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햇볕정책 계승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힌 이유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세미나에 불참했던 것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이유는? 두 후보가 롯데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경기 관람을 가지 않은 이유는? 안 후보가 단일화 논의 스케줄을 일주일 앞당긴 이유는? 그리고 광주에서 단일화 의지를 밝힌 이유는?

이번에도 캐스팅보트는 역시 호남이었다. 대선 고지로 가는 길의 8부 능선이라 할 수 있는 야권 후보 단일화 고개를 넘기 위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호남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안 후보는 11월4~5일 호남 일정을 소화하며 단일화를 공언했고, 문 후보는 11월6일 단일화 회담을 마친 후 8~9일 호남에 머물렀다. 안 후보가 11월10일 공약 발표일 이전에 단일화 논의를 시작한 것도 호남 민심이 초조해한다는 위험신호를 감지해서라는 분석도 나왔다. 호남 민심은 특히 가장 많은 유권자가 사는 수도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게 각 캠프나 여론 전문가들의 평이다.
 

 

〈시사IN〉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와 함께 3회에 걸친 밀착 조사를 실시해 호남 민심의 미세한 변화를 살폈다. 단일화 회담 전 주말(11월3~4일), 평일(11월5일), 그리고 단일화 후 평일(11월7일)에 각각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ARS(자동응답시스템) 방식으로 이뤄졌다. ARS 방식은 응답률이 10% 내외로 조사원이 직접 묻는 일반 전화 여론조사보다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적극적 응답층’, 즉 정치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들의 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치 관심층의 지지도 변화는 전반적인 여론의 흐름과 방향을 읽어낼 유의미한 지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조사 결과 일정한 흐름이 읽혔다.
 

지지도에선 문재인 46.1%, 안철수 36.7%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을 묻는 3자 구도에서는 단일화 논의 전과 후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단일화 전(11월3~4일) 조사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0.9%,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4.0%,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38.2%로 나타났다. 단일화 후(11월7일) 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10.4%, 문 후보가 46.3%, 안 후보가 37.8%였다. 박 후보가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광역시·도별 판세를 보면, 전북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광주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우세하고, 전남은 백중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11월3~4일 3자 대결 조사에서 전북에서는 ‘44.8% 대 31.5%’로 문 후보가 앞섰고, 광주에서는 ‘43.5% 대 39.7%’로 안 후보가 우세했다. 전남은 11월3~4일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46.2% 대 40.7%’로 우세했다가, 11월7일 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43.2% 대 40.2%’로 우세하게 나왔다.

11월7일 3자 대결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후보가 전북에서는 간격을 더욱 벌리고 광주에서는 추격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 조사 결과는 ‘문재인 54.5% 대 안철수 28.7%’, 광주 조사 결과는 ‘문재인 43.7% 대 안철수 42.4%’였다. 호남 3개 광역시·도 중 인구 비중은 제일 작지만 정치적 상징성이 큰 광주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3자 대결 구도보다는 야권 후보 단일화 관련 질문에서 호남 민심이 요동친 걸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경쟁할 단일 후보로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가운데 누구를 더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11월3~4일 조사에서는 ‘문재인 41.9% 대 안철수 44.4%’로 나왔던 결과가, 11월5일 조사에서는 ‘문재인 45.9% 대 안철수 40.4%’로 바뀌었고, 다시 11월7일 조사에서는 ‘문재인 46.1% 대 안철수 36.7%’로 달라졌다.

적잖은 경향성이 나타났다. 첫 조사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오차범위 안(2.5%포인트)에서 우세했지만, 마지막 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오차범위 밖인 9.4%포인트 차이로 앞선 것이다. 단일화 국면 초반에 문재인 후보가 상승세를 탔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두 가지 요소를 더 살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후보 지지층의 역선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율’ 조사가 아니라 ‘적합도’ 조사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 지지층을 제외한 지지도 조사 결과를 따져봤다. 11월3~4일 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37.5%, 안철수 후보가 42.0%였는데, 11월7일 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47.1%, 안철수 후보가 38.5%로 나왔다. 전반적으로 문재인 후보가 오차범위 이내로 열세였다가 오차범위 밖으로 앞서는 양상이 벌어지는 게, 박근혜 후보 지지층을 포함한 조사 결과와 유사하다.

