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지난해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중동 민주화의 소용돌이에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모하메드 모르시 대통령은 수많은 희생을 딛고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모르시 대통령이 결국 무리수를 두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을 외교적인 성과로 해결한 모르시가 승리감에 취해 자신만만하게 추진한 새 헌법이 문제였다. 지난 11월22일 그가 발표한 새 헌법 선언문은 대통령에게 지나친 권한을 주는 반면 여성 권리와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이슬람교에 너무 치우쳤다는 평을 듣는다. 야권에서는 이를 두고 ‘현대판 파라오 헌법’이라며 반발한다. 

헌법을 둘러싼 이집트의 논란과 갈등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모르시 대통령은 취임 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11월28일에는 이집트 대법원이 모르시 대통령이 새 헌법 선언문을 폐기할 때까지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르시는 과거 무바라크 대통령과 비슷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집트 제헌의회는 11월30일 카이로에서 가진 의회 표결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법의 근간으로 한다”라는 조항에 합의했다. 이 조항을 포함해 전체 234개 조항의 찬반을 가리는 이 표결에는 제헌의회 의원 100명 가운데 86명이 참가했다.

문제는 86명 의원이 모두 이슬람과 연관된 인사라는 것이다. 야권과 기독교 의원 14명이 빠지고 무슬림형제단 회원과 살라피스트(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한 파) 등 이슬람주의자들이 주축을 이뤄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이러니 새 헌법은 국민들이 피를 흘리며 바랐던 민주주의에 근간을 두었다기보다 마치 이슬람 경전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무바라크 시절에 많은 탄압을 받았던 무슬림형제단이나 그 단체 소속이었던 모르시 대통령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헌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새 헌법은 국민 처지에서는 모르시가 무바라크와 같은 길을 가는 독재자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국민의 반발은 거셌다. 의회 표결 직후 민주화의 성지가 된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뿐 아니라 대통령궁에 20만 시위 인파가 모였다. 이들은 무바라크를 몰아낼 때와 마찬가지로 ‘독재 타도’를 외치며 모르시 대통령에게 항의했다.

군부에도 이번 혼란은 기회

그런데 이때 이슬람형제단과 살라피스트들이 ‘찬성, 모르시’를 외치며 이들 앞에 친정부 시위대로 등장했다. 사실 이들 모두 아랍의 봄 혁명 때는 한목소리로 ‘타도 무바라크’를 외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혁명이 끝난 후 이들이 모르시를 찬성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두 파로 나뉜 것이다. 모르시를 찬성하는 쪽은 이슬람주의자들이다. 반대하는 쪽은 서방세계 같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모르시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을 주축으로 한 이슬람주의자 수천명과 야권·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모르시 반대 세력 수만명은 연일 대통령궁 주변에서 대치하며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7명이 숨지고 600명 이상이 다쳤으며, 모르시 반대파는 총파업에 나섰다.

모르시에 반대하는 세력은 범야권뿐 아니라 언론계·관광업계·학계 등 다양하다. 이집트의 유력 일간지들이 12월3일부터 1면에 일제히 ‘독재 반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집트 유력 일간지 〈알슈루크〉는 사설에서 “파시즘이 도래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11개 일간지와 주요 민영 텔레비전들은 12월4일에도 총파업에 나섰다.

특히 이번에는 관광계의 반발이 심하다.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대표되는 유명 관광지이다.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이 관광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난 민주화 혁명 때부터 관광 수입이 대폭 줄었다. 이후 회복세를 보이다가 이번엔 모르시의 새 헌법 때문에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새 헌법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해 세속적인 일에 강하게 반대하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다.

이집트관광협회 회원인 아하마트 샤픽 씨는 “대부분 유럽 같은 서구 사회에서 관광객들이 오는데 이들에게 술도 비키니도 안 된다고 한다면 누가 이집트에 관광을 오겠는가. 해변에서 신혼부부가 편하게 수영할 수 없다면 이집트 관광은 망할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래서 일부 호텔과 식당들도 모르시에 항의하는 뜻으로 12월4일 30분간 소등했다.

법조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법원과 각급 지방법원이 모르시의 새 헌법에 반대해 이미 11월 말부터 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카이로 대학의 법학교수들이 “법을 존중하지 않는 정권하에서 법을 가르칠 수 없다”라며 총파업 동참을 선언했다. 이집트 사법부의 전면 파업은 영국 식민지배에 저항했던 1919년 이후 93년 만의 일이다. 전국 판사 9500명으로 구성된 판사회는 12월15일 제헌의회가 제출한 헌법 초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할 때 감독 업무를 수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집트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도 12월2일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이슬람주의 세력이 장악한 제헌의회의 합법성 여부를 가리는 재판을 진행하려 했으나 모르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에 막혀 재판소에 들어가지 못했다. 헌재는 “이날은 이집트 사법 역사상 가장 어두운, 암흑의 날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사법부 파업에는 또 다른 대결 양상이 숨어 있다. 사법부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 때 임명된 인사들로 구성된 기득권 세력이다. 즉 모르시에 반대하는 명분이 겉으로 보기엔 새 헌법이지만, 사실은 무바라크 잔당의 어깃장 성격도 있는 것이다.

이들은 혼란을 틈타 다시 한번 권력이 이동하길 바란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사법부가 무바라크 축출에 기여했던 자유주의 세력과 뜻을 같이하며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대립은 이집트 정치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뿐만 아니라 당파 갈등까지 포함함을 보여준다.

권력에 욕심을 내기는 군부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이집트 군부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지만 과거 무바라크 축출 후 정권을 놓지 않으려다 시민들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던 군부에게도 이번 혼란이 호기임에는 틀림없다. 더군다나 모르시가 12월9일 군에 민간인 체포 권한을 부여했고 군부가 연일 “이집트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라고 발언하면서, 군부가 다시 정치 전면에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이런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현재의 이집트 혼란을 만들고 있다. 수많은 희생 위에 간신히 민주주의 걸음마를 하는 이집트에게는 어쩌면 거쳐야 할 당연한 순서인지 모른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한 아랍의 봄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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