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에 이사 왔더니 돈이 안 들어요
  • 송주민 (서울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 활동가)
  • 호수 281
  • 승인 2013.02.14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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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에선 개인의 소비를 이웃과의 관계로 채울 수 있다. 좋은 집 알선부터 가재도구까지 이사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독립을 위해 방을 보러 다니면서 서울 곳곳, 심지어 경기도 부천까지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던 때가 있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이고 부동산을 수없이 들락날락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따지며 돌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얻은 ‘내 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룸이 많은 서울 신림동에 있었다. 그곳에서 1년 넘게 사는 동안, 택배 하나 맡길 곳이 없어 답답했다.

지난해 말, 이전에 활동했던 시민단체에서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로 옮기면서 독립 후 두 번째 이사를 감행했다. 그리고 나도 주민으로 어우러져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새로 일하게 된 곳의 취지에 맞게, 부유하기보다 뿌리내리고 살아보겠다는 뜻이었다.

‘독거청년’이 직장을 따라 이사 오겠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당장 방부터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서울 길음동의 한 주민은 적극적으로 ‘적당한 방’을 권유하고 나섰다. 가보니 혼자 살기에는 아주 널찍한 방이 나를 맞았다. 화장실도 크고 부엌도 분리돼 있었다. 창문 앞에 담장이 있어 좀 어둡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통풍이 잘 돼 문제는 없어 보였다. 서울서는 쉽사리 구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이런 방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0만원! 무엇보다 방을 소개해준 주민과의 인연과 믿음이 있었기에, 더 볼 것도 없이 계약했다.


길음동 소리마을 주민협의회장님이 앞장서 월세 계약서를 작성해주셨다. 부동산 소개비가 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마침 이사 올 집 바로 옆에는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주민이 계셨다. 그분도 소개받아 저렴하고 편하게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택배가 올 때마다 아저씨는 “언제든 편하게 맡기라”며 친절히 받아줬다. 지난번 거주했던 동네에서는 받아본 적이 없는 작은 호의들이 새로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가능한 행운

이런저런 물품들도 입수되기 시작했다. 주변 이웃들을 만나서 “우리 집에 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길음뉴타운 3단지 임차인대표 회장님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적당한 중고 냉장고가 있다며 건넸다. 지역의 한 선생님은 “침대 남는 게 있는데 주민씨 주면 딱 좋겠네”라며 호의를 베풀었다. 평생 바닥에서만 지내 왔는데, 처음으로 침대생활을 해보게 됐다. 조만간 날 풀리면 냉큼 업어올 계획이다.

무엇보다 독거청년에게 중요한 건 밥과 반찬이다. 독립 후 식생활을 돌아보니, 사먹거나 인스턴트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정을 알았는지, 한 고마운 주민은 틈나는 대로 반찬을 챙겨다 줬다. 멸치볶음·콩나물무침·달걀말이·찌개류까지…. 주인집 할아버지도 각종 전·김치 등을 가져와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동네 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산 것보다 훨씬 더 푸짐하게 깍두기와 갓김치를 손에 쥐여줬다. 이런 소중한 배려로 나는 첨가물에 찌든 식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처음 독립할 땐, 밥솥·서랍·책장 등 생필품을 모두 개인의 ‘소비’로 해결하다보니 적잖은 돈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채워졌다. 이런 행운은 나만 누릴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재개발 갈등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서울 성북구에서 ‘마을 새싹’이 돋아나고 있듯, ‘뉴타운식 막개발’보다 마을 공동체 회복이 먼저라면 모두에게 충분히 가능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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