2010년에 의뢰를 받고 2011년에 공사를 하게 된 집이 수애헌(守愛軒)이다.
북악산의 전망을 화장실에서도
건축주는 필요한 공간들을 가능하면 크고 여유 있게 계획해달라고 했고, 거기에 더해 기존 외벽과 철골 구조는 가능하면 그대로 살려줄 것, 마당과 거실을 연결하는 기존 철골조 정자는 철거할 것, 2층 지붕 처마 아래 철골빔에 비둘기들이 앉아 오물을 테라스에 배설하지 않도록 할 것, 마당의 잔디 관리를 위해 목재 데크 면적을 더 크게 하고 대문과 주차장 사이에 눈·비가 떨어지지 않게 덮어달라는 따위 몇 가지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건축가를 신뢰하니 설계가 끝나면 시공은 직접 주도해 직영에 가깝게 운영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설계 전에 이 오래된 주택을 실측하고 구조와 벽 상태를 확인한 결과 반지하층에 해당하는 1층의 콘크리트 구조와 2층과 3층의 철골구조는 모두 양호해 그대로 사용해도 되었으나 2, 3층의 벽체는 예상과 달리 사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부실해 골조를 제외하고는 모든 벽체를 재시공해야 할 상황이었다.
자녀들이 결혼 뒤에도 모여 살 집
건축주와 의논해 돌아가신 부모님이 사용하던 마당 레벨의 1층을 안방과 드레스 룸, 욕실, 서재 등 건축주 부부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으로, 도로 레벨인 2층은 거실과 주방, 식당 등 공용 공간, 그리고 3층은 가족실과 두 남매를 위한 침실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 집은 동쪽으로 북악산이 보여 전망이 좋았기에 모든 침실의 창을 동쪽 모서리로 새로 만들어 경관을 살리도록 했다. 식탁에서도 북악산 자락이 전망되도록 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북악산이 보이도록 계획한 것은 이 집의 위치에서 얻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거실은 이전의 부부가 사용하던 안방과 테라스 공간을 합쳐 넓게 계획했고, 여기에 면해 1층 마당의 데크로 통하는 출입문 상부에 캐노피 구실을 겸하도록 남동쪽으로 발코니를 달아냈으며, 아래층 서재 옆의 가벽 사이에 심은 대나무가 2층 거실에서도 보이도록 액자 같은 수평창을 설치했다. 모든 침실에는 충분한 수납공간을 두었고 방에서 필요한 가구를 붙박이로 제작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 집의 원래 외형은 완만한 2개의 곡선 지붕이 대칭 형태를 이루는 것이었으나 마감재를 새로운 티타늄 아연판 지붕재로 교체하면서 배수가 잘 되도록 경사진 형태를 취하고 그것이 2, 3층의 샌드스톤(사암) 외벽을 따라 흐르도록 하면서 산자락에 있는 마을의 이미지를 담은 2개의 산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거실 창문은 개방감을 주도록 크게 하고, 침실은 비교적 깊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작고 제한된 방향으로 계획했으며, 계단과 거실 부분에 스크린형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필요에 따라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공사는 내 책임 아래 현장 소장과 건축주가 직영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자녀는 아파트에 잠시 옮겨 사는 동안 “언제 평창동 집으로 돌아가느냐”라며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결혼도 할 것이며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수애헌은 두 자녀가 결혼해 3가구가 살게 되더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미리부터 계획했다. 지하 주차와 엘리베이터, 겨울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지내는 아파트의 편리함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건만, 집으로 가는 길과 그에 면한 아름다운 일상, 마당이라는 외부 공간에서 느끼는 사계절의 풍광 등 단독주택이 가져다주는 공간의 가족성이나 정서적 효과를 더 크게 느낀 듯하다. 수애헌에 대한 건축주 가족의 사랑이 끝까지 지속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