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이 이상할 정도로 고공비행을 하던 대선 당일 오후, 새누리당은 파장 분위기였다. 마지노선인 투표율 72%는 넘기고도 남을 추세였다. 당직자들은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문서 파쇄를 준비하자는 말도 농반진반 돌았다. 박근혜 캠프 권영세 상황실장은 “투표율이 높습니다. 우리 지지층을 투표하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입니다. 준비하신 차량을 전면 운행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다급한 문자를 뿌렸다가 문재인 캠프에 적발당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각종 선거에서, 높은 투표율은 늘 새누리당의 패배를 뜻했다.

가장 큰 선거에서, 그 공식이 깨졌다. 5060 세대가 박근혜 시대를 만들어냈다. 60대 이상의 박근혜 몰표는 예측 가능했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50대의 대결집이 결국 승부를 갈랐다. 방송 3사 출구조사가 추정한 5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62.5%.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48.1% 대 이회창 47.9%로 팽팽하게 갈라졌던 이 세대(당시 40대)는 10년 만에 확고한 보수 표밭으로 돌아섰다(〈표 1〉).

투표율은 더 경이롭다. 50대 투표율은 출구조사 추정으로 무려 89.9%였다. 60대보다도 높다. 물론 출구조사의 세대별 투표율은 추정값에 불과하고 정확한 결과는 몇 달 후 나오는 선관위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89.9%보다는 낮을 가능성도 제법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20대와 30대가 기대 이상의 결집력을 보여주었는데도(두 세대 구간 모두 노무현 열풍이 불던 2002년보다도 투표율이 높다) 진보가 패배한 최초의 선거다.

10년 전 진보·보수를 절반씩 선택했던 50대는 어떻게 박근혜 당선의 핵심 기반이 되었을까. 선거 직후부터 몇 가지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 세대론의 철칙:나이가 들면 보수가 된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의외로 잘 등장하지 않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특정 세대의 정치 성향은 두 가지 궤적을 따른다. 첫째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관찰되는,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하는 경향이다. 2002년 노무현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당시 30대를 예로 들어 보면,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에 좀 더 기운 정도인 스윙층(부동층) 40대로 변신했다. 10년 뒤에는 이 세대가 보수의 핵심 기반인 50대가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정치적으로, 이런 경향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전망을 제공한다. 〈표 2〉에서 보듯, 한국은 늙어가는 나라다. 10년 전에는 2030 세대가 전체 유권자의 48.3%에 달했지만 지금은 38.2%다. 반면 5060 세대는 10년 전 29.3%에서 현재 40%로 폭증했다. 세대별 투표율 차이까지 고려하면, 세대 선거는 보수에 유리한 게임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 그대로 관철됐다.
 

둘째, 특정 세대의 고유한 경험에 기반한 그 세대 특유의 정치문화가 유지되는 경향도 있다. 유럽의 68혁명 세대는 60대가 된 지금도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관찰된다. 미국에서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집단적 연대를 각인한 20세기 전반 세대의 사회 참여가, 늘 전후 세대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세대인 현 40대의 향후 행보가 관심사다.

특정 세대의 정치 성향을 세대론으로 접근할 때에는 이 두 가지 경향을 두루 살펴야 한다. 한국의 50대는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하는 경향이 더 우위를 보였을지 모른다. 이렇다 할 강렬한 집단 경험이 있는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신 독재 반대 운동은 극소수 대학생의 몫이었을 뿐 세대의 집단기억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럴 경우 ‘고령화=보수화’라는 단순한 법칙이 관철될 여지가 크다.

 문화적 보수주의:진보의 불편한 태도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선거 과정에서 수집한 50대들의 반응을 이렇게 요약해 들려줬다. “정책적으로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고, 문화적으로 진보 쪽을 불편해한다. 나만 옳다는, ‘진리를 독점하는 태도’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는 거다. 산전수전 다 겪은 50대 눈에는 ‘저만 잘났나’ 반감이 드는 거다. 그런 기류가 가장 컸던 것이 텔레비전 토론 때였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했을 때, 지지층이야 열광했지만 50대에서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 자기는 저럴 자격이 되는 사람이냐’는 말이 나왔다.”

