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센테니얼 이장석 대표(오른쪽)와 우리담배 홍원기 사장. 제8구단은 야구단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센테니얼, 그리고 우리담배. 이름조차 생소했던 두 회사는 지난 한 달 보름여 동안 돌연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월30일, 센테니얼은 1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해 표류하던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재창단’ 형식으로 사실상 인수했다. 자본금 5000만원의 신생 투자회사가 120억원을 들여 야구단 인수에 나서면서 눈길이 쏠렸다. 곧이어 센테니얼은 스폰서에게 야구단의 이름까지 판매하는 ‘네이밍 마케팅(naming marketing)’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더 놀라운 소식은 2월21일에 나왔다. 신생 담배회사 ‘우리담배’는 프로야구 제8구단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3년간 총 300억원을 내겠다고 나섰다.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야구 팬들은 야구단이 ‘1년에 100억원’의 홍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시장에서 증명됐다며 흥분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1월11일, 농협과 STX에 이어 세 번째 협상 대상자였던 KT마저 유니콘스 인수를 포기하면서, 야구팀의 경제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논의되던 인수 가격은 60억원. 12년 전 현대가 430억원에 사들였던 구단은 7분의 1 가격에도 인수자를 찾지 못하는 골칫거리로 전락한 터였다.

문제는 인수대금이 아니라 유지비

KT가 60억원도 내지 않겠다고 한 야구단에 우리담배가 300억원을 쓰기로 했다는 소식은 기묘하게 들린다. 하지만 KT와 우리담배는 처지가 다르다. KT가 야구단을 운영하는 내내 1년에 100억원대의 자금을 운영비로 써야 하는 ‘인수자’의 처지였던 반면, 우리담배는 짧은 기간에 집중 홍보 효과를 보고 손을 뗄 수 있는 ‘스폰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감사보고서에 나타나는 프로야구단의 한 해 수지타산은 흑자든 적자든 10억원대. 하지만 이 숫자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없다. 가장 큰 수입원인 광고수익 중 대부분이 모기업으로부터 나온다(표 참조). 자유계약 선수 영입 등 특수한 상황일 때는 수십 억원의 추가 자금이 든다. 사실상 지원금이다. 문제는 인수 비용이 아니라 ‘유지비’인 셈이다.

모기업이 야구단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주는 돈은 한 해 적어도 120억원이고, 많게는 200억원을 넘기기도 한다. 우리담배가 비교적 부담 없이 야구단에 투자할 수 있는 까닭도 이 ‘유지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우리담배 이광종 대외협력단장은 “연 100억원의 스폰서 비용은 전체 대외협력 예산의 40% 정도다”라고 밝혔다. 야구단을 인수해야 했다면 뛰어들지도 못했으리라는 결론이다.

우리담배가 ‘돈다발’을 풀었지만, 그것으로 ‘야구단의 홍보 효과가 한 해 100억원’이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우선은 담배회사라는 특수성이 있다. 담배 광고에 대한 제한이 엄격하기 때문에 프로야구 스폰서로 나서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대형 홍보 수단이 없어서 거액을 투자했다는 분석이다. 한양대학교 김종 교수(스포츠산업학과)는 “홍보에 목마른 담배회사가 200억원인들 못 내겠느냐”라며 정상적인 시장의 평가가 나온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담배가 신생 회사라는 점 역시 변수다. 인지도를 높이는 게 절실한 신생 회사로서는 매일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야구만큼 좋은 홍보의 장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기존 7개 구단의 모기업은 국내 시장의 인지도를 걱정할 이유가 없는 대기업. “야구 안 한다고 대한민국에서 삼성, SK 모를 사람이 있겠나?”라고 김 교수는 반문했다. 처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른 우리담배의 ‘100억원’이 야구단 홍보 가치의 증거 또한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담배가 홍보 효과를 따지기에 여러 모로 특수한 처지라면, 기존 7개 구단의 모기업이 야구단을 통해 얻어가는 홍보 효과는 과연 얼마일까. 홍보 효과를 계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미디어 노출량에다 광고 단가를 곱하는 것이다. 스포츠 뉴스에 팀 소식이 20초 동안 나왔다면 해당 시간대에 20초짜리 광고 하나를 한 것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홍보 효과를 자체적으로 계산하는 일부 야구단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이 오래된 계산법의 한계는 명확하다. 강원대 홍석표 교수(스포츠과학부)는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이미지와 충성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주먹구구 계산일 뿐이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 야구단의 홍보팀장 역시 “국제 스포츠 마케팅 경험이 많은 모기업은 그런 단순한 자료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라고 전했다.

ⓒReuters=Newsis삼성은 해외 시장에서 스포츠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삼성’을 가슴에 달고 뛰는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첼시 선수들.
프로축구단 성남 일화는 지난해 미디어 노출 효과가 915억원이었다고 발표했다. 프로야구 리그의 타이틀 스폰서인 ‘삼성 파브’의 미디어 노출 효과는 1270억원이었다. 시장에서 무시되는 것도 당연하다. 삼성 파브의 실제 스폰서 계약금은 50억원. KBO는 올해도 그 정도 수준에서 스폰서 계약을 추진 중이다.

“결과는 ‘적당한 숫자’로 맞춰달라”

선진 스포츠 마케팅은 단순히 브랜드의 노출량을 따져서 가치를 매기는 수준을 넘어섰다. 실제 매출 증대는 물론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길까지 제시한다. 홍 교수는 “삼성의 스포츠 마케팅 파트너인 영국 축구팀 첼시는 어떻게 첼시 팬을 삼성 팬으로 만들어줄까 고민하는데, 우리 구단은 자기 이름이 텔레비전에 몇 번 나왔는지 세는 게 전부다”라고 꼬집었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회사 IB 스포츠의 김명구 국장은, 해외에서는 홍보·매출·충성도를 아우르는 전체 전략 속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기획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하는 기업은 스폰서 비용의 서너 배를 따로 들여 후속 마케팅에 나서곤 한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 현대자동차, 올림픽 공식 후원사 삼성 등에는 이미 상식에 속한다. “노출 효과만으로 우리담배는 이미 100억원 이상을 벌었다. 하지만 이후 전략이 준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효과는 200억원이 될 수도, 0원이 될 수도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 스포츠 마케팅 시장의 진짜 문제는 ‘적당주의’다. 과학적 조사를 통해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대신 모기업을 상대로 명분을 쌓는 자료로만 사용하려 든다는 것이다. “사전조사 결과 효과가 너무 크거나 너무 적은 것으로 나오면 ‘적당한 숫자’로 맞춰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예상되는 효과가 너무 크게 나와도 이유를 모기업에 설명하는 데 ‘품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가 가능할 리 없다. 야구단들의 항변대로 부당하게 ‘싸구려’ 취급을 당한 게 사실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자업자득인 셈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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