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돌 생일을 한 달 앞둔 아이가 눈앞에서 피를 토하다 죽었다. 기침하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간 지 이틀 만이었다. 의사는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그저 아이 폐가 급속히 굳어갔다고만 했다. 나이 마흔셋에 얻은 딸이었다. 장동만씨는 죽은 아이가 토해놓은 피를 마셨다. 내 딸을 죽인 게 미확인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고 하니, 이 피를 마시면 따라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씨는 죽지 않았다. 다만 1년 뒤, 아내가 죽은 딸과 똑같은 증세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위로처럼 얻은 둘째 딸을 출산한 직후였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폐 사진을 보여주며 의사는 “편하게 보내주자”라고 말했다. 장례식을 준비하던 날 기적적으로 폐 이식 공여자가 나타났다. 한숨을 돌리고 있던 중 장씨는 ‘원인 미상 폐질환’의 원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딸을 죽이고 아내를 괴롭힌 주범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었다. 귀한 딸 감기 없이 잘 키워보겠다며 매년 가을·겨울마다 사서 쓰던 그것, 그 딸을 잃고 난 뒤 다시 임신한 아내가 더 열심히 가습기에 부어넣던 그것, 바로 가습기 살균제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봄 산모와 영·유아들이 원인 미상 폐손상으로 죽어나가자 역학조사에 들어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8월31일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라며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동물실험 결과를 토대로 제품 수거 명령이 내려진 때는 그로부터 3개월 뒤(11월11일)였고 최종 인과관계가 발표된 건 올해 2월2일이었다. 그 사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에 접수된 피해 사례는 174건. 그 가운데 사망 사례가 52건이다. 


ⓒ시사IN 윤무영9월1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 토론회에 참석한 한 피해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피해자 가족들의 절규가 끊이지 않았다.

마트와 슈퍼에서 사다 쓴 물건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정부가 조사를 하고, 그 인과관계도 밝혀졌건만 남은 가족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1년 사이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딸을 잃은 장씨는 폐 이식 후 아직도 쇳소리를 내며 누워 있는 아내를 간병하느라 생업을 포기했다. 남은 아이는 팔순 노모가 돌보고 있다. 수술비만 1억8000만원이 나왔고 지금도 매달 병원비 수백만원이 청구된다.

장씨뿐 아니다. 한 피해자는 폐 이식 수술을 한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마비됐고 병원비 2억원에 신용불량자가 됐으며 이혼 위기가 찾아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근근이 버틴다고 했다. 어떤 5인 가족은 네 살배기 둘째를 잃고 엄마, 여섯 살 첫째, 세 살 셋째가 폐질환 환자가 됐으며 아빠는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임신한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 10년 동안 산소통을 끌고 다녀야 하는 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 화학 전공자인데 어이없게 어린 딸을 보내고 말았다는 아빠…. 지난 9월19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 토론회는 피해자 가족들의 절규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피해자는 들끓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폐로 직접 흡입하는 가습기 살균제를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에 ‘등록’만 하면 판매할 수 있는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해놓고 그간 방치해온 정부는 피해자 대책에 입을 닫고 있다.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 PHMG(폴리핵사메틸렌 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 에틸 구아니딘)의 흡입 유해성을 확인하고 관련 법규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을 뿐 피해자 보상에 관해서는 “해당 기업과 개별 소송으로 해결할 일이다”라는 의견만 고수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국가를 대신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야 했다. 지난 1년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를 검찰에 고발하고, 민사 소송을 내고, 소비자 단체와 연계해 집단 분쟁 조정을 신청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들을 제소하고, 토론회를 열고, 기자 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성과라면 고작 지난 7월 공정위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 옥시레킷벤키저·홈플러스·버터플라이이펙트·아토오가닉이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면서 제품 용기에 안전하다고 허위 표기를 했다며 과징금 5200만원(전체 합산)을 부과한 것 정도이다. 그나마 롯데마트·글로엔엠은 제품 용기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 조치만 받았다.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아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어도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은 매번 출석을 거부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의 강찬호씨는 “지난 1월에는 국무총리실에 피해자 대책을 묻는 민원을 넣었는데 지금까지도 아무런 답이 없다”라고 말했다. 하다못해 폐 이식 수술과 약물 치료비로 가산을 탕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환자들이 의료보험 적용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애원해도 정부에서는 “제도와 재정상 관계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팔아 돈을 벌어온 기업들은 더 차갑다. 가습기 살균제를 폐손상 원인으로 추정하는 최초 발표가 났을 때 옥시·SK케미칼·애경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로 구성된 가습기살균제협회는 “조사 결과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 중 하나에 대한 언급일 뿐이다”라며 유해 가능성을 반박했다. 이후 최종 인과관계가 발표되자 기업들은 하나같이 입을 닫았다. 옥시, 홈플러스, 롯데마트, 한빛화학(옥시 OEM 상품 제조), 용마산업사(롯데마트·홈플러스 PB 상품 제조), 버터플라이이펙트, 아토오가닉, 글로엔엠 등 정부가 흡입 유해성을 최종 확인한 PHMG·PGH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회사 중에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보상에 나선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옥시, 아예 정부 실험 결과 인정 안 해

특히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이라는 제품으로 가습기 살균제 시장에서 업계 1위를 차지하던 옥시 측은 아예 정부 실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자체 실험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레킷벤키저 서현정 홍보실장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 7월13일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의 허위 광고 여부를 가리는 공정위 심판정에 참석한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대표에 따르면 옥시 측에서는 당시 대형 로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내세워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2000년부터 제품을 팔아왔지만 10여 년간 안전성 논란이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실험 결과도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인체 유해성을 단언하기 어려우며 노출 농도도 너무 가혹했다. 제품 판매 당시 규제 기준이 없었으므로 위법 행위도 아니며 방향제나 홈매트 같은 제품도 유해한 성분을 지녔는데 판매가 허용됐다.”

조 대표는 “피해자가 그렇게 많은데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은 개념 자체가 없어 보였다. 김앤장 같은 초대형 로펌을 고용한 걸 보면 끝까지 가보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옥시의 주장과는 달리,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시작된 1990년대 후반 이후 매년 보고되던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 피해 신규 사례는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나서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너무 일찍, 너무 열심히 가족의 건강을 챙기다가 억울한 일을 당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나고 있다. 지난 9월19일 국회 토론회장, 하늘나라로 간 딸 사진 앞에서 장씨는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 사과하는 사람 한 명이 없는지…. ‘미안합니다’ 이 한마디를 정말 듣고 싶습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