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과제다(박근혜).” “다음 정부의 시대적 과제는 정치적 민주화를 바탕으로 경제적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문재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민주화는 꼭 이뤄져야 하는 시대의 과제다(안철수).”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뉴스를 생산한 대선 후보 세 명이 경제민주화에 관해서는 입을 맞춘 듯 같은 이야기를 했다. 생존의 위기에 처한 골목 상권 상인들은 연일 경제민주화 실천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대기업과 보수 언론들은 경제민주화의 폐해를 성토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사설을 썼다. 2012년 대한민국 경제계를 경제민주화 이슈가 점령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시사IN〉이 경제 분야 ‘올해의 인물’로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뽑은 이유이다.

경제민주화는 올해 처음으로 떠오른 신조어가 아니다. 엄연히 헌법에 명시돼 있는 용어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현실이, 헌법이 규정하는 사회와 가장 동떨어져 있는 이 시점에, 경제민주화는 위협받는 경제 약자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하청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재벌가 회장님은 횡령·탈세를 저질러도 무슨 무슨 공휴일이면 너그러이 사면되고, 재벌 2세들은 외국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사·상무 명함을 달고 맨 처음 하는 일이 골목길 상권에 진출해 빵집·치킨집 등 영세 자영업자의 밥줄을 끊는 일이다.

이런 ‘상위 1%의 경제’를 종식시키겠다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올 한 해 내내 여야는 ‘경제민주화’ 경쟁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연초 발표한 정강 정책인 ‘국민과의 약속’에서 경제민주화를 서두에 배치하고, 박근혜 후보는 캠프를 짤 때 ‘경제민주화 전도사’라 불리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선거대책위원회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지난해부터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꾸려온 민주통합당은 지난 7월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6개 법률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 순환출자 금지, 부당 거래 시민 고발권 도입 등이 이 법안에 담겼다. 

유통법 개정안, 여당 반대로 무산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진짜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적극적으로 띄웠던 여당은 선거 운동 막바지인 11월 말부터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 부양론’ 혹은 ‘경제 위기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 열기 속에서 여야가 합의해 올린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골목 상권과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이다)’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집단 퇴장으로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연말 인사를 통해 삼성·대상·LS 등 재벌 2·3세들이 대거 ‘초고속 승진’한 뒤 대기업의 경영권 세습 구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미완의 경제민주화, 공은 2013년으로 넘어갔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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