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상품인가”, 절박하게 묻고 답하다
  • 차형석 기자·정리 임지영 기자
  • 호수 272
  • 승인 2012.12.0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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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소식지를 펴내는 두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소식지에는 출판계에 대한 야유와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도서정가제, 사재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처음엔 그저 흔한 홍보물이거니 했다. <산책>과 <Le Zirasi(르 지라시)>. 그런데 표지에 적힌 문안이 심상치 않았다. <산책>은 ‘오늘 목놓아 통곡하노라!’라고 적혀 있었고, <르 지라시>에는 ‘아유 사장님, 광고할 돈으로 사재기를 하셨으면 더 효과 보셨을 텐데요’라는 문구가 제목으로 실려 있었다. 절박감과 야유가 읽혔다. 내용을 들여다볼밖에.

<산책>과 <르 지라시>는 두 출판사의 비정기 소식지이다. <산책>을 펴낸 곳은 출판사 서해문집. 한 해에 60종가량 책을 출간하는 중견 출판사이다. <산책>은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가 내는 ‘1인 온·오프 미디어’다. <르 지라시>는 장르문학을 전문으로 펴내는 북스피어의 소식지이다. 1년에 10종가량 책을 낸다.

두 소식지는 여느 홍보물과는 다르다. 통상 출판사 소식지는 자사 책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용도이기 마련인데, 그보다는 출판계 동향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산책>은 출판 생태계가 어떻게 무너져가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책의 원가 구조는 어떤지, 저작권이 소멸된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되는 게 얼마나 상업주의적인지,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왜 필요한지 소상히 밝힌다. 지금까지 세 호가 나왔는데, 대략 6000부를 찍어 학교, 도서관, 교육청, 오프라인 서점에 배포한다. <르 지라시>는 북스피어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전집을 역사비평사와 역할을 분담해 출판하면서 만든 소식지였다. 책 소개만 할 게 아니라 독자에게 출판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르 지라시> 3호에서는 출판계 사재기 문제를 맨 앞에 내세웠다.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김홍민 대표가 전해들은 ‘사재기 행태’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야유하듯이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두 사람과 함께 도서정가제, 사재기 등 출판계 이슈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흥식 대표는 <산책>에 ‘출판의 종말을 기리며’라는 글을 썼다. 20년 전만 해도 전국에 서점이 6000여 곳 있었는데, 지금은 2000곳을 넘지 못한다. 1년에 신간이 대략 5만 종 출간되는데, 중·고생 참고서를 파는 서점 말고 신간을 비치할 수 있는 50평(165㎡) 이상의 서점은 500여 곳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가 234개니까 한 기초단체당 서점이 고작 2개 있다는 뜻이다. 동네서점이 급감하다보니, 신간을 내도 서점에 내보내는 부수가 확 줄었단다.

김흥식:2006∼2007년만 해도 적으면 1200부, 많으면 1800부 배본을 했다. 지금은 600부가량 배본한다(김홍민 대표는 “북스피어는 800부 배본한다”라고 말했다). 독자가 서점에서 책을 봐야 사는데, 책을 깔 서점이 없다. 가장 피해가 심한 게 우리 같은 인문·교양 출판사이다. 책을 스타렉스 같은 차에 싣고 다니면서 팔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인터넷 서점의 등장은 출판 유통의 지형을 바꾸어놓았다. 인터넷 서점은 가격 할인정책을 통해 전체 출판시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는 곧 ‘동네서점의 붕괴’로 이어졌다. 온라인 서점에 노출되는 책의 양이 한정돼 있다 보니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구매가 이루어지고, 출판의 다양성이 사라져간다는 분석이 많다. 심지어 한 권에 1000원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김흥식:예전에는 재고가 많이 쌓이면 폐기했다. 한 차에 10만원씩 주고 폐지업자가 가져간다. 그런데 출판 유통이 무너지니까, 아예 ‘덤핑 전문업자’가 생겨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출판사에 가서, 30만 권을 3억원에 넘기라고 제안하는 거다. 그걸 사다가 지하철 가판대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넘겨 3000~ 5000원에 파는 거다. 이런 업체들이 출판사로 공문을 보낸다(김홍민 대표도 “우리 출판사도 그런 공문을 여러 번 받았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1000원에 파는 것도 마찬가지다. 출판사에서 창고 비용 물어가면서 악성 재고로 가지고 있느니, 권당 1000원이라도 받고 털어버리는 거다. 그 덤핑 물량이 어마어마하다. 출판사는 현금이 들어오지만 결국 오프라인 서점이 붕괴하면서 도서 유통이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출판 생태계를 살리는 방법으로 ‘완전한 도서정가제 시행’을 든다. 현재 한국은 도서정가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출간된 지 18개월 미만인 신간의 경우 10%까지 할인이 가능하고, 실제 구매액의 10%까지 서점 마일리지로 적립해주는 게 가능하다.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책은 얼마든지 할인할 수 있게 돼 있다. 영미권 국가의 경우는 대체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지 않아 할인폭이 자유롭다. 반면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는 대부분 도서정가제 특별법을 마련해 할인폭을 0~5%로 엄격하게 제한한다. 출판사들은 출판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첫 단추로 ‘완전한 도서정가제 시행’을 꼽는다.

