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동안 주거 문화는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와 노란색 학원버스로 대변돼왔다. 하지만 점차 주택 안에서 자기 가족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골목길과 땅을 밟고 그곳에서 여러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를 보여주듯 최근 사무실에는 3040 세대를 중심으로 단독주택에 대한 상담이 많다. 이들 대부분이 단조로운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변화무쌍한 단독주택의 추억을 남겨주길 소망한다.

최근 사무실로 찾아온 세 아이를 둔 30대 중반 건축주 부부 역시 자신들만의 집을 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막연하게 116㎡(35평) 규모의 방 몇 개, 욕실 몇 개를 생각했다. 상담은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했다. 나는 먼저 규모보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다. 두 부부의 삶의 패턴은 어떤지, 세 아이의 생활은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그려보도록 했다. 건축주가 삶을 디자인하는 동안 나는 대지와 그 주변의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남편이 방송사 촬영감독인 부부는 조금은 여유롭게 자연이나 동네 문화를 접하고자 경기도 파주에 땅을 구입했다. 지금은 서울 아파트에서 전세를 산다. 평소 생활은 엄마를 중심으로 세 아이가 매우 긴밀하게 즐거운 가족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어느 정도 개인 공간이 필요하고, 동시에 손님을 주로 상대하는 거실보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놀이방 같은 열린 공간이 있는 집을 원했다. 나는 몇 주간 인터뷰를 해서 상담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만남에서 스케치로 표현해 보여주었다.

먼저 가장 사용 빈도가 낮은 안방을 전통 한옥에서 볼 수 있는 대청마루를 통해 본채와 분리했다. 대청마루는 주변 자연과 마당에 열린 상태로 바람과 시선이 통하게 되고, 비나 눈이 올 경우 놀이를 하거나 빨래를 널 수 있는 마당 구실도 한다. 또 동남쪽 마당 전면의 툇마루와 연결되어 식구들이 언제든 걸터앉을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다. 이를 계기로 이 집의 이름을 ‘사이 마당 집’으로 지었다. 사이 마당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집 안팎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전면 마당과 도로에 면한 경사지는 좀 더 효과적인 옥외 마당 구실을 하게 된다.

계단은 책 보거나 영화 감상하는 공간

또 하나 이 집의 특징은 아이들의 추억을 남기는 공간이다. 책꽂이를 품은 계단을 이용해 아이들 방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단차를 이용해, 가장 높이 위치한 아이 방 아래는 주방과 시각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놀이방 겸 가족실이 되도록 했다. 계단식 구성을 통해 식구들은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고, 때로는 영화를 감상하는 객석이 될 수 있다. 주방과 식당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공간이 연결되면서, 엄마는 집안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과 눈을 맞춰가며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 

아파트가 거실을 중심으로 닫힌 실내 생활을 한다면 ‘사이 마당 집’은 조금씩 성격이 다른 다양한 거실과 마당을 통해 가족 구성원 스스로 공간을 활용해나가도록 유도하는 ‘넓은’ 느낌의 집이 될 것이다.


아파트 전세를 사는 건축주는 건축비가 풍족하지는 않다. 116㎡로 한정했고, 공사비도 예상이기는 하지만 내부 가구까지 포함해 전체 1억7000만원 안팎이다. 땅값까지 포함하면, 이 단독주택은 서울 아파트 전세와 맞바꾼 셈이다.

고풍스러운 동네이므로 새 집처럼 보이지 않게

최근 건축주가 “건축가는 자기 집도 아닌데 매일 설계 속 집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장면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 등에 대한 필자의 제안에 만족해했다. “집 짓다 화병 걸린다는 말은 옛말이다”라고 건축주는 덧붙였다. 

최근 완공된 전남 보성의 ‘툇마루 주택’도 이렇게 즐겁게 작업하고 그 결과로 좋은 성과를 낸 사례이다. 40대 중반인 건축주는 본인이 태어난 고향 집 자리에 나이 든 부모를 위한 집을 짓고 나중에 직접 귀향해 생활하기를 원했다. 원래 살던 집이 외풍이 심해 무엇보다 단열이 잘되는 따뜻한 집이면서, 작고 고풍스러운 동네인 만큼 너무 튀지 않고, 방금 지어진 새 집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동네를 둘러싼 산세와 주변 집들을 관찰해 툇마루를 가진 벽돌 1층 경사지붕 집을 제안했고, 더불어 담장을 낮게 해 이웃과 소통하도록 했다. 설계가 이루어지는 내내 건축주는 작업에 적극 동참했고, 나 또한 멀리 떨어진 현장에 기분 좋게 자주 다녀올 수 있었다.

집 짓는 작업은 분명 유쾌한 작업임이 틀림없다. 건축가인 내 집을 짓는 건 아니지만, 건축주들의 꿈과 가족 이야기가 담긴 집을 짓는 과정에서 건축주·건축가·시공사가 서로를 신뢰하며 즐거운 작업이 이루어질 때, 그 집은 사용하는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평을 받는다. 과정이 유쾌하지 않으면 땅에도 어울리지 않는 흠투성이 집이 탄생한다.

기자명 김창균 (유타건축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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