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가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왔다. 새로 나온 내 책에 관해 이야기하다 농담인 듯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독립운동을 했을 것 같아요, 친일파가 됐을 것 같아요?” 내 대답은 이랬다. “그냥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글을 열심히 쓰고 있지 않았을까.”

올해는 가을이 아름답다. 얼마 만에 보는 긴 가을인지 모르겠다. 사랑해 마지않는 그 친구에게도 담아 보내고 싶을 만큼 아름답게 무르익은 참한 계절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 창밖을 바라보면, 예술이라는 게 얼마나 자연 예찬으로 흐르기 쉬운지 실감이 난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영감을 담아낼 도구가 하나라도 있다면 누구든 창 쪽으로 몸이 기울지 않을까.

어떤 초청 강연에서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들은 일이 있었다. 말씀하는 분 본인 의사도 아니고, 윗분들이 보고 신경쓸까봐 하는 말이라 나도 별 뜻 없이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평생 그렇게 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강연 시간 동안만 그러면 되는 거니까. 어차피 문학은 가만 내버려둬도 창가 쪽으로 알아서 기울게 돼 있으니까.

골치 아픈 이야기는 하지 말고 책 이야기나 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내 입을 틀어막으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일 때가 더 많다. 눈에 보이는 위협은 없을지 몰라도 어떻게든 악영향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론 그런 걱정은 대부분 기우다. 내가 무슨 대단한 독립운동을 한다고. 정말로 불이익이 생길 것 같았으면 안 시켜도 알아서 창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독립투사라고.

 


하지만 억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영역을 넘지 말라는 그분들 영역에서는 심심하면 우리 영역을 침범하곤 한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삼투압이 워낙 약해져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은 이런저런 분야의 유명인들이 낸 책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경영인, 종교인, 방송인, 스포츠 스타, 영화배우, 가수 기타 등등. 그뿐만이 아니다. 출판계에서는 책을 내서는 안 되는 기간이라는 게 해마다 돌아오는데,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총선·대선에 대작 게임 출시, 학생들 방학까지 다 신경 써야 한단다. 작가 아닌 사람은 책을 내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오로지 책 내는 것만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도저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환경들에 대한 이야기다. 쉽게 말해서, 작가가 영향을 받지 않는 사회적 변수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억울할밖에. 우리한테만 자꾸 영역을 넘지 말라니.

대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찬양하라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찬양하라고? 그러고 싶다. 이왕 SF작가가 된 거, 대자연이 아니라 아예 우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게 사실은 내 본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불길 번져오는 창가에 앉아 한가롭게 바깥 풍경이나 내다보고 있으라니.

당신들은 나에게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나. 그것도 면전에서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시켜서 간접으로. 그 말의 주체를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도대체 누가 나오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말도 나왔나보다. 이 권력의 명제에는 “주어가 없다”고.

아무튼 이 계절에 내가 들은 가장 정치적인 발언은 바로 이 말이었다. “정치적인 발언은 좀 자제해주세요.”

기자명 배명훈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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