적합도에선 문재인 46.8%, 안철수 41.9%

이번에는 적합도 조사 결과를 살폈다. 질문은 ‘향후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이 양자대결로 치러진다면 누가 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상대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것이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가 실시된다면 경쟁력(지지도)과 적합도를 동시에 묻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경쟁할 단일 후보로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가운데 누가 야권 후보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야권 단일 후보로서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박근혜 후보 지지층을 포함한 조사 결과는 11월3~4일 ‘문재인 43.1% 대 안철수 46.7%’였다가, 11월7일 ‘문재인 46.8% 대 안철수 41.9%’로 나왔다.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열세였다가 우세로 전환한 패턴은 다른 조사와 비슷했지만 그 폭은 좁아졌다.

이 간격은 박근혜 후보 지지층을 제외하면 더욱 작아졌다. 11월3~4일 적합도 조사에서 ‘문재인 43.8% 대 안철수 48.5%’였던 것이, 11월7일 적합도 조사에서는 ‘문재인 46.9% 대 안철수 44.7%’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지지도를 물을 때보다 적합도를 물을 때의 무응답층이 적었는데 두 후보 사이에 고민하는 호남 유권자들이 안철수 후보를 더 적합한 후보로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야권 후보 단일화 조사를 할 때 지지도(경쟁력)를 묻는 방식으로 하면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하고 적합도를 묻는 방식으로 하면 안철수 후보에게 유리하리라 예상된다. 이는 그동안의 전국적인 여론조사 흐름을 분석한 전문가들이 ‘지지도 조사에서는 안철수가, 적합도 조사에서는 문재인이 유리하다’고 전망했던 것과 다른 흐름이다. 양 캠프 처지에서는 더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지도 조사 추이를 보면 단일화 회동 이후에 조사한 11월7일 조사에서는 ‘문재인 46.1% 대 안철수 36.7%’로 오차범위 밖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박근혜 후보 지지층을 걷어내도 8.6%포인트 차이로 문 후보가 앞선다. 안 후보가 단일화 논의 직전 호남을 방문하고, 11월5일 전남대 강연에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히며 호남에 비중을 두었지만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 단일 후보로 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와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각각 물었는데 예상 밖의 답변이 나왔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기 때문에’ 32.4%, ‘야권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24.2%, ‘호남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16.1% 순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에서 늘 전략적 선택을 하는 호남 민심이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 안 후보를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로 선호한다고 간주했는데 실제 호남 민심의 지표는 달랐다.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 호감도 더 높아

문재인 후보가 야권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답변이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의사를 내비친 전남대 강연의 제목은 “2012년, 1997년의 새로운 변화가 재현된다”였다. 안 후보는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거리를 두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햇볕정책에 대한 계승 의지를 밝히는 등 적극적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호남은 문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광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이희호 여사가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도 문 후보가 야권의 적장자 이미지를 얻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야권 단일화와 관련해서는 협상에 임하는 후보와 캠프의 태도도 중요하다. 2002년 대선 때 당시 3위였던 노무현 후보는 2위였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하면서 양보하는 모습과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냈고 역전에 성공했다. 이번 단일화 협상의 초기 모습을 보면, 문 후보는 꾸준히 단일화를 제안하며 진정성을 보여줬고, 안 후보는 결단을 통해 이를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호남 유권자들은 누구의 태도를 더 좋게 평가했을까? 

단일화 과정의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문재인 후보에게 호감이 더 생겼다는 응답이 46.8%로 안철수 후보의 38.6%보다 훨씬 높았다. 두 후보 모두에게 호감이 생겼다는 답변은 8.6%였다. 안 후보가 호남에서 단일화 결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답변이 나온 것은 전반적으로 단일화 논의를 차일피일 미뤄왔던 후보에게 피로감을 느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단일화와 관련해서는 이제 초반 논의가 시작된 터라 이런 이미지가 마지막까지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논란이 되는 단일화 방식과 관련해서는 국민 참여 경선과 모바일 경선, 여론조사를 혼합한 방식을 원한다는 답변이 28.2%로 가장 높았다. 국민 참여 경선과 여론조사는 19.4%와 17.3%로 큰 차이가 없었다. 후보 간 담판(11.0%)과 모바일 투표(9.3%)가 그 뒤를 이었다.

호남 여론조사 결과 단일화 전후로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따라잡고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게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 호남이 둘 중 어느 한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단일화 방식에 대한 힘겨루기, 신당 창당 여부, 정치 쇄신에 대한 의지 등 두 후보가 점수를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많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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