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름만 듣고 놀라지 마시라. 이름이 영화 속 괴물이다. 고질라. 우리가 만든 첫 번째 집이다. 녀석을 고질라로 부르는 것은 외형 탓이다. 특이한 외형은 지형 때문에 만들어졌다. 흔히 집짓기는 터 잡기가 절반이라는데, 이 집의 터는 건축하기에 까다로웠다. 성질 사나운 괴물 같았다.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주택가에서는 익숙하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을 따라 집이 이리저리 들어섰기 때문이다. 누구나 길치가 될 수 있는 곳인 반면 그만큼 아기자기한 골목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남산의 산줄기를 따라 서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는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우리에게 의뢰가 들어온 집터였다. 집터는 그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둥글게 깎인 땅. 사각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그란 원도 아닌 이상한 모양. 대지면적 202㎡(61평). 61평이라지만 도대체 쓸모 있게 생기지를 않았다.

건축주는 30대 IT 사업가였다. 자녀는 두 명. 아이들 때문에 단독주택 대열에 합류했다. 건축주 요구는 대지에 비해 집을 최대한 크게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크게 지어달라기보다 공감각적으로 넓은 집을 바랐다. 괴물 같은 지형에 넓은 집이라? 실재가 아닌 상상력이 빚어 20세기 팝 아이콘이 된 괴수 고질라. 우리도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눈썹 모양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고질라 건축 면적은 120여㎡(36평), 3층으로 연면적은 365㎡였다. 최대한 건축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담도 만들지 않았다. 집 외벽 자체를 담으로 삼았다. 도로에 등을 돌려 집을 앉힌 것이다. 두 가지 효과를 노렸다. 쓸모없는 자투리땅도 남기지 않기 위해 땅의 둥근 모양을 따라 벽을 둥그렇게 돌렸다. 또 하나는 사생활 보호였다. 집이 들어설 도로가 사람들 통행이 잦은 곳이었다. 그렇게 도로와 면한 외부는 초콜릿색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다. 마치 고질라의 단단한 등껍질을 연상케 한다. 이 외벽에는 창문도 내지 않았다. 안쪽으로 눈썹 모양 천창이 두 개 나 있는데, 웬만큼 눈썰미 있는 사람도 밖에서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감쪽같이 숨어 있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주차장과 주방, 거실을 바로 연결했다. 외벽 하부에 12개의 이중 타공 패널을 이용해 주차장용 자동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이 도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 밖은 보인다). 이 문이 열리면 주차장에 바로 이어진 주방이 보인다. 시장에 다녀오며 사온 먹을거리를 바로 주방으로 옮길 수도 있고, 퇴근하는 아버지는 주방에 모인 가족을 바로 만나게 된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가족의 중심 공간을,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맛보게 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외벽의 뚝뚝한 모습과는 사뭇 달리 하얗고 환한 실내가 부드럽게 맞아준다. 건축주가 요구한 넓은 공간감을 위해, 이 집의 천장 높이는 2.7m 이상으로 설계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가로로 넓은 집이다. 24평이든 34평이든 45평이든 60평이든 높이는 똑같고 평수만 확장된다. 건축주는 아파트 층고가 2.3~2.4m인 것에 늘 답답함을 느껴왔다. 일반 아파트보다 40~50㎝ 정도 높은 편인데, 몸으로 느끼는 공간감은 실제보다 훨씬 넓어진다.

외부 포인트가 둥근 외벽이라면, 고질라의 내부 포인트는 등뼈라 할 수 있는 계단이다. 계단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계단의 외형 때문이라기보다 실은 계단에 서면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북쪽 하늘의 푸른빛과 남쪽에서 들어오는 크림색 빛이 늘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 빛은 항상 변화한다.

외부 도로를 등지고 펼쳐진 남측 정원 쪽으로는 침실을 배치했다. 2층에 아이들 침실 두 개를, 3층에 건축주 침실을 배치했다. 침실이 마주하는 쪽은 창을 크게 냈다. 아이들은 직사각형 아파트와는 또 다른, 공간감을 몸으로 느낄 것이다. 북측 둥근 벽의 안쪽에서는 가늘고 긴 천창 2개와 계단이 벽의 곡선을 반복해 따라가기 때문이다. 공간은 벽으로 한정되었으나 그 끝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공간이 확장되기도 한다. 고질라는 외부에서는 빈틈없이 막혀 있지만, 반대로 내부에서는 이렇게 밖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작지만 큰 집이 되었다.

이 건축주는 비교적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고급 자재 등을 사용해, 지금 가치로 따지면 3.3㎡(평)당 700만원 가까이 건축비가 들었다. 하지만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얼마든지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집이다.

기자명 최성희 (최-페레이라 건축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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