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흔히들 ‘나만의 방’을 꿈꾼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으니 그저,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고 여긴다. 취업난과 경제 한파로 청년들의 삶은 그야말로 ‘공간을 위한 투쟁’이 되어버렸다. 〈시사IN〉이 전 세계 청년 세대의 공통 화두로 떠오른 눈물겨운 주거 실태를 나라별로 짚어봤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다세대주택. 대문을 열고 다섯 계단을 내려가면 김성은씨(26)의 집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 겸 주방이다. 앞으로는 침실 한 칸, 옆으로는 화장실 겸 욕실 한 칸이 보인다. 하지만 이 집은 김씨가 독립해 얻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김씨는 이곳에서 대학 시절 동아리를 통해 알게 된 언니 2명과 함께 산다.

김씨가 사는 집의 임차료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 세 명이 공평하게 월세 10만원씩을 내고 산다. 하지만 전기·수도·가스·인터넷 요금 등까지 합하면 뚜렷한 소득이 없는 김씨에겐 이마저도 버겁다. 지난해 8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요즘 화상 과외와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30만원 남짓을 번다. 대학 시절 매학기 받았던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자도 매달 7만원씩 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출 원금 상환은 꿈도 꾸지 못한다.

 

 


10대 학창 시절을 충남 논산에서 부모님과 보낸 김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부터 주거지 변동이 잦았다. 경기도 양주 외할머니 집에서 서울 마포구까지 통학도 했고,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사촌언니와 함께 단둘이 살아보기도 했다. 당시에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반지하방 한 칸을 둘이 나눠 쓰고, 화장실은 다른 방 세입자들과 공동으로 썼다. 반지하방 생활은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김씨는 “버스 창밖으로 즐비한 미분양 아파트를 보면서 ‘세상에 저렇게나 빈집이 많은데 왜 내가 편히 살 곳은 없을까’ 생각한 적이 많다”라고 말했다. 


14㎡ 방도 부모 지원 있어야 얻어

주거면에서 김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월세를 함께 부담할 동거인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동두천에 사는 이재한씨(29)는 함께 살 사람을 구하지 못해 하루에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데 왕복 4시간이 걸린다. 빌딩 시설관리 일을 하는 이씨의 직장은 서울 서초구에 있다.

사실 애초에 이씨는 서울에 혼자 살 계획이었다. 서초구 집값이 비싼 탓에 일터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2호선 건대입구역·신림역 근처의 원룸을 알아봤다. 서울에서 그나마 집값이 싼 동네에 혼자 살면서 지하철로 출퇴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회 초년생인 이씨가 자력으로 구할 만한 방은 없었다. 보증금이 너무 비쌌다. 그는 “서울에서 웬만큼 살 만한 방을 구하려면 보증금이 기본 1000만원은 있어야 되더라. ‘하우스 셰어링’을 하며 악으로 깡으로 보증금을 모으고 싶은데, 같이 살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사회 초년생뿐만 아니라 대학생에게도 주거 문제는 큰 고민거리다. 대학 직영 기숙사는 경쟁률이 높아서, 원룸과 하숙집은 월세가 비싸서 들어가기가 어렵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2012년 서울 소재 41개 대학 중 23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기숙사 수용인원÷재학생 수×100)은 고작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최근 지은 민자 기숙사 입주비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국 사립대 민자 기숙사의 입주비는 1인실이 월평균 약 48만8000원, 2인실이 약 32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청년들을 주거 문제에 허덕이게 하는 근본 원인은 뭘까. 기성세대는 흔히 청년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부족으로 원인을 돌리지만, 청년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청년 주거운동을 하는 ‘민달팽이유니온’의 김은진씨(22)는 “이야기가 얼핏 잘못 풀리면 대한민국 청년들은 예전부터 다 힘들었다는 식으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이것은 부동산 시장으로 투기 자본이 쏠리면서 발생한 사회 구조적 문제다”라고 말했다(부동산 임대시장 과열, 눈물짓는 대학생들 기사 참조).

높은 주거비는 청년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이에 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 시내 10여 개 대학 총학생회가 함께 만든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주거넷)가 직접 실태 조사에 나섰다. 주거넷은 2012년 11월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시내 9개 대학가에서 거주지를 임차해 생활하는 대학생 292명을 대상으로 50여 문항을 설문조사했다.

 

 

 

 


조사 결과 서울에 방을 얻어 사는 대학생 중 절반이 국토해양부가 정한 1인당 최저주거기준 14㎡(약 4.2평)에 미달하거나 기준을 가까스로 충족하는 좁은 공간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4명은 한 방에 1년을  머물지 못하고 이사를 다닌다. 더 큰 문제는 이 정도의 독립도 부모의 재정적 지원 없이는 꿈꿀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전월세 보증금을 직접 마련한 대학생은 292명 중 16명(약 5%)에 그쳤고, 부모에게 월세 전액을 지원받는 학생은 157명(약 54%)에 달했다. 또한 응답자 292명의 월평균 생활비 약 96만7000원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5%(약 43만5000원)였다.

주거넷 권지웅 대표(25)는 “1980년대에도 대학 자취방 월세가 25만~30만원이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당시는 과외비가 1인당 30만원이 넘었다. 따라서 지금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오늘날 주거비가 대학생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에 비해 너무 높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주거비가 너무 높다’는 권 대표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적어도 2012년 11월 주거넷 회원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서울시 11개 구에 위치한 46개의 원룸 임대료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이들은 먼저 서울 대학가 9곳의 원룸 46개의 보증금과 월세를 조사했다. 그리고 보증금 1000만원을 월세 10만원으로 계산해 월세에 포함했다. 가령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9만원짜리 방은 월세 59만원짜리로 치환했다. 관리비 등은 변수에서 뺐다.

그 결과 서울 시내 대학가 원룸의 3.3㎡(1평)당 평균 임대료가 약 10만9000원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대학가의 약 13.2~16.5㎡(4~5평) 원룸 월세가 평균 40만~50만원대인 현실과 일치하는 계산이다.

주거넷은 청년들이 부담하는 주거비가 얼마나 높은지를 비교 증명하기 위해 서울 시내 아파트 8곳 및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의 매물가를 조사했다. 성북구·관악구 등 8개 구 아파트의 3.3㎡당 월세는 약 4만6000원, 타워팰리스는 11만8000원 수준이었다. 대학가 원룸 3.3㎡당 월세와 타워팰리스의 월세 차이가 채 1만원도 나지 않는 것이다.

목돈이 없는 청년들이 주로 거주하는 고시원과 비교하면 격차가 역전돼 벌어진다. 고시원의 3.3㎡당 월세가 타워팰리스보다 비싸다. 고시원은 방이 좁은 데다가, 보증금을 받지 않는 대신 월세를 높게 받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7개 구 고시원 12곳의 월세는, 평균 약 38만9000원으로 원룸 월세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1실당 크기는 약 9.42㎡(2.85평)로 주거 면적이 확 줄어들었다.

조사에 참여했던 주거넷 대학생 회원들은 “사회적 약자인 청년 세대가 거주하는 공간의 평당 임대료가 강남의 아파트보다 비싼 현실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는 민간주택 임대시장의 가격이 단순히 수요·공급에 따라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논리를 가장한 공급자의 가격 책정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을 드러낸 사례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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