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였다.’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광주 주택’ 이후 몸도 마음도 바빠졌다. 그런 와중에 부산 사하구 당리동 주택 리모델링 작업을 새로 맡았다. 건축주와의 만남은 특강 자리에서 시작됐다.

부산발전연구원의 초청으로 열린 특강을 들으러 갔다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내게 누군가 손짓을 했다. “이리로 오세요!” 부산 동아대 조경학과 강영조 교수였다. 자리에 앉자, 강 교수가 대뜸 “광주 주택 하셨죠? 내가 집을 사게 됐는데 리모델링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리모델링이야말로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리모델링은 실력이다’라는 한마디에 완벽하게 낚였다.

설계에 앞서 같은 사무소 양경철 소장과 강 교수 댁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강 교수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삶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아파트의 삶, 노모와의 삶, 자식 이야기, 일본 유학 시절 이야기, 주택 구입기, 주머니 사정 등.

 

 

 

10년 뒤면 정년퇴직을 하는 강 교수는 아파트 생활도 은퇴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땅을 사서 근사한 주택을 지을 형편은 아니었다. 또 직장과 멀지 않은 도심에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게 30년 된 벽돌집이었다. 매매가는 살고 있는 아파트 값과 똑같은 3억1000만원이었다. 집은 대지 211.60㎡(64평)에 연면적 182.05㎡(55평)로 1980년에 지은 복층형 벽돌집이었다. 주변 환경은 도심 일반 주거지역이었다. 내부 공간은 중층형으로 뚫린 거실을 제외하고 벽으로 꽉 들어찬 구조였다. ‘집 장사’가 지은 전형적인 집이었다. 강 교수는 새 집을 짓기보다 옛집을 사서 리모델링하는 것을 택했다.
강영조 교수는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 유학생 시절 좁은 일본 주택에서 생활한 탓인지 한국식 고급 아파트의 넓은 공간과 고급 마감재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박하며 젊은 감각을 선호했다.

삶의 틀을 재구성해내는 작업

생활도 수수했다. 강 교수는 퇴근하면 곧장 귀가했다. 집에 오면 부엌에서 부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이것저것을 만든 후 맥주 한잔 놓고 세상사를 나눴다. 일본 유학 시절 좁은 주택 생활을 하며 만들어진 생활 습관이라고 했다. 식탁 중심의 새로운 생활공간이 필요한 이유였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몸에 밴 또 하나의 습관은 취침 전에 꼭 샤워를 했다. 안방과 직결된 부부 욕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 교수는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아파트는 단층 공간이라 어쩔 수 없이 공동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했다. 노모와 강 교수 부부 사이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는 분리가 필요했다.

리모델링 설계는 네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첫째, 어떻게 하면 낡은 구조의 건물을 바꿔 새로운 삶을 담아낼 것인가? 둘째, 이력이 독특한(일본 유학 부부, 조경학과 교수) 건축주의 성향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셋째, 아파트와는 다른 단독주택 생활의 기쁨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넷째,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도 한 질문,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담아낼 것인가?

자금 사정상 리모델링은 건물 외관보다는 내부의 변화에 주력했다. 1층은 강 교수 부부를 위한 공간으로, 2층은 노모만을 위한 공간으로 분리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주방이 보이게 했다. 리모델링을 거치며 공간을 재창조해 주방을 현관에서 가장 짧은 동선에 배치한 것이다. 강 교수가 퇴근하면 부부가 요리하며,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조리 공간과 식탁을 같은 공간에 배치했다.

 

 

 

또 기존에 약간 높게 설치된 바닥을 리모델링해 누각 효과를 냈다. 애초 거실 바닥이 1층 바닥에서 세 계단 높은 곳에 위치했다. 다만 낮은 장식 벽장으로만 막혀 있던 곳을 1층 바닥과 거실 바닥 사이에 110㎝ 정도 높이의 바(Bar)를 설치했다. 현관문을 열고 드나들며 바 위에 가방이나 옷을 올려놓을 수도 있고, 반대편 마루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텔레비전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작은 변화가 집을 서양식 ‘바’로 만드는 효과를 냈고, 또 우리 전통 가옥의 누각 효과도 낸 것이다.
무엇보다 오래된 주택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벽지 대신 갤러리에서 사용하는 도색을 했다. 벽과 벽 사이 기둥을 짙은 주황색으로 칠하면서 집이 화사해졌다.

또 구조 변경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 원래 부엌과 방 두 개로 이뤄진 북쪽 공간을 큰 주방과 안방, 파우더룸으로 재분할했다. 특히 욕실 옆에 딸린 파우더룸은 강 교수 부인을 배려한 장소였다.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처럼 1층을 부부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노모의 방은 2층으로 배치되었다. 할머니를 위해 별도의 화장실과 넓은 베란다를 만들었다.

30년이나 된 옛집을 리모델링한 프로젝트는 단순히 디자인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그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와 주어진 한계 속에서 삶의 틀을 재구성해내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저 예쁘기만 한 집보다 각자의 여건에 맞는 좋은 집을 공급하는 게 더 절실함을 깨닫게 해준 좋은 경험이었다.

리모델링 비용은 ‘공식적’으로 1억원 안팎이 들었다. 공식적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은 조경학 전공인 강 교수의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마감재를 값싸게 구매하고 또 발품도 판 덕에 실제 비용은 이보다 더 쌌기 때문이다. 

완공 후 강영조 교수 내외는 양 소장과 나를 저녁식사 자리에 다시 초대했다. 그날 식사에서 강 교수는 “보통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데 난 외려 10년 젊어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건축주에게 새로운 공간과 더불어 젊음까지 제공했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다.

기자명 윤재민 (JMY 건축사무소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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