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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절대반지 이야기

국가권력의 막강한 힘은 놔둔 채 주인만 착한 사람으로 바꾼다고 해결될까?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 자체를 정의롭고 공정한 공권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배명훈 (소설가) 2012년 11월 01일 목요일 제2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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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권력을 혐오한다. 그래서 권력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불경하게 여긴다. 하지만 모두가 눈을 돌린 컴컴한 구석에서 권력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난다.

어떤 후보가 공약을 내세운다. 그러면 사람들은 상식처럼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 공약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권력을 어디에서 조달할 거냐고 묻는 사람은 드물다. 공약을 내거는 당사자들도 그 부분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공약은, 정말로 돈만 조달하면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것을 뒷받침할 권력에 대한 고려 없이 착한 마음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일까?

권력 조달 계획을 생략하는 후보들의 의중은 결국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복잡하게 따질 것 없이 당선되면 갖게 될 막강한 권력으로 한번에 깔끔하게 해결하겠다는 것, 즉 대통령령이 아닌 어명을 내리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권력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그 후보는 언뜻 보기에 권력을 멀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암묵적으로 절대권력을 지지하게 된다. 국가권력의 막강한 힘은 그대로 놔둔 채 그 주인만 착한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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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절대권력은 이 착한 후보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반지가 누구 손에 끼워져 있든 반지에 담긴 권력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압도적이니까. 관료제라는 엔진으로 무장한 이후의 권력은 어느 인간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직책으로서의 대통령이 가진 힘은 ‘대통령 OOO’의 자리에 누구의 이름을 써 넣든 변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 이걸 이대로 놔둬도 되는 걸까?

사실 한국 사람들은 이 질문의 답을 잘 알고 있다. 중동을 휩쓴 민주화 열풍을 바라보던 많은 한국 사람이, 타흐리르 광장에 가득 핀 승리가 그저 민주화라는 머나먼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우발적이고 감격스러운 첫 챕터일 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 나라 민주화가 완성되는 건 어느 독재자에게 쏠려 있던 절대권력이 또 다른 이름의 권력자들을 거치고 거쳐 마침내 국민 손에 충분히 이양되는 순간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우리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새뮤얼 헌팅턴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타협해버린 혁명으로 분류한 사건들로 시작된 이 나라의 민주화의 종착점은, 타흐리르가 이르러야 할 종착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절대권력 자체를 와해시켜야 하는 것이다.


민주화의 완성, 권력을 국민 손에

물론 단지 선거만으로도 절대반지가 교체될 수 있다는 건, 분명 도달한 나라보다 도달하지 못한 나라가 훨씬 더 많은, 꽤 의미 있는 민주화의 성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선거 결과에 몰린 판돈을 낮추지 않은 채 이대로 아슬아슬한 러시안 룰렛을 계속하는 것도, 누군가의 눈에는 어쩌면 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악마의 손에서 절대반지를 빼앗아 착한 왕의 손에 끼워주는 게 이 이야기의 제대로 된 결말이 맞는지(내가 아는 다른 이야기에서는 발에 털이 잔뜩 난 작은 사람이 그 반지를 없애기 위해 죽을 고생을 다하는 동안, 착한 왕은 악마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어디선가 목숨을 걸고 양동작전을 펼쳤다).

예언하건대,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 자체를 응시하고, 그래서 그 권력 자체를 정의롭고 공정한 공권력의 형태로 중화시키지 않는 한, 이 혐오스럽고 지긋지긋한 절대권력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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