‘진리를 독점하는 태도’는 되풀이해 지적되어온 진보의 고질병이다. 주로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둔 한국의 진보 진영은 보수 세력과의 선거를 선악 구도로 포장하는 데 익숙하다. 선거를 십자군 전쟁처럼 치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지층은 열광시키지만 스윙층을 피곤하게 만든다. 박 대표는 “미국의 보수가 리버럴의 태도를 오만하다고 공격하고 그게 먹혀들듯이, 한국에서도 태도의 문제에 주목하는 문화적 보수주의의 싹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 50대의 역습:2040 전략의 반작용?

야권의 세대 전략은 ‘2040 전략’이었다. 논리는 단순하고 매력적이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2040 세대는 5060 세대보다 많다. 5060 세대는 이미 한계수준으로 투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2040 세대의 낮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이긴다.

성공 사례도 두 번 있다. 2010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두 선거는 모두 극단적인 세대 대결 양상으로 흘러갔고, 2040 세대의 투표율이 오르면서 야권이 이겼다. 특히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 지지율이 20대 69.3%, 30대 75.8%, 40대 66.8%에 달하는 아주 강력한 결집을 보여준 세대 선거의 대표 사례다. 

하지만 특정 유권자의 결집은 상대방의 결집을 필연적으로 자극한다. 호남표가 뭉치면 영남표가 질세라 뭉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야권이 선거를 2040 세대 전략으로 치른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세대’가 ‘지역’만큼이나 의미 있는 전선이 되었다. 50대의 대항 결집이 일어났다. 수많은 평론가들과 〈시사IN〉을 포함해 거의 모든 언론이 전제했던 가정, 50대 투표율이 이미 한계수준이라는 가정은 사실과 달랐다. 50대에도 투표율 상승 여력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이번 대선은 보여주었다.

50대는 왜 2040 동맹의 일원이 아니라 반대편에 서는 것을 선택했을까. 그것도 왜 그토록 열정적이었을까. 우선은 2040 동맹이 넓게 보아 ‘신규 진입자 동맹’에 속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려는 20대와 노동시장 내에서 안정된 위치로의 상승을 노리는 3040 세대는, 일종의 반(反)기득권 동맹이라는 속성을 공유한다. ‘좋았던 시절에 먼저 사다리를 올라갔던’ 50대는 동맹 대상이라기보다는 타깃이 된다. 2040 동맹이 50대의 불안을 자극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50대가 모두 ‘사다리를 올라간’ 기득권에 속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50대 대다수는 교육비·은퇴 압박·부동산이라는 삼중고에 허덕이는 또 다른 한계세대다. 자녀 교육비는 정점을 찍는다. 은퇴는 코앞의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상 유일한 자산이자 노후대책인 부동산 가격이 영 추이가 불안하다.

이렇듯 한계상황에 몰린 50대는 ‘불안한 세대’다. 2040 신규 진입자 동맹의 등장은 이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여기에 응답한 후보는 문재인이 아니라 박근혜였다.

박 후보는 선거 막판 텔레비전 광고와 텔레비전 토론 등에서 끊임없이 ‘위기 담론’을 강조하며 불안을 자극했다. ‘위기 극복의 지도자’ ‘중산층 70% 시대’ ‘가계부채 탕감’ 등의 메시지를 맞춤형 해답으로 던졌다. 정치 고관여층은 허황된 구호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삼중고 절벽에, 뒤로는 2040 동맹에 포위된 이 ‘불안한 세대’는 박근혜에 공명했다.

 2040 전략의 지독한 역설

이처럼 한계상황에 몰린 유권자야말로 야권이 공략해야 할 잠재 지지층이다. 야권은 1470만 표라는 역대 최고 수준의 결집을 이뤄내면서도, 정작 핵심 지지층으로 만들어야 할 ‘벼랑에 선 유권자’를 보수에 내주었고, 그게 결과를 갈랐다. 왜 그랬을까. 애초에 야권이 2040 전략을 채택하는 과정을 보면 시사점이 있다.

