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가스’가 짓밟은 마을은 이미 폐허로 변해 있었다.

10월4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30년째 멜론 농사를 지어왔다는 이승용씨(60)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금방이라도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자란 멜론들이 말라죽은 줄기 끝에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이 다 썩어삔 걸 우에 팔아묵노. 묵고 죽으믄 우짤라고!”

이씨는 불산가스가 마을을 덮치던 순간 멜론을 수확하기 위해 이곳 비닐하우스로 향하던 중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사IN 조남진

‘죽음의 가스’가 마을을 덮친 건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9월27일 오후 3시43분께.  길 건너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에 입주한 화학제품 제조업체에서 유출된 ‘불산가스’가 바람을 타고 봉산리 일대를 덮친 것이다.

공단에서 불이 난 줄만 알았던 주민들은 독가스가 마을을 뒤덮은 뒤에야 마을이장에게서 유독가스임을 전해 듣고 황급히 마을을 탈출했다.

이튿날 아침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을의 모든 식물이 마치 ‘고엽제’를 맞은 것처럼 하얗게 말라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림자는 지금도 인근 마을로 확산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봉산리 주민은 탈출한 지 하루 만에 구미시의 귀가 통보를 받고 ‘불산가스’로 가득 찼던 마을로 돌아왔다. 이미 다량의 가스에 노출된 상태지만 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관계기관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기자명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nm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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