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 선정을 위한 인터넷 투표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1위에 오를 정도로, 그의 등장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의 은둔형 신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 대중 앞에서 당당히 정견을 밝히는 젊은 지도자의 모습은 북한의 ‘동토’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반면, 4월에 실패했던 장거리 로켓 발사를 12월에 다시 강행하는 모습에서, 역시 마찬가지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한 그림의 두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중국이 그러했듯이, 북한도 지금 은둔과 고립의 왕국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다. 중국은 1978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에 앞서 1964년의 핵실험과 1970년의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해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구축했다. 북한식 용어로는 먼저 선군시대(先軍時代) 구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선경시대(先經時代), 즉 민생경제 시대로 나아간다.
 


이영호 숙청으로 선군파 반발 정리

아버지 김정일 전 위원장은 자신을 선군시대의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아들인 김정은 비서는 선경시대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랐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평이다. 이른바 ‘덩샤오핑 프로젝트’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처럼 김정은 비서가 ‘북한 경제재건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하도록 김 전 위원장이 살아생전 사력을 다해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인 올해 4·15 행사야말로 이 프로젝트를 위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김정일 전 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했고, 4월의 로켓 발사 역시 의도적이든 아니든 실패함으로써, 스케줄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 이후 북한에서 일어난 일들은 차질이 빚어진 부분을 수습해 원안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것은 4·15 이후 민생경제파(선경파)의 대표 인물인 박봉주 전 내각 총리가 당 경공업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점이다. 2003~2004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심화 확대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당과 군으로 배급되던 석탄을 민생경제로 돌리려다 밀려났던 그의 등장은, 덩샤오핑 시대 당·군의 특권경제를 국가경제로 전환했던 중국의 사례가 북한에서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7월의 이영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선군파의 물적 기반을 국가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반발하는 세력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이는 지난 6월부터 시작된 7·1 조치 시즌 2, 즉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반대 세력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 여파로 6월의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짝으로 추진했던 신의주·남포·해주·칠보산 특구 발표가 2012년 10월에서 2013년 1월로 미뤄졌다.

그러나 10월, 11월을 거치면서 민생경제의 필요성이 대세로 굳어졌다. 그 결과 군에 대한 숙청이 최근까지 진행돼왔고, 마무리로 2012년이 다 가는 12월12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다시 감행했다. 2012년으로 선군시대를 마감하고, 2013년부터는 새로운 선경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그 선경시대의 리더가 바로 김정은 제1비서다. 그가 과연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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