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되면 이명박 정권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베이징에 나와 있는 북한 고위관계자가 했다는 말이다. 그는 이 말 끝에 “민족의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북 소식통이 전해준 그 말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중국이 북한의 항만과 자원을 싹쓸이 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12월 대선 이후 남한에 등장할 새 정권이 누구든 남북관계의 진전을 서두르리라고 예상한 중국이, 5․24 조치로 남한 기업의 발목을 꽁꽁 묶어 두고 있는 이명박 정권 임기 내에 ‘북한 요리’를  끝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9월의 마지막 주, 기자는 북한의 항만과 자원이 중국에 속절없이 넘어가는 소식에 연거푸 가슴을 쳐야 했다. 항만부터 보자. 9월17일부터 21일까지 평화문제연구소와 중국 연변대 동북아연구원이 주최한 한·중 학술회의 참석 차 연변조선족 자치주 내 여러 지역을 돌던 중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된 청진항 문제와 한동안 잠잠하던 나진항 4․5․6호 부두 관련 최근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연합뉴스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공개한 북한 나진항의 모습.


청진항 3․4호 부두의 경우 지린성 투먼시의 옌볜하이화(海華)그룹이 최근 북한항만총회사와 개발 및 사용권 협상에서 합의했다는 소식이 현지에서도 확인됐다. 현지 전문가에 따르면 하이화그룹은 그동안 청진시에 매년 코크스탄 150만 톤을 공급해온 무역업체인데 이런 연줄로 그동안 1단계로 청진항 3․4호 부두 사이에 컨테이너 야적장을 건설했고, 최근 여기서 더 나아가 3․4호 부두의 개발 및 사용권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 하이화그룹의 뒤에는 청진항을 통해 동해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도문시 정부의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연변에서 돌아온 후 청진항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입수됐다. 베이징을 통해 북측과 접촉해온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에 합의된 것은 청진항 3․4호 부두 외에 5호 부두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중국 초상그룹의 나진항 4․5․6호 부두 진출  

중국 초상그룹은 중국의 대표적 상업은행인 초상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굴지의 대그룹이다. 150년 전 리홍장이 처음 건립했다는 유서 깊은 기업으로 이 회사의 사장은 장관급 대우를 받고, 그 규모가 시노펙(SINIPEC)으로 알려진 중국석유화공집단 및 차이나 모바일 회사와 견주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 이 초상그룹이 나진항 4․5․6호 부두 협상의 전면에 나섰다는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연변 현지에서 만난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2월23일 북·중간에 50년 사용권을 보장하는 MOU가 체결된 이후 감감 무소식이던 나진항 4․5․6호 부두 문제에 진전이 이뤄진 건 지난 7월, 중국 중앙정부의 권유로 이 문제에 뛰어든 초상그룹과 북한의 나진항만그룹 간에 MOU 다음 단계인 LOI(Letter Of Intent)가 체결된 것이다. 

그 뒤 8월에는 초상그룹 회장이 이 지역을 다녀가기도 했다. 그리고 10월23일 베이징에서 북․중 양측 간에 정식으로 계약서가 체결된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초상그룹은 이 계약 체결의 주체일 뿐 아니라 앞으로 4․5․6호 부두의 개발 및 운영까지 직접 담당할 예정이다. 

북한의 항만들은 대개 천연항이기 때문에 항만의 깊이가 13미터 이상 가기가 어렵다. 그러나 4․5․6호 부두는 바다를 메워서 만들기 때문에 드래프트(배의 가장 깊은 곳에서 수면까지의 수직거리) 기준으로 20~30미터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접안 가능한 배의 크기는 LNG나 LPG 유조선의 경우 30만톤, 벌크선은 15만톤, 컨테이너 선은 20만톤까지 가능하다. 

연간 하역량에 대해서는 아직 상세한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며 언급하기를 꺼려했으나, 지난해 말부터 나진항 1호 부두를 이용해 남방으로 10만톤의 석탄을 운송한 것으로 알려진 창리그룹의 벌크선이 1만톤 급에 불과하며, 1호 부두의 연간 하역 목표량이 100만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초상그룹이 개발할 4․5․6호 부두의 규모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초상그룹의 나진항 진출과 비견할만한 게 바로 대중화그룹의 신의주 진출이다.(〈시사IN〉 258호. 장성택 방중, 신의주 특구를 주목하라) 초상그룹과 마찬가지로 대중화그룹 역시 홍콩계 자본으로 소개돼 왔으며, 금융 부동산개발 유통 등을 망라한 대규모 기업 집단이다. 

초상그룹이 나진항 4,5,6호 부두와 관련한 LOI를 체결하기 한 달 전인 지난 6월, 대중화그룹도 북한 합영투자위원회와 신의주 특구 개발에 합의했다. 대중화 측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과거 양빈에게 부여했던 입법․행정권까지 요구해 북측의 반응이 주목되어 왔다. 즉 지난 6월과 7월부터 이미 한반도의 동쪽 관문과 서쪽 관문을 홍콩계 자본으로 포장한 중국 굴지의 대자본들이 장악해 들어갔으며 이제 10월부터 그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연합뉴스6월12일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신 압록강대교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위 사진은 중국 쪽에서 바라본 공사 현장 모습.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짐짓 뒤로 빠져있는 채 하지만 초상그룹이 중국 공산당의 최대 돈줄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며, 아무 연고 없는 동북의 변두리까지 이 거대그룹이 찾아온 연유야말로 중앙정부의 개입 때문이라는 것 역시 불문가지다. 마찬가지로 대중화 그룹의 뒤에도 역시 중국 정부, 특히 중국 공산당 내 상해파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법하다. 

