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라이트의 탄생
  • 박권일 (<88만원 세대> 공저자)
  • 호수 269
  • 승인 2012.11.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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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중권과 토론 배틀을 벌여 화제가 된 ‘일베’는 네오 라이트의 전위다.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이라는 낡은 적대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탄생했다.

최근 유명 논객 진중권과 ‘일베’ 유저 간에 ‘토론 배틀’이 벌어져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일베’란 ‘일일 베스트 저장소’라는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이다. ‘젊은 우파들의 놀이터’라 표현할 정도로 우파 담론이 지배적인 곳이다. 게시판 글에 대한 비추천을 가리키는 명칭이 ‘민주화’인데, 여기서 그 말이 최악의 비난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에 대한 극도의 증오, 특정 지역에 대한 인종주의적 반감, 된장녀라는 말로 대표되는 여성혐오주의가 일베의 표면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베를 두고 ‘인터넷의 하수구’라 비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거기서 노는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바닥정서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학력인증 사진을 올리면서 자신들이 실은 명문대에 다니는 ‘멀쩡하고 능력 있는 청년’임을 입증하려 애쓴다. 이런 자기 지시의 메커니즘은 그저 비웃고 끝낼 일은 아니다. ‘우리가 곧 민중이며 엘리트’라는 어법은 ‘가장 억압받지만 가장 강력한 노동계급’이라는 급진 좌파의 어법에 조응한다. 그것은 담론 투쟁의 장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인지되는지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권력의지의 명백한 표출이다.

 

일베에서 노는 청년들은 실제로 ‘바닥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정말로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바빠 인터넷에서 ‘잉여롭게’ 게시판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가장 88만원 세대에 가까운 청년은 88만원 세대라는 단어조차 읽은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저 정도의 담론 투쟁을 하고 저 정도의 대자적 자기인식을 보여주는 이들이 ‘바닥’일 리가 없다. 그들은 기성세대 우파에 동원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이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일상에서 드러나는 계급적·젠더적 코드에 대해서는 경이로울 정도로 예민한 촉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내가 ‘네오 라이트’라 명명한 어떤 ‘덩어리’의 일부이자 전위다.

나는 2010년 ‘뉴 라이트에서 네오 라이트로? 한국의 반이주노동 담론 분석’이라는 짤막한 글에서 인터넷의 반이주노동자 담론을 분석해 유형화하고, 새로운 우파의 탄생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다(이 글은 좀 더 다듬어져서 2012년에 <우파의 불만>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른바 ‘넷 우익’ 반이주노동 담론에 대한 국내 최초의 분석이다.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 반인권주의, 반엘리트주의, 인종주의, 시장주의 등이 네오 라이트의 특징이다. 이들은 민주화 세력뿐 아니라 한나라당-새누리당도 믿지 않는다. 낡은 이념투쟁에 연연하고 다문화주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선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이다.

극우가 발현할 최적의 토양

네오 라이트는 기본적으로 탈정치적이지만, 한편으로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분노 또한 크다. 노동시장에서 중국·방글라데시 노동자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저임금 블루칼라 노동자에서부터 계층 하락의 위협에 직면한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기층 우파’의 계급적 스펙트럼은 꽤 넓다. 더 이상 대학에서 ‘진보의 세례’를 받지 않는 대학생 상당수도 이 덩어리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었다.

네오 라이트의 탄생은 기존 우파와 좌파에 대한 불만, 즉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이라는 낡은 적대가 더 이상 현실의 모순을 반영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밥그릇 리그’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기인한다. 중간계급이 붕괴하면서 극소수 상층부와 대다수 하층부로 사회가 고착되어버리면 현실정치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해결하기보다는 어떻게 위무하고 해소해주느냐의 게임, 다시 말해 포퓰리즘 경쟁이 되기 쉽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야말로 극우정치가 피어날 최적의 토양이다. 낡은 적대를 폐기하고 새로운 적대에 걸맞은 정치 지형을 구성하는 데 실패한 사회는 정치 참여를 희생양 찾기로 대체하게 된다. 일베의 출현은 바로 그 신호 중 하나이다. 서유럽 극우 정당의 확산, 일본의 하시모토 열풍은 이제 더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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