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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진행자가 진심으로 우네?

<김현정의 뉴스쇼> 진행자 김현정 PD(사진)를 만났다. 좋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는 섭외력과 순발력도 필요하지만 진행자·인터뷰이·청취자의 교감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2012년 09월 21일 금요일 제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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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긴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 불이 나고 사람이 죽고 정치인이 마음을 바꾼다. 뉴스 소비자도 그걸 안다. 전날 밤까지 뉴스를 보고 잠자리에 든 사람도 해가 뜨면 오늘의 새 뉴스를 원한다.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그래서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바쁘고 뜨겁다. 

전날 저녁 마감한 일간지도, 다음 날 아침부터 제작에 들어가는 텔레비전 방송 뉴스도 메우지 못하는 ‘오늘 아침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출근길 뉴스 소비자들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CBS 김현정 PD(36)는 그 뜨거운 미디어의 중심에 선 사람이다. 매일 아침 7시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로 새 뉴스를 기다리는 청취자들과 만나는 김 PD는 CBS 간판 시사 뉴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 연출가 겸 진행자이다. 

김 PD를 포함한 프로듀서 셋, 작가 둘, 리포터 두 사람이 만드는 <김현정의 뉴스쇼>가 9월3일, 2012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처음이 아니다. 뉴스쇼가 시작된 2008년 첫해 곧바로 한국방송대상 취재보도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 진행자 김 PD가 한국방송대상 개인상 부문에서 앵커상을 받았고 올 초 한국PD대상 작품상도 <김현정의 뉴스쇼>에 돌아갔다. 


   
ⓒ시사IN 이명익


상복은 초창기부터 터진 일복이 불렀다. <김현정의 뉴스쇼> 첫 방송일은 2008년 5월12일. 전국을 뒤덮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진보와 보수가 극명히 맞서던 시기였다. 방송 첫날 김 PD의 첫 인터뷰 상대는 미국 도축장의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를 찍어 공개한 미국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 마이클 그래거 국장이었다. “미국의 소들과 검역 시스템은 지금 전 세계 소비자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라는 그의 말은 당시 끓어오르던 쇠고기 이슈에 기름을 부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김 PD는 매일 아침 그 시각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을 불러내 뜨거운 말을 이끌어낸다. 한국인 2명을 납치하고 죽인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의 대변인은 수화기에 대고 “한국이 아프간에 경찰을 파견하면 민간 테러를 벌일 것이다”라고 협박했고, 생방송 도중 ‘용산 철거민 농성 진압 중 화재 발생’이라는 한 줄짜리 뉴스 자막을 보고 무작정 전화 연결한 용산 현장의 농성자는 “여기 사람 다섯 명이 죽어 실려갔다”라고 울부짖었다.

김 PD가 꼽는 좋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첫째 조건은 끈질긴 섭외력이다. 다음 날 아침 청취자에게 “가장 따끈따끈하고 날것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뉴스쇼 제작팀은 매일 오후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인다. 

박원순-안철수 단일화 기자회견 날 김 PD가 전화를 받지 않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섭외하러 기자회견장에 직접 달려간 것도 그런 ‘당사자 제일 원칙’ 때문이었다. 벌떼 같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기자회견장에서 나오는 박 후보를 붙잡고 무작정 택시에 올라탔다. 비록 얼마 못 가 떠밀려 차에서 내리기는 했지만 김 PD는 다음 날 아침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박 상임이사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용산 현장 농성자에 무작정 전화 연결


순발력도 중요하다. 생방송 도중 큰 뉴스가 왕왕 터진다. 용산 참사가 그랬고 배우 최진실씨 자살도 그랬다. 원래 다른 주제로 인터뷰를 잡아놓았던 최불암씨와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터키에 지진이 났다기에 급하게 위성전화로 터키 대사관 직원을 연결해 현지 상황을 듣기도 했다. 

모든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고사하던 박태환 선수 대신 박 선수의 코치와 전화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 PD는 “혹시 옆에 박태환 선수 있나요?”라고 기습 질문을 던졌다. 거짓말을 하지 못한 코치는 결국 박 선수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섭외력과 순발력은 제작팀의 협업과 약간의 운으로 키울 수 있지만, 청취자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받는 ‘느낌’은 온전히 진행자 김 PD만의 책임이다. 시사 뉴스 프로그램에도 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김 PD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도 그래서 진행자·인터뷰이·청취자 삼자 간의 교감이다. 

군대에서 급성뇌수막염에 걸린 줄 모르고 의무실에서 주는 타이레놀만 먹다가 죽은 훈련병의 아버지와 인터뷰할 때 김 PD는 진심으로 함께 울었다.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피해자의 언니, 대구 자살 중학생의 어머니와의 인터뷰 때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입을 떼기 힘든 사람들에게 김 PD는 사건의 전말을 캐묻기보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다.

백 마디 말보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 깊은 한숨 소리에 청취자들은 더 반응했다. 숨진 훈련병의 아버지 인터뷰가 나간 뒤 “운전하는데 눈물이 너무 흘러 도저히 운전을 못하겠다”라는 등 청취자 문자가 쏟아졌다. 인터넷 관련 기사에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며칠 뒤 국방부는 “군 의료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김 PD는 “인터뷰이와 소통했을 때, 그 소통이 청취자에게도 전달됐을 때, 결국 실질적인 정책이나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베테랑 앵커 김 PD는 사실 우연한 기회에 스튜디오 진행석에 앉게 됐다. 2001년 CBS 라디오 PD로 입사해 음악 프로그램 <꿈과 음악 사이에>를 만들던 2005년 어느 날, 시사 프로그램 <이슈와 사람>을 진행하던 오준석 국장이 2주간 휴가를 떠나면서 김 PD를 ‘대타’로 찍었다.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으면 그때 진행자와 PD를 겸하는 일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거다”라면서도 김 PD는 진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방송의 매력을 고백했다. “PD와 작가 등 모두가 함께 준비를 해놓을지라도, 온에어되는 순간부터 이 방송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마치 코치가 프로그램을 짜고 연습을 시키지만 빙판 위에 올라가면 혼자 경기를 치러야 하는 김연아처럼.”

1년간의 육아휴직 기간에도 마이크가 그리웠다. “집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그랬죠. ‘나라면 저렇게 안 물을 텐데’ ‘이걸 왜 저렇게 풀어내지?’ ‘내가 하면 더 잘할 텐데’(웃음).”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복귀한 지난해 봄부터, 김 PD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에 매달릴 수 있는 건 순전히 친정어머니 덕이다. 

30분 전에 와주시는 친정어머니에게 일곱 살, 세 살 남매를 맡겨놓고 김 PD는 매일 새벽 5시면 집을 나선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아침 출근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날 아침의 가장 뜨거운 뉴스를 손에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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