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안철수 캠프는 크게 방향을 꺾었고, 문재인 캠프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했으며, 박근혜 캠프는 주도권을 완전히 놓쳤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합의가 나온 11월6일 이후, 대선 정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진입했다.


안철수, 전략을 바꿨다

애초 안철수 캠프가 그리는 기본 그림은 11월10일 정책 발표 이전까지는 단일화 논의는 없다는 것이었다. 10월30일 캠프 회의에서 안 후보 본인이 “11월10일까지는 정책에 집중할 것이다”라고 단속했고, 이후 캠프의 공식 브리핑 기조는 “11월10일까지는 정책 논의만 한다”로 통일되었다.

기류가 바뀐 것은 11월 첫 주말께였다. 월요일인 11월5일 전남대 강연에서 ‘중대 발언’이 나올 것이라는 예고가 돌기 시작하더니, 강연에서는 안 후보가 양자회담 제안을 던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 후보가 제시한 만남의 명분은 “정치혁신 방안을 논의하자”라는 것이었고 ‘단일화’는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인 6일 회담은 단일화 시점까지 확정한 높은 수준의 합의문을 도출해냈다. 합의문 제5조는 “단일 후보는 후보 등록(11월25일) 이전까지 결정한다”라고 못 박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단 캠프는 ‘방향전환’이라는 평가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안철수 캠프의 단일화 로드맵이 크게 변한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원래 안철수 캠프에서 설정한 ‘11월10일’은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국민 참여 경선이 물리적으로 빠듯해지는 시점이었다. 단일화 논의를 이날 이후에 시작할 경우 사실상 여론조사 단일화 외에는 방법이 많지 않다는 분석이 주였다. 즉,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는 현 상황을 ‘동결’하면서 데드라인인 11월25일까지 시간을 번다는 것이 캠프 전략통들이 귀띔하는 기조였다.

하지만 여론이 ‘단일화 피로증’의 징후를 보이고 그 책임을 단일화 논의를 피하는 안철수 후보에게 묻는 기류가 감지되면서, 이런 ‘동결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지가 불투명해졌다. 이번 〈시사IN〉 여론조사(12~15쪽 기사참조)에서 보듯, 단일화의 키를 쥔 호남 민심이 안 후보에게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거듭된 단일화 제안을 ‘수용’하는 모양새가 아닌, ‘정치혁신 양자회담’을 먼저 제안하는 모양새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단일화에 소극적인 이미지로 야권 지지층의 피로감을 더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인 셈이다.

단일화 방식에 대해서 안철수 캠프는 극도로 말을 아낀다. 여전히 여론조사상 박빙 우위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캠프 일각에서는 “여론조사에 잘 훈련된 민주당의 조직력이 ‘플러스알파’를 만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라는 말도 들린다. 대중 친화력이 좋은 안 후보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텔레비전 토론 후 패널 조사를 일부 섞는 방안 등이 나올 수 있다. 후보 간 담판을 선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재인이 얻은 것, 시한 못 박기

문재인 캠프는 합의문 5조를 최대 성과로 꼽는다. 단일화의 시점까지 못 박은 5조는, 전체 합의문에서 문 후보가 가장 강조한 조항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후보 단일화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회담 전의 예상을 뛰어넘는 ‘진도’를 나간 셈이다.

안철수 캠프에서도 강경파로 분류되는 쪽에서는 단일화와 독자완주론을 양손에 쥔 채 대선 전략을 그려왔다. 이번 합의문에서 문재인 캠프는 이런 독자완주론을 봉쇄한 것을 최대 성과로 보는 분위기다. 안철수 캠프가 독자완주라는 옵션을 열어놓은 채로 테이블이 열리게 되면, 문재인 캠프 쪽은 그만큼 복잡한 수싸움을 해야 하는 처지로 몰린다. 

합의문 5조는 이런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회담에 들어갈 때부터 문 후보의 목표는 단일화 논의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은 거의 고스란히 안 후보의 안을 받았던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회담 이튿날인 11월7일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은 ‘단일화 3원칙’을 제시했다. 국민 참여 보장, 국민 알권리 충족, 세력과 국민을 통합하는 단일화가 그것이다. 일단은 민주당이 가장 선호하는 선거인단 참여 경선이나 공개 텔레비전 토론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세력과 국민을 통합하는 단일화’를 단순 여론조사에 대한 반대 의미로 해석하는 독법도 있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양쪽 지지층이 온전히 승복할 수 있겠나? 조금이라도 이탈표가 생기면 본선을 장담 못한다”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영 비율이야 어쨌든 여론조사 방식이 포함되는 것 자체는 기정사실로 보는 기류도 있다. 여전히 단일화 논의의 주도권은 안철수 캠프가 쥔 것이 사실이고, 물리적 여건까지 고려하면 여론조사를 전면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 때문에 캠프 일각에서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 실무를 맡아 승리를 이끌어냈던 ‘역전의 용사’들 이름이 영입 대상으로 새삼 거론되기도 한다. 

지난 한 주 박근혜는 백약이 무효

최대 피해자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다. 박 후보는 ‘뭘 해도 관심 밖인’ 처지로 내몰렸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다. 문·안 두 후보가 만나기 7시간 전인 11월6일 오전 11시에, 박근혜 후보는 나름 공을 들인 정치쇄신안을 발표한다. 4년 중임제 개헌까지 시사한 나름의 승부수였다. 7시간 후의 단일화 대담과 정면충돌을 노렸다. 이날 새누리당 캠프의 한 관계자는 “쇄신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박 후보와 권력 나눠먹기를 논의하는 문·안 후보가 극명한 대조를 보일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현실은 전혀 달랐다. 보수 언론마저 이 관계자가 기대한 ‘박근혜의 미래’ 대 ‘문·안의 야합’ 구도로 지면을 배치하지 않았다. 특히 11월7일자 〈조선일보〉는 1·3·4면을 문·안 단일화 보도로 도배했고, 박 후보의 정치쇄신안은 5면 하단에 거의 단신에 가깝게 처리했다. 5면의 가장 큰 기사는 단일화 합의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응이었다. 이슈에서 밀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지면 배치였다. 

‘예고된 단일화’였지만 대응도 매끄럽지 않았다. 캠프에서 직책을 맡은 중량급 인사들까지 앞 다투어 단일화 비판론을 쏟아내면서, 오히려 단일화 이슈의 폭발성만 높여주었다. 박 후보 본인의 “이벤트 정치로 정권을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민생을 맡길 수 없다”라는 대응도 별 반향 없이 지나갔다. 단일화 이슈가 등장했을 때를 대비한 국면 전환 전략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박 후보는 여전히 다자대결 40% 안팎의 고정 지지층을 보유한 선두 후보다. 한때 과감한 중원 공략 전략으로 ‘자력으로 대선을 이기는’ 그림을 그렸지만, 잇단 역사관 논란 등을 거치며 한계에 부딪혔다. 현재는 사실상 ‘고정표 극대화 전략’으로 방향을 돌린 상태다. 박 후보는 11월8일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사실상 경제민주화 노선에 역행하는 발언을 하며 보수층 표심을 자극했다. ‘작전 변경’의 징후가 완연하다.

중도의 표를 붙여서 이기는 대신, 고정표를 최대한 끌어 모은다, 그리고 야권의 분열과 단일화 후유증을 노린다. 당장은 단일화 블랙홀에 속수무책으로 보이지만, 이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고정표의 힘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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