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들은 늘 엄마 잔소리를 듣고 산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이유는 아랫집 눈치 때문이다.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뛰지 마라’ ‘쿵쾅거리지 마라’ 하는 잔소리를 늘어놓아도 그게 통하면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이 안쓰러울 때, 단독주택 살이가 부러워진다. 건축가인 필자가 그럴진대, 아이 키우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건축 사무실의 문을 연 지 겨우 1년 될 즈음인 2010년 10월, 땅콩집을 설계해 주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흔쾌히 수락했다. 제대로 된 주택을 한번 설계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었다. 연락받은 지 한 시간이 안 돼 사무실에 건축주 부부가 찾아왔다. 건축주 심재한씨(46)도 아이 때문에 집짓기에 도전한 경우였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삶의 태도를 키워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직접 준비한 자료를 한가득 펼쳐 보였다. 꼼꼼했다. 자료를 보면서 건축가의 몫은 정리 정돈만 하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주 심씨의 직업이 움직이는 주거 공간이나 다름없는 자동차 디자이너였다. 그는 자동차 방수까지 예로 들며 주택의 각 부분에 대해 궁리한 것을 미리 정리해놓았다. 아내는 교사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듯, 집짓기에 필요한 이모저모를 미리 챙겼다. 아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오밀조밀하게 각 방의 배치와 문들이 자리 잡고 있는 귀여운 평면을 펼쳐 보였다. 그 속에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한편으로는 감동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난감함이 밀려들었다. 난감함은 입지 조건 때문이었다.

이들이 집을 지을 판교는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곳이다. 땅값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더더욱 그러하다. 건축주는 자신들이 살던 아파트를 팔았고, 대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땅을 샀다. 땅을 산 것도 일주일이 채 안되었다고 했다. 집을 짓겠다는 결심과 동시에 판교에 땅을 보러 다녔던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직장 거리상 중간 지점이라는 이유로 그곳 땅을 샀다. 그나마 발품을 팔아 판교에서도 저렴한 터를

찾아냈다. 고속도로와 가깝고 북쪽 도로에 땅이 붙어 있는 서판교 쪽 집터였다. 건축주는 땅콩집을 지어, 한 채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넉넉지 않은 자금을 메울 계획이었다. 좁은 대지에 두 채를 짓기가 빠듯했다.

땅이 있다고 집을 마음대로 지을 수는 없다. 일조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한 등 자치단체의 이런저런 조례를 따라야 한다. 이 터는 남쪽으로 일조사선에 걸리고 북쪽으로 도로사선을 고려해야 하니 건물의 배치와 규모는 더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빠듯하게 자리 잡아야 했다.

건축주가 첫날 미팅 때부터 제시한 요구사항은 친환경적인 목조주택, 층별 스킵형 단면 배치, 다락방은 필수, 한 채는 임대를 위한 듀플렉스 하우스, 아이들을 위한 실내 미끄럼틀 설치였다. 이런 요구 조건을 반영한 경사지붕을 가진 목조주택이다 보니 지붕이 남쪽 일조사선에 걸렸고 게다가 단면이 스킵형으로 반 층씩 차이가 나게 되니 건물이 높아져서 사선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흔히 보는 땅콩집 경사 지붕으로는 도저히 풀기 힘든 숙제였다. 그래서 경사의 각도를 90° 회전하고 전세를 내줄 임대 채와 지붕 경사를 어긋나게 조정했다. 다행히 건축주가 기거할 동은 1층이 1.5층 높이여서 자칫 좁아 보일 듀플렉스 하우스의 공간을 넓게 구성할 수 있었다.

난감한 숙제를 풀고 나서 건축주와 매주 또는 격주로 저녁에 만났다. 수차례 회의와 수정을 통해 계획안들은 착실히 정리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난제가 필자 앞에 펼쳐졌다. 심씨는 건축 기간에 프랑스 파견 근무가 예정되어 있었다. 온 식구가 파리로 떠났다. 건축 허가부터 완공까지 건축주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백지위임’을 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책임’을 의미했다. 가족들이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는 원스톱으로 입주하고 사용이 가능한 턴키방식의 일처리를 원했다.

카톡 대화 반년 만에 체계 잡혀

결국 건축 허가 접수부터 준공까지 건축주 없이 진행되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건축 허가 접수부터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프랑스와 인터넷 폰을 사용해보았지만 시차와 인터넷 속도 때문에 연결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로 했다. ‘카톡 집짓기’가 시작된 것이다.

카톡으로 집짓기는 근 반년이 지나면서 점차 기준이 생겼다. 우선, 대화 참여자는 건축주 부부, 건축가, 설계사무실 실무자, 건설사 대표, 현장 대리인인데 처음에는 두서없이 시작된 대화가 점점 정리가 되었다. 현장 대리인 최병권 부장은 카톡으로 그림과 육성을 보냈고, 카톡 참여자들은 돌아가면서 현장 사진을 그날그날 전송하고 파리의 반응을 기다렸다. 심재한씨는 오디오와 관련된 방 구조와 가구들을 카톡으로 결정했고, 아내인 김은미씨는 현관 앞쪽 미끄럼틀 아랫부분과 화장실, 주방, 그리고 인테리어 마감, 자녀인 은보·규보의 방 색깔과 분위기를 결정했다. 예상치 못한 이견이 생기면 카톡방에서 다시 의견을 주고받아 결정했다. 그나마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기준은 공사비였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이 세워져 있었다. 무조건 그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땅값을 빼고, 대지 232㎡(약 70평)에 연면적(공사 면적) 200.68㎡, 2층집 공사비 마지노선은 3억5000만원이었다.

카톡에서 어느 순간부터 건축주가 살 집을 A동, 임대 놓을 집을 B동이라고 불렀다. A동과 B동은 같은 스킵플로어 구조임에도 스킵의 시작이 서로 달라 규모도 다르고 구조도 다르게 작업되었다. 이렇게 거리와 시차를 극복하고 건축주 없이도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설계와 감리를 맡아줄 건축가 없이, 건축주와 시공사의 이른바 집장사 집짓기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씨가 회사 업무차 두 번 귀국했다. 심씨는 건축 현장도 방문해 다양한 체크 리스트와 요구사항을 적어왔고, 이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돌아갔다. 심씨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둘이 있을 때 걱정 어린 투로 속내를 물어보면 “소장님과 (건설사) 백균현 이사님이 알아서 잘해주시겠죠!”라며 웃었다. 무한 신뢰를 보내줬기에, 필자는 시간 날 때마다 현장을 찾았다. 현재 공사는 마무리 단계다. 건축주 식구는 2월 중순에 귀국해 은보(11)와 규보(9), 두 아이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보재(二輔齋)’라는 새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다.

기자명 김동희 (KDDH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