김정일 전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부터 상해파의 거두 장쩌민 주석이 신의주에 대한 조차 개발에 집착해왔다는 점, 더구나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방중 때 양저우까지 가서 장쩌민 주석을 만났을 가능성이 얘기돼왔고 그 뒤에 등장한 것이 홍콩계 자본으로 포장한 대중화그룹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중국 정부 및 공산당의 원모심려가 대륙과 연결된 한반도의 동서 관문을 틀어쥐기 시작한 셈이다.


중국 500대 기업의 북한 자원 독점 

정부는 뒤로 빠지고 기업을 대거 앞세웠다는 점에서 최근 불거진 중국 500대 기업에 의한 북한 자원개발 독점 건도 일관된 흐름을 갖고 있다. 지난 9월22일 베이징의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최근까지 북·중간에는 자원 개발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돼왔다. 장성택 행정부장 방중기간 불거진 시양그룹 사건에서부터, 보도는 안됐지만 무산광산 개발을 둘러싼 천지무역과 북측간의 갈등 등 대체로 투자 지분을 둘러싼 분쟁이다. 이로 인해 북한 내 자원개발은 알려진 것만큼 진행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바로 중국의 500대 기업들이 ‘500대 기업가협의회’를 결성하고 펀드를 조성해 북한 자원에 대한 공동 탐사 및 개발 독점권 확보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 중 1차로 100대 기업이 이미 50억 달러를 조성해 9월22일 가칭 조선투자기금의 발족식을 가졌고, 당일 오후 2시부터 저녁까지 베이징의 북한 합영투자위원회 측과 투자 대상 선정을 위한 장시간 회의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회의는 다음날인 9월23일까지 이어질 계획이라고 했다. 


 

 함경북도 무산군에 있는 무산광산. 동양 최대의 노천철광산

그러면서 그는 중국의 500대 기업이 이렇게 갑자기 북한 자원 투자 펀드를 조성한 배경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남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남북관계를 즉각 재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이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권이 5․24 조치로 남한 기업들의 발목을 꽁꽁 묶어 놓고 있는 현재의 호조건을 최대한 이용해 중국 전역의 대기업들이 십시일반 자금을 갹출해 대규모 투자 펀드를 조성한 뒤 북한 자원을 싹쓸이 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한에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 한들 북측과 추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미 나진항과 신의주 등 전략 거점이 중국에 장악되기 시작했고(물론 북측은 신의주 특구의 경우 남한 기업의 진출을 여전히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철광석 및 희토류, 유·무연탄, 금은 등 각종 희귀광물 등까지 다 빼앗겨 버리면 남북관계는 빈껍데기 밖에 남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동안 국내 일부 업체가 암암리에 중국 기업을 앞세워 북한의 일부 광산을 가계약 한 경우가 있었는데, 5․24 조치에 묶여 추가 투자가 벽에 부닥친 사이에 중국 기업들이 달려들어 그 마저도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최근 사례만 해도 무산광산의 경우 그동안 협상이 지지부진 했던 오쾅그룹이 다시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고, 과거 북측과 석유개발을 함께 했던 홍콩의 KKG 그룹도 무산광산을 요구하며 협상에 뛰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현 정부 뿐 아니라 대권 주자들도 나서야

그동안 북측의 뜻있는 인사들은 자원개발만은 남측 몫으로 남겨두려고 중국과의 협상을 일부러 늦추는 등 최대한 버텨왔으나 10월을 목표로 가속도를 내고 있는 투자유치 실적 스트레스로 인해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최근 북측 투자에 관심을 가져온 남측 기업 관계자들에게 “어떡하든 10월 중에 뭐라도 붙잡지 않으면 다 넘어간다”며 최후통첩을 보내고 있으나 남쪽 기업은 5․24 조치의 벽 앞에서 옴쭉달싹 못하는 신세다.  

그동안 대북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남북경협을 가로막는 5․24 조치를 해제해달라는 요구가 산발적으로 제기돼 왔으나 정부는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북한 자원이 중국 자본에 싹쓸이 되면 나중에 땅을 치고 통곡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명박 정권이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야 그 정권에 속했던 자들의 문제라 치더라도, 이 문제는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차기 정권에도 해당된다. 

지금 이 시기를 어영부영 넘겨 빈 깡통만 남은 남북관계를 물려받으면 차기 정부 5년간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따라서 지금의 남북관계는 차기 주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이상 수수방관할 때가 아닌 듯하다. 대권 주자들 개인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현 정부에 대책을 촉구해야할 뿐 아니라 추석 전이라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자 회동이 이뤄질 경우 공동으로 입장 표명을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북한 당국 역시 남한의 대선 국면이라는 취약한 시기에 중국과 협상해 민족 공통의 재산을 넘겨 버리는 섣부른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한 현 정권을 비난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북측도 역사와 민족 앞에 죄인이 될 것이 자명하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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