김흥식:공정거래위는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담합이라고 본다. 하지만 출판은 이런 상업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자국 내 출판시장 규모가 작은 나라는 자국의 출판물이 다른 언어로 번역될 경우에 번역비용을 지원한다. 왜 그러겠는가?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면 누구든 돈 되는 책만 내려고 할 거다. 그건 출판인이 아니라 장사꾼이다.

김홍민: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 책 가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데, 오해다. 보통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때 할인한 가격이 1만원을 넘지 않으면 배송료를 내도록 돼 있다. 10% 할인을 예상하고, 그 할인 가격이 1만원이 약간 넘도록 하려고 출판사들이 정가를 1만2000원으로 붙인다. 그게 1만2000원짜리 책이 많았던 이유다. 출판사에서 할인을 감안해 책값 부풀리기를 하는 셈이다.

출판 유통이 무너지면서, 베스트셀러로만 독자가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화되었다.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기 위해 여러 편법을 동원하는데 그중 가장 만연한 방법이 ‘사재기’라는 게 김홍민 대표의 말이다.

김홍민:어느 날 1인 출판사 대표를 만났는데, 너무 당당하게 사재기를 했다고 얘기하더라. 과거에는 사재기를 하는 걸 창피하게 여기고 쉬쉬했는데. 이제는 출판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대놓고 얘기할 만큼 보편화했나 싶어 그쪽 전문가인 한 출판사의 영업부장을 섭외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재기가 이루어지나 물었다. 정말 다양한 사재기 매뉴얼이 있었다.

그가 전해들은 사재기 매뉴얼은 다양했다. 서평단을 모집하고 서평을 쓴 사람에게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한 책을 보내는 방법(판매지수가 올라간다)은 애교에 속한다. 판매지수를 높이기 위해 언론사에 보내는 홍보용 책자도 인터넷 서점을 통해 보내기도 한다(실제로 홍보용 도서를 인터넷 서점을 통해 보내오는 곳이 더러 있다). 가히 ‘사재기 신공’이라 할 만한 게 많다. 자기 책을 자기 돈으로 사는 것. 효과가 있을까?

김홍민:사재기라는 게 의외로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1만원짜리 책이라고 하자.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면 9000원에 살 수 있다. 그리고 출판사는 그 구입한 책을 인터넷 서점으로 다시 배본한다. 그 책이 팔리면 대략 6000원이 돌아온다. 이렇게 따지면 1만원짜리 책 한 권을 사재기하는 데 3000원이 드는 셈이다. 곧장 판매로 직결될지 장담할 수 없는 광고를 집행하느니 사재기를 하면 바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가고 효과가 반영된다는 거다. 걸려도 과태료 1000만원만 내면 끝이다.

<산책>과 <르 지라시>. 두 출판인은 “독자들에게 출판계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 매체를 낸다고 했다. 도서정가제든, 사재기든 이 문제 제기는 한 질문으로 모인다. 책은 상품인가, 아니면 문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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