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는 했다. 늦었지만 안철수 전 후보의 전폭 지원 결정도 이끌어냈다.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이정희 후보의 지원사격을 잔뜩 받았다. 정권교체 지지 여론은 일관되게 높다. 후보의 ‘스토리’와 국정 경험도 풍부하다. 흔히 선거의 3요소라는 구도·인물·이슈에서 모두 해볼 만한 선거다. 더 좋은 상황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2등이다. 여전히 선두는 박근혜 후보다. 본격 선거운동에 돌입하자 격차는 더 벌어졌다. 단일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까지 떠먹여줘야 이길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문제다. 

문재인의 캠페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기대할 수 있는 호재는 모두 끌어 모았는데도, 선거 캠페인이 힘을 받지 못한다. 구도·인물·이슈가 받쳐주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범인은 하나다. 캠프다. 캠프가 캠페인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뭐가 문제일까. 핵심은 캠프 조직의 관료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문재인 캠프는 전형적인 관료제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 대응 속도는 늦다. 컨트롤타워는 실종됐다. 부서 간 장벽은 높다. 책임 질 각오를 하고 도전적인 기획을 ‘지르는’ 분위기도 사라졌다. 대신 관료 조직 특유의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일처리만 눈에 띈다. 평소라면 몰라도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바뀌는 전쟁터에 적합한 방식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응 속도가 늦다. 상대가 전략을 바꾸고 기조를 달리하는데도 변화를 잡아내는 데 둔감하다.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노선을 일관되게 ‘짝퉁 경제민주화’라고 비판하는데, 번지수가 틀렸다. 박 후보는 11월에 이미 경제민주화 포기선언을 하다시피 하며 노선을 크게 틀었다. 재벌개혁안, 영세업자 보호정책, 심지어 재벌에 대한 공정한 법 적용 약속까지 하나같이 후퇴했다. 전경련 등 재벌 세력과 입을 맞춘 경제위기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시사IN〉 제273호 기사).
 

ⓒ시사IN 이명익 문재인 후보(왼쪽)와 안철수 전 후보가 12월7일 부산에서열린 첫 공동 유세에서 손을 잡은 채 환호에 답하고 있다.

‘몇 달 전 박근혜’와 싸우는 문 캠프

‘박 후보의 말바꾸기와 경제민주화 포기’를 부각시켜야 할 장면에서, 문재인 캠프는 ‘진품’과 ‘짝퉁’이라는 엉뚱한 구도를 유지했다. 진품·짝퉁 구도는 서로 경제민주화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던 몇 달 전 상황에서 문 후보가 내세운 구도였다. 하지만 문재인 캠프는 박근혜 후보가 크게 노선 전환을 하는 것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고, 몇 달 전에나 유효했을 메시지를 문제의식 없이 재방송했다.

박근혜 캠프는 이미 ‘위기에 강한 카리스마형 지도자’로 선거 기조를 틀었다(22~23쪽 상자 기사 참조). 경제민주화를 위시한 중도 확장 노선이 박 후보 본인의 역사관 문제에 부딪혀 좌절된 후, 박근혜 캠프가 발 빠르게 내놓은 대응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문재인 캠프가 내놓는 메시지를 보면, 박 후보의 새 기조를 되치기할 수읽기가 안 보인다. 문재인 캠프는 지금 ‘몇 달 전의 박근혜’와 싸우고 있다.

컨트롤타워 실종은 문재인 캠프의 고질병이었다. 전체 선거판의 큰 방향을 잡은 후, 일정·메시지·공보 전략을 그 방향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대선 캠프의 기본이다. 이른바 ‘톱다운 방식’이다. 2007년 이명박 캠프에는 정두언이 있었고, 2012년 박근혜 캠프에는 김무성이 있다.

문재인 캠프에는 이 기능이 실종됐다. 문 후보의 복심으로 4월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친노 전횡 논란에 밀려 아예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 선대본부장단과 캠프 핵심 4장(비서실장·상황실장·전략본부장·공보단장)은 문 후보와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없는 인사들 위주로 꾸려졌다. 누구 하나 컨트롤타워를 자처하고 나서기 애매한, ‘몸 사리는 대리인들 간의 균형’이 발생했다.

