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집을 짓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랫집 이웃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단독주택 거주자의 평균 자녀수가 아파트 거주자보다 많음을 확신한다. 애가 혼자 있으면 얌전하다가, 둘이어도 그럭저럭 통제 가능하지만, 셋이 되면 구르고 뛰며 노는 게 도저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이쯤 되면, 엄마·아빠는 무서운 아랫집 이웃이 없는 단독주택을 열망하게 된다. 그래, 이사 가자. 집을 짓자.

그렇게 집짓기 상담을 시작해 집짓기에 도전하고, 단독주택 입성에 성공한 건축주들의 삶의 변화를 들어보면 역시 제일 달라진 건, 아이들의 변화이다.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떨어지지 않던 아이들이 붙임성이 좋아지면서, 제 스스로 마당으로, 동네로 뛰어 나간다. 집안에서 이제 맘껏 뛰어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정작 집 안에서 뛸 시간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다.

아이들은 이제 집의 경계를 벗어나, 땅과 동네와 관계 맺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아파트 살 때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살던 “밥 안 먹어!”라는 협박은 단독주택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제는 반대로 부모 협박이 통한다. “얘들아, 그렇게 말 안 듣고 밥 안 먹으면, 다시 아파트로 이사 가버린다.” 놀랍게도 이 협박 한마디가 아이를 다루는 리모컨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단독’주택에서 공동체를 느끼다

필자는 이메일을 통해 이런저런 집을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몸이 아픈 자녀·남편·아내·부모를 둔 사람들의 사연은 언제나 절절하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종양으로 건강하던 아이가 휠체어에 의지해 온종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에 따라 보호자 본인의 사회적 관계망 역시 무너져버렸다는 사연이 도착했다. 그가 요구했던 집은 아이의 재활 공간이자 자신의 사회적 활동 공간이 되는 집이었다.

몇 년 전 척추측만증을 앓던 소녀를 위해 지었던 집이 생각났다. 중정을 생활공간으로 만들었던, 그리고 그 마당이 마을로 연결되어 언제나 내다보고 나가볼 수 있었던 곳. 사적인 집의 공간과 공동체적인 마을 공간 사이의 경계가 엷은 주택의 특성이, 재활과 관계 맺기에 도움을 주던 집이었다. 집을 지으면서 참 많은 사람의 삶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삶이 하나하나 구체적인 형상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매번 새롭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파트는 공동주택인데, 공동의 삶이 없다. 단독주택은 ‘단독’으로 사는데 오히려 공동의 삶이 있다. 길과 마을이라는 공동체 삶의 공간에 집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아파트는 마을 안에서도 단지·동·층으로 구분되는, 몇 겹의 경계에 둘러싸인 개별화된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현관문 안쪽 공간에서는, 몇 겹 너머 공동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반면 마을의 길에 직접 닿아 있는 주택은 공동의 삶에 아주 얇은 경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창문 너머, 마당 너머 이웃의 삶에 밀착될 수밖에 없는 공간구조다. 공간은 역시 삶을 변화시킨다.

거실을 중심으로 모든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아파트 공간 구조에 익숙한 우리에게, 주택의 깊고 돌아가는 동선은 낯설다.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거실 공간만큼이나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혼자 숨어들어갈’ 수 있는 어둑한 구석이 있는 집이 좋은 집이다. 집과 마을의 관계가 엷고 얕은 경계로 이루어지는 반면, 집 안의 공간들은 꽤 깊고 두꺼운 영역으로 구분되어 삶을 조직한다. 이것이 바로 단독주택의 매력이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 대부분은 첫 상담에서 편안한, 따뜻한, 자연스러운 따위 추상적 단어로 이루어진 집의 모습을 내밀고는, 그 다음 방 몇 개, 욕실 몇 개, 어느 정도 크기의 거실, 몇 층으로 구성할지 제시한다. 그다음 방안에 욕실을 들일지, 드레스 룸을 들일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온통 내부 공간의 쓰임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집을 땅에 앉히고 남은 공간을 ‘마당’이라고 부르고, 어떤 나무를 심을지 텃밭을 가꿀지 천천히 생각해보겠단다. 하지만 나는 어떤 삶을 살지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집짓는 과정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 구체적 상상이 바깥 공간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남는 공간인 마당을 가장 나중에 생각하지 말고, 가장 먼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집 밖에서 발견되는 삶의 즐거움

“저 나무 아래가 제가 휴일에 아침식사 하는 곳이에요. 침실 창문 바깥으로는 사방 1m 사각 못을 파고 거기에 조명을 넣었어요. 이게 눈 내린 겨울밤에 보면 아주 멋져요. 낮에 구름 떠가는 것도 볼 수 있고요. 서쪽으로 낸 2층 테라스는 석양 감상용입니다. 의자를 두 개 나란히 놓고 멍하니 해지는 거 보는 게 낙이에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듯한 지인이 털어놓은, 집 밖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렇게 집 짓고 사는 삶의 낙은 대개 집안에서보다 집 밖에서 발견되기 쉽다. 이것이 바로 또 하나 단독주택의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집짓기를 통해 변화하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빠가 변한다. 요즘 집짓기 열풍만큼 뜨거운 게 캠핑이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아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심하게 말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이 시대 아빠들의 삶이 캠핑장에서, 주택에서 180° 바뀐다. 비로소 요리하는 모습도, 잠잘 곳을 보살피는 자상한 모습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누구에게서? 바로 아빠에게서. 집짓기 상담부터 아빠들의 구실이 두드러진다. 아빠들은 아무리 바빠도, 다른 집안 대소사와 다르게 집짓는 일에는 꼭 직접 나서서 챙긴다. 하물며 자녀교육은 엄마 몫이라며 대화에 끼지 못했던 우리 시대 아빠들이 집짓기 과정에서는 수다쟁이가 된다. 주인공이 된다. 단 하나 부작용이 있다면, 아빠들이 말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그래도 과묵한 아빠보다 낫지 않은가?

기자명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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