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4일 저녁 광주 충장로. 안철수 후보가 등장하자 인파가 몰렸다. 주로 20~30대 여성이었다. 안 후보가 한 제과점에서 지역 주민과의 간담회를 하는 30분 동안, 쏟아지는 비와는 무관하게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연신 “안철수! 대통령!”을 외치는 60대 남성도 있었지만 모인 사람 모두가 지지자는 아니었다. 제과점 입구에 서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든 한 50대 여성은 “안철수를 보러 온 건 맞지만 문재인을 찍을 거다”라고 말했다. ‘유명인 안철수’에는 환호하지만 ‘정치인 안철수’를 지지하기에는 못미덥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광주에서 근무하는 한 중앙언론 기자는 “지난 몇 주 동안 안철수가 야권 단일화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서 ‘저러다 끝까지 뛰어 박근혜 당선시키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 강해졌고 지지율도 빠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안 후보를 만난 시민 사이에서는 야권 단일화에 관한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광산구 노인복지관에서 안 후보를 만난 김덕만씨(79)는 “딴 거 다 제쳐놓고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종점에서 두 분이 뛸 거냐 세 분이 뛸 거냐”라고 다그쳤다. 정책을 다 발표하기 전인 11월10일까지는 단일화 관련 언급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안 후보 쪽 전략에 호남 민심이 지치는 모양새였다.

“안철수의 새 정치가 뭔지 모르겠다”

광주 지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야권 단일화가 이 지역 초미의 관심사인데, 안 후보가 간만 보듯 요리조리 피해 다니니깐 좀 얄미운 거다”라고 민심을 해석했다. 과일가게를 하는 이 아무개씨(46)도 “처음에는 안철수의 새 정치에 기대를 많이 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국정 운영도 해봤고 당이 있는 사람이 나을 것도 같아서 헷갈린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숫자도 이를 보여준다. 11월 들어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지지율이 따라잡혔다는 몇몇 여론조사가 나왔다. 〈시사IN〉 조사에서는 특히 호남에서 문 후보가 상승세라는 결과가 나왔다(12~15쪽 기사 참조). 미묘하게 바뀌는 여론에 안 후보는 다시 호남을 훑었다. 제주 방문을 마지막으로 1차 전국 투어가 끝난 지 이틀 만인 11월4일 다시 호남선을 탔다. 1박2일 일정으로 광주, 전북 익산·군산, 전남 화순을 들렀다. 안 후보는 11월5일 공개 일정만 네 개였고 비공개 일정으로 광주 지역 언론사 사장 조찬과 시민사회 관계자 오찬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전날 저녁에는 캠프 전체를 총괄하는 박선숙 선대본부장까지 광주에 내려왔다. 정치 유세를 잘 하지 않는 안 후보 부인 김미경 교수도 11월8일 광주로 내려가 온종일 현장을 뛰었다. 사실상 총력전이었다.

문 캠프 또한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문 후보는 11월8~9일 제주도 방문 일정을 틀어 8일 하루만 들른 후 광주로 건너가 1박2일 머물렀다. 부인 김정숙씨도 동행했다. 광주에 채 24시간도 머물지 않았지만 공식 일정만 네 개를 소화하는 정성을 쏟았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11월2일부터 4일까지 전남 순천·여수·광양 등을 찾았다. 문성근 시민캠프 공동대표와 명계남 정책홍보단장도 11월1일부터 호남권 시민홍보전을 벌이고 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직장인 장 아무개씨(44)는 “공당의 후보로서 국정경험이 있는 문재인 후보가 지금 출마한 사람 중에서는 가장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문 후보가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친노’에 대한 만만찮은 거부 정서는 당장 가로막힌 장벽이다. 광주 출신의 한 지역 주재기자는 “지역 오피니언 리더, 특히 고위직 공무원을 만나보면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 호남 인사 배제·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느낀 서운함이 강한 데다, 그 핵심에 문재인 비서실장이 있다고 본다. 문 후보가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정치 쇄신, 정확히는 민주당 쇄신에 대한 열망이 컸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인 ‘시민이 만드는 밝은 세상’ 이상석 사무처장은 “민주통합당의 오만함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이 한둘이 아니다. 이걸 깨부수는 사람에게 표심이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지난 4월 총선 당시 광주 동구의 전직 동장 자살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내 공천만 받으면 되니까 의원들이 아래를 안 보고 다 위만 쳐다보고 산다. 사람이 죽고 구속도 되었지만 결국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기득권을 쥐고 공천권을 휘두른다. 자기네들 때문에 생긴 사건인데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런 기득권을 타파하는 데 누가 더 적절한지 호남 민심은 아직도 살피는 중이다.”

 

 

민주당원이라고 밝힌 택시기사 김 아무개씨(53)도 최근 호남의 투표 성향을 보라고 조언했다. 김씨는 “지난 4월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40%가량 표를 얻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정용화 후보와 국민참여당 정찬용 후보가 각각 15%가량을 득표했다. 그만큼 변화 욕구와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저변에 깔려 있다”라고 말했다.

광주 지역 문재인 캠프도 이 점을 인정한다. 광주 지역 문 캠프의 한 관계자는 “호남 지역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정치 쇄신에 대한 바람이다. 호남에서 여당 노릇을 몇 십 년째 해오는 민주당의 구태의연함에도 대안세력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을 반복해왔는데, 지금은 안철수라는 강력한 대안이 나타났다. 문 후보가 단일화 국면에서 안 후보를 이기려면 민주당 쇄신을 상상 그 이상으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 후보가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이며 ‘실기’해 양자 간의 격차를 더 벌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문재인이 잘 해서라기보다는 안철수가 못해서 지지율이 역전되었다는 뜻이었다.

이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호남 사람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호남에 대한 구애는 결국 정치 쇄신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변화에 대한 열망을 읽어내는 사람이 전체 판을 주도할 거다. 그리고 호남이 선택한 그 사람이 대권에 가장 가까이 갈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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