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등단 절차가 있는 게 아니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딴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요즘 각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 평론가들 얘기다.

정치의 계절. 대선을 이슈로 한 프로그램이 많다. 정치 평론가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이다.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다 지상파에 종편이 가세하면서 이들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수요에 따라서 공급이 늘어난 양상이다. 정치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우후죽순 나타났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한 이들도 ‘어, 저 사람은 누구지?’ 하며 낯설어하는 정치 평론가가 있다. 이들의 이력은 어떻고, 누가 방송에 많이 나올까?

     
 

〈시사IN〉은 지난 8월1일부터 11월19일까지 지상파 텔레비전, 라디오, 케이블 종편, 보도채널의 주요 프로그램에 어떤 정치 평론가들이 출연했는지를 조사했다. 8월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정치 뉴스가 쏟아져 나올 때였다. 공중파 토론 프로그램은 MBC 〈100분 토론〉, KBS 〈생방송 심야토론〉, SBS 〈시사토론〉에서 정치 관련 토론 주제를 다룰 때에 참석한 패널을 조사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우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왕상한의 세계는 우리는〉, KBS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SBS 〈김소원의 SBS 전망대〉 〈서두원의 시사초점〉, CBS 〈김현정의 뉴스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YTN 〈김갑수의 출발 새 아침〉 〈뉴스 정면승부〉, BBS 〈고성국의 아침저널〉, TBS 〈열린아침 송정애입니다〉를 대상으로 했다. 각 프로그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출연진 리스트와 대본을 참조해 조사했다. 종합편성채널은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신율의 대선열차〉, JTBC 〈전성태의 대통령의 자격〉,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채널Y 〈고성국의 담담타타〉 〈신율의 정정당당〉 등을 조사했다. YTN 뉴스 같은 경우는 YTN 홈페이지에서 ‘정치 평론가’ 키워드를 입력해 출연 횟수를 합산했다. 방송을 실시간 모니터링한 것이 아니고 홈페이지 정보를 통해 얻은 결과여서 출연이 누락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대략적인 빈도는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정치 평론가들의 최근 출연 횟수를 더해보면,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165회), 고성국 박사(108회), 박상병 박사(97회),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원(94회), 유창선 박사(91회),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83회), 신율 명지대 교수(62회) 순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가로는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46회),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29회)의 출연 빈도가 잦았다.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직업적 정치인 말고 정치 평론가의 출연 횟수가 늘었다. 한 토론 프로그램 PD는 “올해 대선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차선책으로 정치 평론가들을 많이 부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통상 각 캠프에서 나와 토론을 하도록 구성해야 하는데, 야권 단일화가 늦어졌고 박근혜 캠프에서는 ‘어차피 단일화가 될 거 아니냐’며 3자 토론 형식의 구성을 피해 토론이 여의치 않았다. 그 ‘파행’을 대체한 게 정치 평론가끼리의 대결이었다는 얘기다. 이 PD는 “중립적인 정치 평론가는 없다고 봐야 한다. 방송가 토론 프로그램 제작진은 누구는 여당 성향, 누구는 야권 성향 이런 식으로 나누어놓는데, 토론 능력 등이 검증된 사람을 써야 하니까 대략 20명 선에서 돌아가며 섭외한다”라고 말했다.

교수 제외하면 정치권 유경험자

대학 교수를 제외하고 출연 빈도가 높은 정치 평론가들은 대체로 국회나 정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이철희 소장은 민주당 김한길 전 최고위원이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으로 일한 바 있고, 민주당 부설 민주정책연

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고성국 박사는 한때 진보적 학술단체 활동을 했는데 김영삼 정부 시절 ‘YS의 차남 김현철 인맥’으로 알려졌다. 1997년 5월 KBS 노동조합이 “고성국씨는 김현철의 인맥”이라고 비판해 방송 진행자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황태순 수석연구원은 노태우 정부 때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의원의 참모 출신으로 옛 민주당 김중권 전 상임고문의 특보로도 활동한 바 있다. 박상병 박사는 한국정당정치연구소·한국정치연구회에서 주로 활동했고, 유창선 박사는 민주당 이부영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역시 국회의원 참모 출신인 박상헌 소장은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특보를 오래 했으며 한때 부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했다. 지난 11월26일 박근혜 후보 단독 토론에 패널로 출연한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주로 보수 견해를 대변하곤 하는데,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출신이다.

