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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관전하는 시간이 끝나면

따뜻한 방에서 정치를 관전하는 시간이 끝나면, 권력이 당신을 구경할 것이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한다. 그러나 권력은 절대 기권표 합계 숫자 따위를 고려하지 않는다.

배명훈 (소설가)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제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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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방안에 앉아 정치를 관전했다. 왜 저런 걸 토론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는 룰이었지만, 나름대로 스릴도 있고 대체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반응도 떠들썩했다. 이렇게 재미있게 한때를 보내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표를 주면 되는 일. 선거철이다. 그런데 나는 이 선거가 무섭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방을 나와서 권력의 위치에 서서 이 상황을 한번 내려다보자. 사람들이 사는 높이가 아닌 저 위쪽 어딘가로부터 이 아래쪽을 향해. 의회가 있다. 중요한 공공재들을 생산해내는 곳이다. 그 공공재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 법률일까. 그렇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의회가 법을 만드는 건 맞는데 법을 꼭 의회에서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게 단지 법 자체뿐이라면 왕이 줄줄 읊어대고 누구 하나가 옆에서 받아적기만 해도 된다. 왜 꼭 의회에서 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왜 입법고시를 패스한 국립입법원 직원이 아니라 투표로 선출된 대표가 법을 만들어야만 하는가.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가.

문제는 정당성이다. 근대국가가 ‘국민으로부터 뽑아내는 자원의 총량’은 이전 단계 정치체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런 어마어마한 자원을 추출해 내고도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일상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런 외형을 취하는 것이다. 이 형식을 통해 국가는 중요한 공공재 한 가지를 생산한다. 바로 ‘정당성’이다.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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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고통치자를 뽑는 방법은 많다. 그리고 투표는 새 정치권력을 출범시키는 방법치고는 꽤 비효율적인 방식에 속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대통령 직선제를 택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물론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다. 그게 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여론을 수렴해서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이라고? 그렇다. 그런데 또 그렇지 않다.

다시 위에서 아래쪽으로 시선 방향을 옮겨보자. 사실 우리 역사에 그런 우아한 사회계약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1987년의 합의가 있었을 따름이다. 그렇게 되찾은 대통령 직선제. 그때 정권이 교체되었던가. 그렇지 않았다. 정권은 연장되었다. 어째서 군부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당성이 민주화라는 외형을 통해 다시 한번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선거, 군부가 정당성을 얻은 계기

내가 두려운 건 민주주의의 바로 이 대목이다. 민주주의라는 게 반드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에 따른 전리품으로만 주어지는 게 아니고, 군국주의나 권위주의를 유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위로부터 자발적으로 양도된 경우 또한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본론은 이것이다. 이제 곧 따뜻한 방안에 앉아 정치를 관전하는 시간은 끝나리라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는 순간, 원래 하던 대로 다시 권력이 당신을 구경하게 되리라는 사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한다. 기권표 합계 숫자가, 새롭게 창출된 정권에 의미 있는 제약을 가할 수 있도록 룰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을 저 권력은, 절대 그런 룰을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 전부가 충분히 권리를 행사했든 안 했든 권력은 그저 이렇게 간주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온전한 ‘국민의 뜻’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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