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이 흥행하자, 건축가들은 환호했습니다. 한가인·엄태웅 등 스타 연기자들이 건축이라는 주제로 연기를 해준 점도 반가웠고, 배수지·이제훈 등 신인 연기자들이 20대 사랑 이야기를 건축학과 과제를 중심으로 펼친 점도 좋았습니다. 잊고 있던 학창시절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아련히 떠올리게 한 점은 이 영화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데, 매개체가 건축이라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건축가인 필자는 영화에 나온 여러 장면 중에서 제주도 집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습니다. 바닷가에 세워진 이 집은 평범한 마당이 있는 양옥 기와집을 리모델링해 옥상 정원과 널찍한 창을 가진 거실을 만들었습니다. 기와 주변에 잔디를 심어 밑에서 바라보던 지붕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지붕으로 바꾸었고, 작았던 거실은 전면창이 끌어당기는 바다 덕분에 훨씬 넓어졌습니다. 디자인의 힘이란 이런 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필자가 미국에 살 때, 다섯 살배기 딸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숙제를 내준 적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가 사는 집을 바탕으로 주택 평면도를 창의적으로 그려오라는 숙제였습니다. 이튿날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갔던 필자는 벽에 붙은 아이들의 숙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모두 주택의 평면을 완벽하게 그릴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집의 평면을 짜고 그리는 일은 어쩌면 본능에 가까울 만큼 쉬운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집을 지을 때 건축가를 찾아가 의뢰하는 것일까요? 다섯 살 아이가 그린 주택 평면도와 20년 이상 건축을 수련한 전문 건축가가 그리는 주택의 평면은 무엇이 다를까요?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왔던 제주도 집을 보면, 왜 건축가가 필요한지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는 옥상 정원에서 보여준 것처럼 건축가는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케 해줍니다. 지붕이라면 항상 밑에서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게 바로 건축가의 역할입니다. 다른 하나는 건축가였기에 집보다 큰 바다를 차경(借景)하여 제한적인 거실을 팽창시켜 주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실은 한 가지입니다. 두 가지 모두 건축이 이웃하는 주변 조건을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건축가는 집 밖의 요소를 끌어들여 집 안의 요소를 경영할 줄 아는 전문가입니다. 훈련받은 건축가는 건축물 주변의 조건들을 활용해 보는 방식(기와지붕을 쳐다보는 방식)을 바꿀 수도 있고, 보이는 방식(좁은 거실이 바다로 인해 넓어 보이는 방식)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는 길

훈련받은 건축가는 집의 규모와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펼쳐진 앞산의 숲과 안마당의 나무를 연결할 줄 알고, 수직적으로 자리 잡은 하늘의 눈과 땅의 시냇물이 서로 터치하게 해줍니다. 이때, 집은 점화된 성냥개비인 양 기적을 일으킵니다. 30평짜리 주택을 300평짜리 대저택으로 여기게 하거나, 3m의 천장이 30m 높이 대성당의 볼트천장같이 높아지는 즐거운 착시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인간관계에서 숱한 갈등에 노출되어 있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져 있고,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진 마음과 정신은 때로 공간으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옆으로 확장하고 위로 팽창하는 공간 안에서 이를 체험하고 있는 인간은 이와 비례하여 풀릴 수 있고, 그의 영혼은 저절로 넓어지고 높아집니다. 〈건축학개론〉에서 바다에 노출된 집은 유한한 거실이 무한에 닿아 있고, 하늘을 향해 열린 옥상정원은 제한적인 집의 높이를 천상으로까지 높여줍니다.

〈건축학개론〉의 제주도 집의 놀라움은 이렇듯 스케일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서연(한가인)은 지붕의 잔디밭 위에서 신발을 벗습니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 오는 잔디의 푹신푹신함을 몸속 깊숙이 새겨봅니다. 텍스처(감촉, 질감)의 놀라움이 이 집에 있습니다. 또한 조용했던 거실의 창을 활짝 열어 크기를 알 수 없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원(始原)의 바다 소리를 들려줍니다. 소리의 놀라움이 이 집에 있습니다.


때로 너무나 풍부해서 그것의 소중함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기와 같습니다. 지천으로 깔린 것이 공기이므로 공기가 없다면 우리가 숨을 거둔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과 같습니다. 물 또한 우리 주변에 너무 많아 종종 잊고 지냅니다. 물이 없으면 인간은 죽습니다. 태양빛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없다면 모든 식물은 죽을 것이고, 지구는 추워서 살지 못할 행성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동차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콜라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컴퓨터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태양빛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그것 없이는 못 사는 것들을 통틀어 편의상 ‘메타-건축 재료’라 합시다.

건축가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메타-건축 재료’를 운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공기의 존재를 대나무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로 인식시켜 줍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나 눈같은 물의 존재를 마당을 향해 경사진 처마의 끝을 통해 인식시켜 줍니다. 태양빛의 존재를 창의 모양과 창의 깊이를 통해 보여줍니다. 하루하루 빛의 변화를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계절에 따라 변하는 태양의 방위각과 고도를 예민하게 조절해주기도 합니다.

〈건축학개론〉에서 보여준 바닷가의 작은 집은 이런 가능성을 열어준 집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흔히 잊고 지내는 ‘메타-건축 재료’인 공기와 물과 태양빛을 가득 담은 주택을 소개해 줍니다. 한가인은 바닷바람과 바다 위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태양빛을 들이마시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여러분의 집은 어떻습니까? 그 땅이 지닌 자연의 특성을 극대화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기자명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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