정치 교과서에 등장하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장 일반적인 구분선은 계급이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고, 정치는 이런 갈등을 제도 안에서 동원해내는 게임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계급동맹이라는 기획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노조 조직률은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오랜 반공 교육의 경험으로 계급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된 경향이 있다. 역사적 경험도 특수하다.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해결해본 경험은 오히려 박정희 정권이 제공했다. 야권이 계급전선을 동원하기가 난감한 구도다.
 

2040 세대 전략은 계급 동원이 험난한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우회로로 선택된, ‘변형 계급동맹’의 성격도 있었다. 2040 세대전략을 다룬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의 저자 유창오씨는 지난해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2040 세대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없거나 사라진 세대가 되었다.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던 50대 이상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2040 세대는 단순히 정서적 동질 집단이 아니라 물적 기반을 공유하는 사실상의 계급이다.”(〈시사IN〉 제216호 커버스토리).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야권은 2040 동맹을 계급동맹으로 재해석해내는 데 실패했다. 세대전략은 대체로 ‘새 정치’ 구호에 함몰됐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던 20대 무당파층에 과잉 주목한 결과였다.

세대전략과 새 정치가 사실상 동의어가 되면서 계급동맹은 증발했다. 2040 동맹이 한계상황에 처한 50대를 포괄할 가능성은 그렇게 차단되었다. 새 정치는 한계상황 50대에게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어쨌거나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고 구호로나마 대안을 제시하는 박근혜와, 2040 세대전략으로 기존 진입자인 자신을 포위한다고 느껴지는 문재인 사이의 선택이었다. 50대는 투표율 89.9%, 박근혜 지지율 62.5%로 응답했다.

원래 변형 계급동맹 전략이기도 했었던 야권의 2040 전략은, 이번 대선에서는 한계상황 50대를 보수 지지층으로 몰아붙이는 결과를 낳았다. 지독한 역설이자, ‘편하고 빠른 우회로’만 찾던 야권에 대한 응징이다.

 늙어가는 한국, 진보의 미래는?

이번 대선은 고령화에 따른 유권자 구조 변화가 어떤 위력을 보이는지를 증명했다. 진보를 25년 동안 짓눌렀던 보수 우위의 지역 구도가 2012년 이후 진보 우위의 세대 구도로 대체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야권 전략통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인구구조 변화와 세대별 투표율 차이 때문에, 세대 구도 역시 진보에게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야권 일각에서는 현재의 40대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정확히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다. 강렬한 집단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 효과가 상쇄되리라 기대하는 세대다. 이번 대선에서 40대는 55.6% 대 44.1%로 문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던 2002년의 40대보다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 이 세대가 고령화가 되면서도 진보 성향을 유지해줄 것이라는 기대다.

반론도 있다. 유신 반대 투쟁만큼은 아니지만, 민주화 운동 역시 세대 전체의 집단체험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체험에 가깝다는 반론이다. 그 때문에 현재 40대 역시 보수화 경향을 피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결국 진보의 2040 세대동맹 기획이 한계상황에 직면한 장·노년층까지 포괄하는 계급동맹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 된다. 이 기획이 실패한다면, 한국 정치는 기존 진입 세대와 신규 진입 세대가 서로 한계상황에 몰린 채로 제로섬 게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세대 전쟁의 악순환으로 빠지는 길이다. 한계상황을 공유하는 기존 진입층과 신규 진입층 사이에 세대 전쟁보다는 협력과 연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역사를 복기해보면, 기존 진입 세대가 신규 진입 세대와 세대 전쟁을 벌이고 진입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던 공동체는 대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는 시스템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징후인 동시에 결과다. 두 번째 베이비붐 세대가 이미 중·장년층에 접어들었고 오랫동안 기록적인 저출산에 시달리는 한국에서, 신규 진입 세대는 앞으로도 험난한 싸움을 해야 할 전망이다. 세대 전략 플러스알파가 필요한 이유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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