정치 평론가에게 정당 경험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정당이나 정치권에서 일해본 경험이 정치판을 읽는 데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과거 이력 때문에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기 쉽다. 시청자나 청취자가 이들의 과거 이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정치 해설이나 평론을 듣게 될 경우 이들의 주장을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일 소지도 있다. 실제로 특정 정치 평론가가 특정 후보를 편드는 게 아닌가 하는 공정성 시비가 종종 일기도 했다. ‘친박 정치 평론가’ 논란에 휘말린 고성국 박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 10월 YTN

노조와 연합뉴스 노조 등은 ‘고성국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편향성이 우려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출연 정지를 요구했다. YTN 노조의 한 관계자는 “세간의 비판이 거센 상태에서 모니터링을 해보니 박근혜 후보를 대변하는 듯한 발언이 많았다.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그 직후 노조 게시판에 고 박사가 박사모 충북지부에 가서 감사패를 받고 강연한 동영상이 익명으로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 출연시키면 안 된다고 요구했고, 고 박사가 자진 하차했다”라고 말했다.

“권력 개입 막는 게 최우선”

고성국 박사는 특정 캠프에 편향된 활동이 알려지면서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1월14일 고 박사는 ‘시대정신과 여성 대통령’이라는 토크 콘서트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는 김성주 새누리당 선대위 공동위원장과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등이 함께했다.

주최 측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 박사는 “이번 대선에서 여성 대통령론이 담론으로 부각된 것은 새 정치질서에 대한 열망이 무르익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여성 대통령 후보들에게 국가 비전을 묻는 대신에, 여성을 위해 한 일이 뭐냐는 식의 공격만 난무하는 현실은 경박을 넘어 천박한 수준이다” “DJ가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론을 내세워 당선된 후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낸 것처럼, 3명의 여성 후보 가운데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이는 패러다임 혁명이 될 것이다” 같은 발언을 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여러 사람이 함께 나오는 토론 프로그램과 단독 패널로 나오는 경우, 그리고 사회를 맡아 진행을 할 때 각각 역할을 달리 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토론 프로그램의 경우 한 사안을 두고 찬반 의견이 분명한 패널을 섭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 평론가가 자신의 철학과 분석에 따라 발언하는 것을 정파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한 토론 프로그램 관계자는 “섭외를 할 때 대체로 성향이 드러난 이들을 숫자를 맞추어 섭외한다. 요즘 토론 프로그램은 ‘편파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중간적 성향으로 섭외한 패널이 열 번 중에 한 번 한쪽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하면 오히려 ‘편향’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중간적 성향을 가진 토론자는 섭외를 하지 않는 흐름이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단독 패널로 나오거나 사회자 구실을 할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이철희 소장은 “토론이나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공정성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가령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주제가 나왔을 경우에 방향을 틀려고 하거나, 한쪽 의견을 가진 패널이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할 때 이를 거드는 듯한 발언을 해서 진행자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후보 단독 토론’에서 송지헌 아나운서가 ‘편파 진행’ 논란에 휩싸인 것도 이 때문이다. 단독 패널의 경우는 그 사람의 성향을 사전에 시청자나 청취자가 알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그 패널이 하는 얘기를 좀 더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유창선 박사는 단독 패널과 관련해 “개인의 공정성 시비도 문제이지만 진보·보수 간 양적 균형도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 패널의 숫자나 출연 빈도에 비해 진보 패널의 숫자나 출연 빈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를 보면 이철희 소장이나 유창선 박사, 그리고 몇몇 여론조사 전문가를 제외하면 보수 성향을 보이는 정치 평론가의 숫자나 출연 빈도가 훨씬 높다. 김호기·김민전 교수처럼 개혁 성향을 보이던 패널들이 대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출연 횟수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 정치 평론가는 ‘보수 정권과 보수 매체의 우위’를 그 이유로 들었다. 아무래도 보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다보니 보수적 정치 평론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우세하고, 특히 종편의 경우 매체가 진보 평론가를 꺼리는 데다 진보 평론가들 역시 종편 출연을 거부하다보니 보수·진보 간 비중에 차이가 생겼다는 말이다. 실제로 김종배 시사 평론가나 유창선 박사는 MB 정부 들어 정치적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팟캐스트와 아프리카TV 같은 뉴미디어 창구를 따로 마련해 시민과 만나고 있다.

‘대선 특수’가 끝나도 정치 평론가에게는 여전히 ‘대목’이 기다리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인수위를 거쳐 인사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정치 이슈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창선 박사는 “그럴수록 공정한 방송 환경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권력의 개입을 막는 게 최우선 과제다. 누가 설득력이 있고 공정한지 시청자가 따질 수 있게 만들면, 자연스레 정치 평론가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공정성 시비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차형석·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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