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에 걸린 옥외 현수막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프린트되어 있다. 박종진 앵커와 이영돈 PD다. 내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두 사람이 진행하는 〈박종진의 쾌도난마〉와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은 ‘채널A를 먹여 살리는 효자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신개념 시사 토크’를 표방한 〈박종진의 쾌도난마〉(〈쾌도난마〉)는 240회를 넘긴 채널A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다. 최근 수습공채 PD 시험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을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분석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굳이 인지부조화로 설명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쾌도난마〉가 방송계의 트러블 메이커이기 때문이다. 채널A 처지에서는 효자인지 몰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선 천덕꾸러기 신세다. 수차례 경고·주의를 받았는데도 선정성·편파 보도 시비가 끊이지 않아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출범한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심의해 의결한 내용 32건 중 〈쾌도난마〉가 4건으로 가장 많았다.

심의에 걸린 대상을 종합편성채널 전체로 확대하면 17건으로 지상파 방송 2건에 비해 월등히 많다. 채널A·TV조선·MBN이 각각 5개였고 JTBC가 2건이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26건 중 3건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선 국면에서 ‘종편의 무리수’는 두드러진다. 현재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은 채널A 〈쾌도난마〉,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뉴스쇼 판〉, JTBC 〈집중보도, 대통령의 자격〉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비롯한 종편의 보도 프로그램은 지난 5개월간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4조(정치적 중립), 제5조(공정성), 제8조(객관성), 제16조(사실과 의견의 구별), 제18조(여론조사의 보도), 제23조(방송사고)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제30조(양성평등), 제41조(비과학적 내용)를 어겼다.

먼저 ‘비과학적인’ 내용부터 보자. 〈쾌도난마〉는 10월1일 역술가 이한국씨와 대담을 나누면서 대선 후보들의 사주와 관상, 야권 후보 단일화 시점을 예측했다. “(대선) 6일 정도를 앞두고 안철수 후보님하고 문재인 후보님이 용단을, 어떤 큰 결정을 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에 진행자는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누가 기운이 더 센지?” “알고 계시는데 방송에 영향을 미치니까 안 하시는 거죠?”라는 물음을 던졌다. TV조선과 JTBC 역시 선거 결과 예측을 역술인에 의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분야의 성적표도 좋지 않다. 6월17일자 〈쾌도난마〉에서는 이봉규 시사평론가가 출연해 “문재인 후보, 내 폄하해서 미안한데, 오늘 보니까 눈이 자신감이 없어요. 비서의 눈이야. (중략)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의 눈은 살아있어요. 오히려 너무 살아있는 눈을 의식해서 살짝 낮춥니다”라며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들었다. 10월15일에 방송된 TV조선 〈뉴스쇼 판〉에 출연한 기자는 “제 느낌에는 민주당이 조금은 밀리는 듯 약해 보입니다” 따위 멘트를 통해 공정성 조항을 위반했다.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 약화도 원인

‘품위 유지’와 ‘양성평등’ 분야에서는 〈쾌도난마〉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8월28일 출연한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전 〈문화일보〉 논설실장)는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보면 한마디로 젖비린내 난다. 입에서 어린아이, 젖 냄새가 풀풀 난다”라고 말했다. 10월31일 출연한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박근혜 후보는 생식기만 여성이지 여성이라고 할 수 없다”라는 발언 역시 논란이 됐다.

보도의 선정성으로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사례는 종편의 ‘자살 시도 생중계’였다. 11월26일 TV조선 〈뉴스와이드 참〉은 안철수 후보 캠프 옆 건물에서 투신자살 소동을 벌인 남성과 전화 연결을 해 40여 분간 생중계했다. 앵커는 “안전을 위해서 전화를 끊지 않고 설득하고 있다”라고 했지만 자살보도 준칙을 어긴 데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전규찬 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지난 1년간 종편이 보여준 보도 스타일을 ‘종편 저널리즘’이라고 정의한다. “공정이니, 객관적 저널리즘이니 하는 주류 저널리즘의 정통을 노골적으로 포기했다. 정파적이고 선정적인 양식으로 현실 정치에 개입해 선동하는 프로젝트를 행하는 것 같다”라는 게 전 위원의 얘기다. 지금까지 없던 저널리즘의 탄생인 셈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지상파의 시사 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한 데서 오는 종편의 상승효과를 지적한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이전엔 주로 공영방송이 대선 후보 검증 보도를 했는데 최근 정책검증 같은 기획물을 찾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협회보가 11월1일부터 12월4일까지 지상파 방송 3사 시사 프로그램의 대선 관련 보도를 점검한 결과, 관련 프로그램은 〈KBS 취재파일 4321〉 〈미디어비평〉 등을 비롯해 4편뿐이었고 꼭지 수는 6건에 불과했다. SBS는 아예 없었다. 2007년 대선 당시 총 10편의 프로그램이 2배 넘는 내용을 방송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수치다. 당시 대선 보도를 했던 KBS 〈시사투나잇〉 〈시사기획 쌈〉 , MBC 〈PD수첩〉 등의 폐지와 결방이 결정적인 이유다. 전규찬 교수는 “종편 출범 당시 미디어 권력이 정치권력과 맞물려 선거 국면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게 실현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쾌도난마〉의 박종진 앵커는 2008년 18대 총선 때 서울 관악을 지역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한 경험이 있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올린 ‘자체 인터뷰’에서 그는 “진보세력 측이 출연을 거부하기 때문에 새누리당 패널의 출연 편중은 어쩔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중·동 종편에 출연을 거부하는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보수 일색으로 하면 선거방송 심의에 걸려 대충 구색을 맞추려는 걸 텐데, 전체적으로 대단히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분위기 속에서 방송이 만들어지는 상황이라 개인이 10~20분 동안 소신껏 얘기한다고 그런 분위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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