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판을 쳐요, 엉뚱한 꿈을 꿔요”
  • 고제규 기자·전혜원 인턴 기자
  • 호수 269
  • 승인 2012.11.1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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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고등학생들을 위한 드림 콘서트가 열렸다. 꿈과 직업’이 열쇳말이다. 직업 자체를 창조하거나 독특한 아이템으로 창업한 이들이 강사로 나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멘토를 맡았다.

객석에 앉아 있던 에코버튼 박기범 대표는 한 학생을 유심히 지켜봤다. 한영미 ‘오가니제이션요리’ 대표의 특강 중 이 학생은 졸다가 간식을 먹다가 졸기를 반복했다. 일어나서 수첩에 뭔가를 그렸다. 슬쩍 보던 박 대표는 그 실력에 놀랐다.

자신이 강사로 나선 순서에서 박 대표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갑을 들고 이 학생에게 다가갔다. 명함을 건넸다. “수첩 한번 보여줄래요? 내가 디자이너를 구하는 중인데 이 그림을 사고 싶어요.” 강의를 듣던 실업계 고등학생 130여 명이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멘토·멘티 만남 때 이 학생은 박 대표를 멘토로 꼽아 따로 만났다. 학생은 자신만의 만화를 구상하고 있었고, 캐릭터를 그렸다고 털어놓았다. 박 대표는 나중에라도 꼭 연락하라며 재능을 응원했다. 이 학생을 인솔한 대경정보산업고등학교 임선영 교사가 나중에 박 대표를 찾았다. 임 교사는 “학교에서는 그런 재주가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아무 관심사가 없는 학생으로만 알았는데, 오늘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된 것 같다.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다.

지난 10월31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직업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사IN> 드림 콘서트’(드림 콘서트)는 고등학생들에게 꿈의 씨앗을 뿌렸다. ‘꿈과 직업’을 열쇳말로 삼은 드림 콘서트는 창간 5주년을 맞은 <시사IN>의 사회 환원 프로그램이다. 인문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서울·충남·경남에서 지난 5월에 열린 ‘공감 콘서트’의 연장선이다. 이번에는 서울·경기·인천 지역 실업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무료 강연을 열었다. 학생들은 각 학교장이 추천했다. 추천 학생 가운데 30%는 사회 배려계층의 학생이 포함되었다. 취업과 진로 고민이 큰 실업계 고등학생 특성에 맞춰, 강사로는 직업 자체를 창조하거나 창업한 이들이 나섰다.

 

 

먼저 한영미 오가니제이션요리 공동 대표가 특강을 했다. 한 대표는 지난 10년간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청소년 교육 사업을 담당했다. 학생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전문가다. 요리를 통해 교육과 문화 사업을 펴는 오가니제이션요리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 한 대표는 “자기가 원하는 직업이 있고, 부모나 교사가 원하는 직업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과 ‘좋아하고 잘하는 것’ 그렇지만 ‘좋아해도 잘하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는 눈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꼭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희망 직업은 부모가 바라는 직업?

두 번째 강사로 나선 고졸 CEO 서동효 모티브하우스 대표는 획일화된 학생들의 꿈을 지적했다. “초등학생 꿈이 뭔지 아느냐? 교사다. 중학생은? 역시 교사다.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이 교사가 1등이란다.” 서 대표는 “엉뚱한 꿈을 꾸어라. 말도 안 되는 꿈도 좋다. 어떤 스님 말처럼 성공하려면 엄마 아빠 말 안 들으면 된다”라고 말하자, 학생들이 함성과 박수로 공감했다. 서 대표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건 창업 과정 자체가 엉뚱했기 때문이다. 놀이공원 직원과 유치원 교사를 거쳐 그는 ‘꿈 문화 기획자’라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직업을 스스로 만들었다. 창업도 하기 전에 자신의 꿈이 담긴 ‘모티브하우스’ 대표 명함을 만들어 만나는 사람마다 돌렸더니, 동료가 모이고 투자금이 생기고 공간이 마련되었다. 서 대표는 “꿈꿀 수 있다면 이룰 수 있다”라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플래카드나 지하철 광고판 따위 자원을 업사이클링해 가방·지갑·명함집·필통을 만드는 터치포굿의 박미현 대표는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한 경우이다. 남들이 ‘스펙’ 쌓고 대기업에 취직을 준비할 때 그녀는 한 푼 없이 회사를 창업했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때 매년 희망 직업을 적어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더 괴로웠던 건 부모가 희망하는 직업을 쓰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써요”라며 학생들이 큰 소리로 말했다. 박 대표는 “그런데 이것 왜 쓰나요? 부모가 바라는 직업을 왜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종이에 적어보았다. 그중에서 주변(부모·교사·친구)에서 하기를 바라는 일은 모두 지웠다. 그랬더니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보였다. 창업 경진대회에 나갔고 그 상금으로 창업 자금을 마련했다. 
 

 

강의 도중 즉석 스카우트 제안을 한 박기범 에코버튼 대표는 멀쩡한 샐러리맨이었다. 회사 파트너인 전수현 실장도 대학생들이 매년 취직하고 싶은 ‘1등 회사’에 다녔다. 두 사람 다 회사를 그만뒀다. 재미와 의미를 찾아, 친환경 놀이터를 만들고 에코 콘텐츠를 생산하는 에코버튼을 창업했다. 박 대표는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줄었지만 에코버튼을 운영하면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이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강사로 나선 이는 현재 고등학교 3학년 유가람 엄브렐러 공동 대표이다. 같은 또래가 강사로, 그것도 CEO라고 소개하자 학생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했다. 고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웹툰 ‘목욕의 신’을 토대로 만든 인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라고 소개하자, 학생들이 금세 알아봤다. 유양은 현재 엄브렐러라는 회사의 공동 창업자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한다. 유가람양은 “깽판을 치자”라며 도발적인 제안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길이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데 우리는 이 길이 정답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정해진 길에 반항하고 깽판을 치자.” 10대들이 즐겨 쓰는 말로 강의를 이어가자, 학생들은 공감을 표했다.  

전체 강의가 마무리된 뒤 강사와 학생들은 멘토·멘티 소그룹 만남을 가졌다. 멘토·멘티 만남은 두 번 진행됐다. 1지망 2지망 멘토를 정해 만났다. 멘토·멘티 만남은 이번 드림 콘서트가 일회적이고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소통 관계가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마련되었다. 강사와 학생들은 이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주소 등을 주고받았다. 드림 콘서트는 내년에도 가을께 열린다. 내년에는 서울뿐 아니라 지방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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