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편한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 이번에는 영화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9월9일(현지 시각 9월 8일) 김 감독이 상을 받은 이후 한국 영화계는 극심한 ‘김기덕 열병’을 앓고 있다. 왜 그럴까?

영화계 비주류였던 김 감독의 영화 인생을 되짚어보면 한국 영화계의 모순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기자·영화평론가·배급자·투자자·제작자·영화단체 등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그의 수상을 계기로 까발려지고 있는 것이다.  


ⓒAP Photo9월4일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왼쪽)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감독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평론가 최광희씨는 트위터에 “영화사가 돈 내고 데려가지 않으니 베니스에 취재 가지 않은 기자들이 〈피에타〉의 황금사자상 소식에 ‘멘붕’에 빠져, 내게 전화를 걸어 수상 의미를 인터뷰해 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다”라고 올렸다. 베니스 영화제에 취재 등록을 한 한국 기자가 거의 없었던 것을 지적한 것이다. 〈돈의 맛〉이 경쟁 부문에 진출한 칸 영화제 때 영화사 협찬을 받은 한국 기자들이 몰려간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10쪽 공갈뉴스 참조).

이에 대해 최씨는 “영화사나 연예 기획사가 기자들을 해외 취재에 데려가는 것은 쉽게 말해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매수되는 행위다. 그들은 항공료와 숙박비 명목의 촌지를 받는 셈이다. 그러니 부정적인 기사를 쓸 수가 없다. 이런 관행부터 없어져야 탁한 기사들이 정화된다”라고 지적했다.

비록 기자들은 김 감독에게 소홀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발언권이 주어질 때마다 언론을 십분 활용했다. 그동안 우리 영화계의 문제점을 주로 지적했던 그는 수상 이후 기자들에게 보낸 수상 소감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문재인님이 보내주신 진심이 가득 담긴 감동적인 긴 편지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분들이 훌륭하시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문재인님이 고름이 가득 찬 이 시대를 가장 덜 아프게 치료하실 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저는 문재인의 국민이 되어 대한민국에 살고 싶습니다.”

김 감독은 기자들뿐만 아니라 평론가들과도 불편한 관계였다. 특히 김 감독의 영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여성 평론가들이 그랬다. 김 감독 초기 영화에 비판적이었다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 이후에는 평가를 달리했던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예전에 김기덕 감독을 비판했을 때 유림 페미니스트, XX평론가라는 댓글이 넘쳤다. 누구는 김기덕 저격수란다. 수많은 감독에 대한 글을 썼는데도 특정 감독과 연관시켜 한 개인의 정체성을 재단하는 이런 식의 프레임은 넌더리나게 싫고 폭력적이다”라고 트위터에 쓰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에 대한 평단의 박대는 흔히 홍상수 감독에 대한 환대와 비교된다. 한 영화평론가는 〈나는 가수다〉로 두 사람을 비유했다. “홍상수가 이소라라면 김기덕은 임재범이다. 정밀하게 노래하는 이소라처럼 섬세하게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는 본선 진출 가능성이 높다. 반면 수상 가능성은 파괴력과 가창력이 있는 임재범처럼 개성이 강한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이 높다”라고 평가했다. 

“투자자와 창작자 사이의 균형 깨져”

