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편집국은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인 12월17일 안철수 전 대선 후보를 201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올해 대선판을 가장 많이 뒤흔든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막상 대선 결과를 받아보고는, 안 전 후보를 올해의 인물로 꼽는 게 적절한지 내부 토론이 있었다. 75.8%라는 높은 투표율 속에 과반 득표로 ‘첫 여성 대통령’이 된 박근혜 당선자의 저력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세론’을 일찌감치 누그러뜨리고 여야 간 1:1 대결 구도를 이끌어낸 데에는 안철수의 힘이 결정적이었고, 선거 기간 내내 새 정치를 화두로 이슈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올해의 인물로 적합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의 눈이 또다시 안철수 전 후보에게 쏠린 지금, ‘대선 드라마 속 사실상의 주연 안철수’를 되짚어본다. 파괴력 강한 1년차 정치인의 행보가 비단 올해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한국 시각 12월20일 새벽,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국내 언론사 특파원 20여 명이 한 승객을 찾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안철수 전 후보였다. 취재진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그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단 하나의 질문에만 명확하게 답했다. “정치를 계속하실 건가요?” 대답은 반문이었지만 그 만큼 더 강조한 듯 들렸다. “제가 전에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짧은 한마디는 당장 기사화됐다. 정치권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야권에서도 ‘안철수 책임론’과 ‘안철수 신당론’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대선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에도 바쁜 박근혜 당선자 측도 안 전 후보를 거론했다. “안철수 현상이 더 이상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 “안철수의 정치적 효용성은 끝났다(홍준표 경남도지사 당선자)”. 투표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를 탄 그에게 정치권은 여전히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의 움직임에 야권 재편 요동칠 듯

다시, 안철수다. 대선 전에는 시민이 안철수를 호출했다면 이번에는 야권이다. 유례없       는 1:1 전면 구도에서 패배한 야권은 후폭풍에 휩싸였다. 친노는 다시 폐족이 되었고, 비노는 힘이 약하다. 진보는 사실상 자력 생존이 힘든 상태가 되었다. 대선 패배를 딛고 다시 시작할 기반으로 야권은 너나 할 것 없이 안철수를 바라본다. 이제 안철수는 상수다. 야권 재편과 혁신의 결과에 따라 안철수 전 후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안 전 후보의 움직임에 따라 야권의 판이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대형 신인. 그것도 정식 정치 무대에 선 날은 정확히 66일에 불과한 안철수 전 후보는 데뷔 전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출마 선언 전부터 무대의 주연으로 대중의 러브콜을 받았다. 서막은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담판 20분이었다. 대통령 후보 지지율 1위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는 박근혜 당시 의원을 처음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시간이 지나도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언론은 그것을 ‘안철수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4월 총선이 끝나자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다. 야권의 승리가 점쳐지던 4월 총선은 민주통합당의 공천 실패 등으로 여권에 승리를 안겼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안철수 현상에 힘이 실렸다. 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강력한 바람이었다.

침묵하던 안철수는 7월부터 본격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내놓았고 연이어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발간 초기, 1분에 27권씩 팔릴 정도로 열풍이었던 〈안철수의 생각〉은 모범생 안철수다운 정치 입문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평가받아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티저 마케팅으로 이목을 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9월19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진심의 정치를 하겠다는 일성이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변화와 새 정치의 가치를 선점했다.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뛰어넘어 통합을 이루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에 국민은 열광했다.

안 후보는 정치 쇄신 경쟁의 불을 댕기기도 했다. 선거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위와 민주통합당의 새로운정치위원회는 그 스스로가 꼽는 ‘안철수 효과’이기도 하다. 캠프 관계자로부터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안철수 전 후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장에 젊은이를 끌어냈다. 서울 명동 유세에서는 인파에 둘러싸인 안 전 후보를 향해, 아이돌이냐고 묻는 일본인 관광객까지 있을 정도였다.

 

 

 

 


위기도 찾아왔다. 대중은 야권 단일화라는 시나리오를 원했다. 문재인 후보와 언제 어떻게 단일화를 할 것인지는 출마 당일부터 받은 질문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11월10일께 공약집을 내고 평가받겠다고 밝혔지만 단일화 압력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거세지는 단일화 압력에, 결국 안 후보는 자신이 뱉은 말을 뒤집어야 했다. 11월5일 문재인 후보와 단독 회동을 제안했고 그때부터 안 후보의 모든 행보는 단일화 논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포스코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장례식과 민주통합당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장례식에 참석해 산업화·민주화 세력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려던 안 전 후보와 정권교체를 우선시하는 야권 지지층 사이의 가치가 충돌한 결과였다.

단일화 협상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중단해버리면서, 안 후보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은 높아갔다. 그 와중에 안 후보의 ‘정치 경험 없음’이 부각되기도 했다. 정치 쇄신의 구체적인 그림으로 ‘국회의원 정원 축소’ 같은 안을 던지면서 우호층 안에서도 여론이 갈렸다. 여의도 정치를 ‘나쁜 경험’으로만 치부해버리면서 정치 또한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상식 강조, 자신의 브랜드 만들어

롤러코스터를 타듯, 단일화 협상이 재개되고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까지 성사되었지만 11월25일로 시한을 못 박은 협상은 깨질 위기까지 처했다. 그 순간, 안 후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11월23일 금요일 밤 8시 사퇴를 선언했다. 지지율 20%를 넘나든 대선 후보의 조건 없는 사퇴는 18대 대선 기간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았다. 여파는 지지 성향에 따라 감동과 충격으로 갈렸다. 안철수 캠프와 인연을 맺은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그날 밤 이런 상반된 평가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왕 할 거면 좀 더 화끈하게 문재인 후보를 밀어주고 사퇴하지 그랬냐’부터 ‘안철수의 조건 없는 사퇴를 보면서 처음으로 나의 시민운동 20년 역사를 반성했다’까지 다양했다. 어쨌든 안철수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안철수 전 후보는 여전히 시선을 끌었다. 그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 민주통합당은 적극적으로 구애하다, “안철수 입만 쳐다본다”라는 비판도 받았다. 안철수의 생각에 문재인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지만, 단일화 과정의 불협화음 때문인지 안 전 후보는 문 후보를 적극 돕지 않았다. 오히려 해단식에서 네거티브 전으로 가는 선거판 전체를 비판했다. 문 후보와 다시 만나 새 정치에 대한 약속을 받고서야 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원 유세에서도 안철수 스타일을 선보였다. 소리통을 세 번 외치며 유세를 지켜보는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사람의 입과 입으로 말이 전해질 수 있게 하는 ‘인간 마이크’는, 안 전 후보를 통해 1980년대 학생운동권 문화에서 2012년 새로운 참여유세 방식으로 거듭났다. 유세가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시민을 발언대에 세우기도 했다.

12월18일 서울 강남역 마지막 공식 유세에서도 그는 ‘안철수다움’을 유지했다. “민주주의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게 상식입니다. 기득권이 특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우리 경제의 체력을 키울 것이라는 게 상식입니다. 언론이 정권과 한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입니다. 정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는 게 상식입니다. 상식은 지켜져야 한다는 게 상식입니다.”

국민과 상식을 강조한 안철수의 일관된 말은 그 자체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진보·보수 아닌 상식파” “돌아가는 다리를 불살랐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와 같이 짧은 조어로 대중에게 인상 깊은 말을 던질 줄 아는 정치인 안철수의 데뷔는 2012년 연착륙했다. 무대를 내려와서도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주연 같은 조연’이었던 그는 이제 다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중이다. 2013년의 안철수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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