이 묘한 균형은 묘한 타협으로 이어진다. 캠프 내에서는 선거 기조에 대해서도 ‘과거 대 변화’와 ‘귀족 대 서민’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컨트롤타워의 기능은 이럴 때 핵심 기조를 확정하고 전략 전반을 그에 맞춰 구성하는 것이지만, 그 기능이 취약한 문재인 캠프에서는 지루한 내부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캠프는 1차 공보물에 ‘변화’ 기조와 ‘서민’ 기조를 둘 다 집어넣었다. 초점은 분산됐고, 기조들 간의 유기성도 떨어졌다.

10월에는 이른바 캠프 내 ‘친노 9인방’도 사퇴했다. 이로써 후보와 끈끈한 신뢰관계를 가진 인사들이 캠프에서 사실상 전부 물러났다. 컨트롤타워에 이어, 실무 책임자 급에서도 힘의 공백이 발생했다. ‘환관 권력’ 논란까지 일으키면서도 어쨌거나 박근혜 캠프의 중심을 잡고 있는 보좌진 4인방(이춘상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해 이제 3인방이 됐다)과 대조된다.

대선 캠프에서 실무 책임자 간의 신뢰와 손발을 맞춰본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선 캠프는 본질상 늘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고, 전략 기조를 모든 부서가 공유해야만 제대로 작동하는 조직이다. 캠프 전체가 사실상 태스크포스(TF)의 성격을 갖고, 실무 책임자들이 상황별로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해야 한다. 하루 두 번 진행하는 공식 회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티타임과 흡연실의 조우까지 총동원하며 실시간 의견 교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끈끈한 네트워크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핵심 자산이다. 그 네트워크를 가진 핵심 실무 그룹이 사라지면, 부서별로 ‘내 할 일만 하는’ 관료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

‘친노 9인방’ 사퇴 무책임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캠프를 지켜본 관찰자들 사이에서는 친노 9인방의 사퇴가 무책임했다는 평도 나온다. 2002년 노무현 캠프와 2007년 정동영 캠프에서 일했던 한 야권 전략통은 “대선 캠프는 개인 실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핵심은 후보와 코어 그룹이 쌓아올린 신뢰,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한 실시간 네트워킹이다. 친노의 사퇴는 이걸 통째로 날려버렸다. 정말로 책임을 지겠다면, 캠프 사퇴가 아니라 대선 승리를 만들어내고 이후 임명직을 받지 않겠다고 해야 했다”라고 비판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에서도 활동했던 한 캠프 관계자는 “답답해서 몇 번 회의도 소집해보고 다른 부서에 말도 넣어봤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 캠프는 기본적으로 수시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TF인데, 사실은 청와대 업무가 딱 그렇다. 그래서 청와대 출신들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무시 못 하는 건데, 다 나가고 난 지금은 칸막이가 너무 높다. 다들 딱 자기 일만 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그걸 혼자 다 휘저을 수도 없고…”라고 탄식했다.   

그러다 보니 특정 부서가 굴리는 아이템을 다른 부서에서 말리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방향 전환이 기민하지 않다. 캠프 공보 라인은 12월2일부터 박근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포문을 열었다. 재산부터 친인척 의혹까지 전방위 공세가 펼쳐졌지만, 정작 박 후보에 타격을 준 공격은 별것이 없었다. 이튿날 안철수 전 후보에게 “대선이 거꾸로 가고 있다”라는 핀잔만 들었다.

캠프 내 다른 라인은 물론 공보 라인 내부에서조차 네거티브 불가론이 있었다. 안 전 후보와의 연대에도 장벽이지만, 뒤지는 주자의 초조함만 드러난다는 게 더 문제였다. 하지만 공보 라인에도 관료적 관성이 작동했다. 네거티브는 하루 더, 12월4일까지도 이어졌다. 그나마도 전략적으로 네거티브 아이템을 배치했다기보다는, 대변인들이 각자 건져올린 아이템을 ‘알아서’ 쏘아대는 모습이었다. 집중력도 떨어졌고, 재탕 삼탕도 있었다. 정밀타격은커녕 점수만 잃었다.