그럼에도 김 감독에 대한 국내 평단의 평가는 늘 박한 편이었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빈 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2011년 다큐멘터리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했음에도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리랑〉에 나온 김기덕 감독의 발. 그는 영화계에서 ‘불편한 존재’였다.
이번에 〈피에타〉로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3대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서도 평단 일각에서는 “김기덕은 영화제용 영화만 만든다.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만 한다”라며 평가 절하하는 뒷얘기를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평론가는  “그런 식의 매도는 과학자가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실릴 연구만 한다고 혹은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연습만 한다고 타박하는 것처럼 억지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9월13일 저녁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한 황금사자상 수상 축하연에서 김 감독은 “다행히 〈피에타〉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개런티를 나눠줄 수 있게 됐지만 다른 소규모 저예산 영화들은 상영할 기회조차 없다. 투자자와 창작자 사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 이 균형을 되찾지 못한다면 제2의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그리고 김기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영화의 제작·배급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김 감독의 국내 개봉작 중 최대 흥행작은 〈나쁜 남자〉로, 관객 70만명이 들었다. 베니스 영화제 수상으로 탄력을 받은 〈피에타〉는 개봉 8일째인 9월13일 손익분기점인 20만명을 넘어섰다. 100여 개 상영관에서 개봉했지만 좌석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2주째부터 개봉관이 400여 개로 늘었다. 이 정도면 김 감독 영화치고는 블록버스터급 흥행이다.

상영관 확보 위해 예능 출연까지

영진위 수상 축하연에서 주연배우 조민수씨는 “어머니가 분당에 사는데 분당에 (영화 상영)하는 곳이 없어서 죽전까지 가서 봤다더라. (상영관이 늘어서) 나는 다행히 분당 야탑에서 볼 수 있었다”라며 이런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2006년 김 감독은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한국 영화 배급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당시 〈괴물〉이 전국 620여 개 상영관에서 1000만 관객 기록을 돌파했는데 그가 연출한 〈활〉은 고작 한 상영관에서 1400여 명이 든 상황이었다. 김 감독은 그 무렵 “내 영화는 전 세계 100개국에서 개봉되어 1000만명을 모을 것이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괴물〉이 기록한 1301만명이라는 흥행 기록을 깨보겠다며 〈도둑들〉이 아직도 스크린을 점유하고 있고, 이를 눌러보겠다며 CJ E&M 측에서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한 주 당겨 개봉하는 통에 〈피에타〉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될 뻔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수상 이후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상영관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피에타〉를 개봉할 때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그동안 하지 않던 방송 출연에도 나섰다. 〈두드림〉 〈강심장〉 〈피플 인사이드〉 〈수요기획〉 등에 출연했다. SBS 〈강심장〉에 출연한 그는 영화 〈악어〉를 연출할 당시 촬영 현장에서 제작자로부터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영화 〈피에타〉의 한 장면.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국내 개봉관이 늘었다.

이처럼 평생을 영화계 비주류로 살아온 김 감독에 대해 동료인 이현승 감독은 “김기덕의 수상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 부끄럽다. 사실 한국 영화계가 그에게 해준 것이 없다. 그의 제작비 대부분은 자신의 돈과 해외 판매 수익으로 충당한 것이다. 한국 영화계가 키워낸 감독이 아니라 한국 밖의 관객과 영화인이 키운 감독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2003년 옥관 문화훈장, 2004년 보관 문화훈장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에게는 또다시 문화훈장이 수여될 예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독립영화를 박대했던 이명박 정부가 뒤늦게 공치사에 나서는 것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작가 이외수씨는 트위터에 “좌파 영화인 척결을 빌미로 독립영화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부 문화예술 관련자들이 김기덕 감독 수상에 자랑스러움을 표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은 한국 영화의 예술적 성취인 동시에 한국 영화계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다. 자신의 수상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밝히며 수상소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수상을 기회로 메이저 책임자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지금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유명감독·배우들은 바로 수년 전, 저와 같이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 감독이었고 가난해도 열정으로 연기하던 배우들이었습니다. 진정한 1000만 관객은 중요하지만 수직 계열화된 극장을 몇 관씩 독점해 1000만을 하면 허무한 숫자일 뿐이며 그런 수익은 휴지일 뿐이고 그 누구도 진정한 영광은 아닐 것입니다. 열정으로 창작을 포기하지 않은 영화인들과 좋은 영화에 투자해준 메이저 자본이 함께 만든 공동의 가치일 것입니다. 영화산업의 백년대계를 내다보신다면 다양한 영화가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독립영화·저예산 영화에도 균형 잡힌 투자와 상영 기회를 (줄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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