네거티브 공세 국면은 12월5일 문 후보가 직접 제동을 걸고서야 멈췄다. 반면 박근혜 캠프는 4일 네거티브 중단 선언을 내놓으면서 안철수 지지층을 끌어들이려 하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방향 전환의 속도가 하루 차이가 났다.

관료화가 불러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략 부재다. ‘톱다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전략 기조가 캠프 속속들이 공유되지 않곤 한다. 문 캠프는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공식 선거운동 첫날에 유신 독재 공격을 핵심 메시지로 뽑는 ‘대형 사고’를 쳤다. 박근혜 캠프가 원하는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를 먼저 나서서 만들어준 꼴이었다. 캠프 내부 비판이 쏟아졌고, 메시지 기조는 정권교체론으로 황급히 변경됐다.

기조와 메시지는 다르다. ‘귀족 대 서민’ ‘낡은 정치 대 새 정치’가 기조라고 한다면, 메시지는 이 기조를 유권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게 하는 길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문재인 캠프가 내놓는 메시지는, 후보가 기조를 그냥 그대로 읽는 수준이다. 단일화 과정에서 안 전 후보와 대립하며 ‘새 정치’ 이미지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는데도, 이를 복원할 메시지 전략이 없다. 

전략이 박근혜 후보와의 대조 효과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우리 후보가 얼마나 좋은지, 혹은 상대 후보가 얼마나 나쁜지 말하는 것은 반쪽짜리다. 우리 후보의 장점과 상대 후보의 단점이 대조되는 구도를 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거울효과’다.

이런 식이다. 박근혜 후보를 ‘보통 사람의 삶과 유리된 기묘하고 으슬으슬한 느낌’으로 포지셔닝하고 싶으면, 문재인 후보를 ‘4인 가족의 따뜻하고 건강한 가장’으로 대항 포지셔닝하는 것이 한 쌍이다. 박 후보를 ‘국제무대에 내놓기 부끄러운’ 이미지로 인식시키려면, 문 후보를 ‘국제무대에서 긍지를 불러일으키는’ 후보로 포장할 전략이 자동으로 따라와야 한다.

위에 나열한 이미지들은 모두 문재인 캠프 일각에서 고민하거나 실제로 시도해본 것이다. 하지만 한 쌍의 거울효과가 생기도록 설득력 있게 엮어 풀어낸 적이 없기 때문에 유권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박근혜 캠프를 보자. ‘100% 대한민국’ 프레임은 늘 ‘분열주의자 친노’ 프레임과 한 쌍이었다. ‘위기에 강한 믿을 수 있는 지도자 박근혜’는 ‘말 바꾸고 무책임한 친노’와 줄기차게 한 쌍으로 등장한다.

이런 관료적 구조는 정작 일을 해보려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본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캠프 내·외부 자원을 동원하는 것부터가 험난하기 때문이다. 한 캠프 관계자는 공공 부문 민영화 문제를 두고 강하게 대립각을 세울 특별위원회 설치를 구상했다. 그는 특위 출범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정무와 정책이 동시에 가능한 의원 중에서 위원장 자리를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출범이 닷새 이상 미뤄졌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 보름은 열흘로 줄어버렸다.

안철수 변수에 열흘 까먹은 문재인

캠프가 관료화하면서 판을 주도할 전략과 메시지는 나오지 않고 내부의 역동성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외부의 호재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높아졌다. 안철수 변수에 일주일 넘도록 휘둘린 것도 그래서라는 지적이 있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이후 열흘이 넘도록,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전 후보 측의 행보에 일희일비했다. 대선을 코앞에 둔 2위 후보가 사실상 열흘을 까먹어버린 셈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어쨌든 전열은 정비했다. 문재인 캠프도 더 이상 기대할 외부 변수가 남아있지 않다. 현재 판세는 박빙이되 문 후보가 반 발짝 뒤진 형국이다. 구도·인물·이슈가 모두 해볼 만한 선거에서 기조와 전략과 메시지의 실패로 선거를 진다면, 야권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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